문병하 목사.
문병하 목사.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언15:23)

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이쯤 되자 성도들이 하고 웃어버렸다. 그때서야 목사님은 자신이 실수한 것을 알게 되었다. 당황되고 얼굴도 화끈거렸다. 그렇지만 목사님은 순간 재치를 발휘했다. “그때 삭개오가 나타나 이렇게 외쳤습니다. , 그 자리는 내 자리야. 빨리 내려와.”

독일 통일을 이룬 헬무트 콜 총리가 정원을 청소하다가 수류탄 세 개를 주었다. 아내와 함께 그 수류탄을 경찰서로 가져가는 도중에 아내가 걱정스럽게 말했다. "여보, 가는 도중에 수류탄 하나가 꽝 터지면 어떻게 하지요?" 그러자 콜 총리가 말했다. "걱정하지마, 경찰에게 두 개 주었다고 말하면 되니까." 재치 있는 사람은 상황을 바꿀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사람이다. 심각한 상황을 부드럽게 만든다.

재치란 '상황을 민감하게 감지하여 그 상황에서 가장 친절하면서도 적절한 말이나 행동을 하는 능력을 말한다. 재치에 해당하는 영어 단어(tact)는 원래 촉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민한 손가락이 어떤 물건의 끈적거림이나 부드러움, 매끄러움, 뜨거움, 털이 있는지 등의 여부를 식별할 수 있는 것처럼, 재치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의 느낌을 감지할 수 있고 또한 자신의 말이나 행동이 그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치는 지를 분별할 수 있다. 재치가 부족한 사람은 마치 정시에 목적지에 도착하는데 너무 신경을 쓴 나머지 차를 세워 승객들을 태우는 일조차 하지 않는 버스 운전기사처럼 자기가 하는 일의 중요성에 지나치게 신경을 쓰는 사람이다. 그래서 다른 사람들의 필요를 파악하거나 그것에 관심을 보이는 것에 소홀한다. 재치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상황을 살피고 다른 사람의 마음을 돌아보는 넉넉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체코슬로바키아에 프란쯔 카프카라고 하는 유명한 유대인 작가가 있었다. 그의 작품 가운데, 문 밖에서 일생 동안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다가 죽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 사람은 문지기가 서 있는 문 앞에서 어떡하든지 이 문안에 들어가려고 일생 동안 애를 썼다. 어떻게 하면 저 문지기를 피해서 문안으로 들어갈 수 있을까 하고 애를 쓰다가 끝내 그 문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문 밖에서 죽어 가게 되었다. 그는 죽어 가면서 그 문지기에게 말했다.

왜 당신은 나를 그 문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도록 그토록 문을 이렇게 지키고 있는 것입니까?” 그때 문지기는 정색을 하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이 문은 당신을 위한 문입니다. 당신을 돕기 위해서 내가 여기 서 있습니다그 사람은 깜짝 놀라 다시 물었다. “그런데 왜 당신은 내가 들어가려는 문 앞에 막아 서 있습니까?” 그러자 문지기가 대답했다. “아닙니다. 당신을 위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문을 열어 드리기 위해서 여기서 서 있습니다. 그러나 당신은 한 번도 이 문을 열어 달라고 요청한 일이 없었습니다.”

우리 앞에는 기회의 문이 열려져 있다. 때로 위기라는 문지기를 보고 그 문 앞에서 서성거리며 주저 하다가 성공의 때를 놓치고, 축복의 때를 상실하고 삶을 소모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노라면 몇 번인가 우리는 위기와 대면하게 된다. 위기에 직면하는 순간 그것을 피하여 삶에서 도망치고 싶어진다. 윈스턴 처칠은 '위기에 처했을 때 도망치지 말라'는 말을 좌우명으로 삼고 일생을 살았다고 한다.

하나님께서는 두 종류의 사람을 쓰실 수 없다. 하나는 지나치게 자신만만한 사람이다. 하나님 보다 자기 자신을 더 믿는 사람은 하나님이 쓰시기가 곤란하다. 이런 사람들은 하나님의 도움이 전혀 필요 없는 사람이다.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쓰시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지나치게 자신이 없는 사람이다. 자기를 지나치게 비하하는 사람들이 있다. 자기는 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지나치게 열등감에 빠진 사람들을 하나님께서는 쓰시지 않는다. 그러나 자기의 부족함을 인정하되,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하며 지금은 제가 좀 부족하지만, 하나님을 믿고 한 번 해보겠습니다. 내가 나이는 어리지만, 다윗처럼 믿음으로 도전해보겠습니다라고 하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신다.

위기가 닥쳐올 때 절대로 뒤로 도망쳐서는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위험은 두 배가 되는 법이다. 반대로 단호하게 거기에 맞서면 위기는 반감된다. 결코 도망쳐서는 안 된다. 오히려 기도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 기도에 대한 말을 많이 들어서 잘 알고 있기에 기도해야겠다고 말은 많이 하면서도 기도한 번 진실하게, 그리고 간절하게 하지 못하고 살고 있지 않는가? 위기를 기도의 기회로 삼으시기를 바란다.

주님! 주님의 삶이 제 삶 속에 각인되게 하옵소서/구습을 따라 썩어져가는 세상을 좇아 살려는 욕구와 꿈틀거리는 세상의 유혹을 십자가에 메달게 하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손을 붙잡게 하옵소서/옥합이 깨어질 때 오만하고 자고했던 자만심도 깨지게 하시고 발을 닦던 여인의 머리털보다 더 많던 죄가 창에 찔린 옆구리에서 흘리신 보혈로 씻겨지게 하옵소서/저로 하여금 배신자의 입맞춤을 기꺼이 마주하셨던 그 온전한 주님의 사랑를 닮게 하옵소서/운명을 맞이하여 뒤로 물러서지 아니하고 주님은 수치스럽게 죽임을 당하셨지만 죽으심으로써 오히려 죽음을 이기셨습니다/저도 주님을 본받아 뒤로 물러서지 않게 하소서

덕정감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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