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규 희 목사
광복 69주년을 맞이한 8월은 감사와 감격이 넘치는 달이다. 일본제국주의의 식민지배에서 벗어나 광복의 아침을 맞이한 8.15는 민족의 구성원 모두에게 무한한 축복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8.15해방의 기쁨을 맞이한 것도 잠시 우리는 또 다시 혼돈과 아픔의 소용돌이 속으로 빠져들고 만다. 해방은 되었으나 친일파 청산 등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 결국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까지 겪고 만다. 실로 안타까운 일이다.

아직까지도 남과 북은 서로에게 총부리를 마주 댄 채 살얼음판을 걷는 긴장상태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지구촌에 남아있는 유일한 분단국가로서 요즘처럼 긴장된 남북관계 아래서 갖게 되는 평화에 대한 염원은 광복 69주년의 기쁨만큼이나 간절하다. 

우리는 어느 민족보다도 평화를 갈망하고 있다. 하지만 평화란 결코 대립의 부재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오늘의 세계는 과학기술의 발달과 사회의 민주적 변화에 의해 자율문화의 번영을 이루어 왔다. 그러나 이 번영의 그림자 뒤에는 초라하고 비참한 모습들이 숨겨져 있다. 말하자면 물질문명에 의한 환경의 오염과 파괴, 정치적 경제적 불균형, 능력과 실적 위주의 경쟁사회에서 오는 인간실존의 비인간화 등이 그것이다. 뿐만 아니라 인류는 핵시대의 도래와 함께 세계파멸이라는 위기적 상황 속에서 평화의 실현과 공존의 삶을 추구하고 있으나 지금도 지구촌 곳곳에서는 분쟁으로 인한 살상과 파괴가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평화란 언제나 유동적이고 역동적이다. 따라서 평화는 갈망하고 그 평화를 성취한다는 목적 자체보다도 그 목적에 이르는 과정이 정말로 평화적이어야 한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러므로 평화를 성취하기 위해서는 비록 대립의 관계 속에 있지만 서로가 그 상황을 인정하고 거기서부터 대화와 협상을 통해 추구해 나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 그리스도인은 이러한 인간적인 노력 위에 샬롬의 하나님이 계시다고 하는 자각과 함께 그 하나님께서 자신의 기쁘신 뜻대로 평화를 성취하신다는 겸손한 신앙의 자세가 필요하다. 그러면 우리가 이러한 겸손한 신앙의 자세를 갖기 위해서 어떻게 하여야 할 것인가 하는 것이다. 이러한 신앙은 무엇보다 먼저 새로운 역사관의 확립을 통해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새로운 역사관의 확립은 상황에 대한 바른 인식이 그 전제가 된다.

이를 위해 우리는 무엇보다 오늘의 이 다원화된 현대사회의 상황 속에서 기독교 신앙을 실존의 내면성에만 국한시킬 것이 아니라 적극적인 신학적 세계상을 전개해서 현실세계에 대해 분명하고도 확고하게 성경의 메시지를 증거해야 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세계 속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두려운 일들에 대하여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평화와 희망에 대한 비전을 현실을 향해 선명하게 제시해야 할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평화가 파괴되고 위협을 받는 현장에서 결코 방관자의 위치에 머물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땅 위에서 평화를 보존하고 촉진시키며 새롭게 하는 일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약속하신 평화에 대해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마땅히 지켜야 할 응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언제나 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평화를 이 땅위에 실현하고자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성경 속에 나타난 이 평화의 정신을 구체적으로 오늘의 삶의 현장 속에서 표현해야 한다.

여기서 성경 속에 나타난 평화의 정신이란 화해와 자유와 희망을 말한다. 화해란 기본적으로 하늘과 땅의 화해를 그 기초로 한다. 그러므로 먼저 하늘과 땅의 화해를 통해 관계의 화해가 이 땅에서 실현되어야 한다. 또한 자유는 어떤 강제적인 힘의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착취와 억압과 인권이 유린당하는 현장에서는 평등과 해방의 샬롬 정신이 실현되어야 한다.

그리고 희망이란 단순한 내일의 희망이 아니라 종말론적 희망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바로 이 종말론적 희망으로 하여금 오늘의 우리의 삶을 이끄는 원동력이 되게 해야 한다. 그래서 이 희망이 우리에게 있어서는 존재에의 용기이자 삶에의 용기가 되게 해야 한다.이와 같이 화해와 자유와 희망은 오늘의 교회 공동체와 그 공동체 안에 속한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이 세계와 현실 속에 실현해야 할 시대적 사명이요 과제이다.                  

예장 우리총회 총회장

저작권자 © 기독교한국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