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 미래 성장동력 상실…교회 비판 속에 담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 들어야
내적으로 수도권 20위 대학, 외적으로 서진 현실화시키려는 VISION2020계획 수립

‘야성이 살아 있는 대학’을 슬로건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는 인재를 키우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있는 그리스도대학교 임성택 총장. 임 총장은 ‘VISION 2020 종합발전계획’을 통해 2020년에는 수도권 질적 순위 20위 대학으로 발돋움하겠다는 원대한 꿈을 꾸고 있다.

임 총장은 학교의 발전을 위해 스스로 권위를 내려놓고 학생들에게 친숙하게 다가가고 있다. 2011년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되는 어려움을 겪었으나 구성원들의 자발적인 총력 대응의 결과, 우수한 성적으로 이를 벗어난 임 총장은 지난달 14일에는 세계복음화협의회가 수여하는 국민대상 시상식에서 자랑스러운 신학자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본보는 임성택 총장과의 신춘대담을 통해 한국교회를 향한 위기와 지탄의 목소리를 진단하고, 한국교회의 경쟁력과 위상을 회복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들어봤다. 또 그리스도대학교의 발전과 비전에 대한 청사진은 무엇인지, 한국교회의 신학교육의 현주소는 무엇인지 경청하는 시간을 마련했다.

▲계사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먼저 바쁘신 가운데 저희 신년특집 대담에 소중한 시간을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최근 한국교회를 향한 지탄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교회에 대한 이미지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으며, 사회로부터 신뢰를 상실하고 있습니다. 이로 인해 한국교회 역시 마이너스 성장을 거듭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 대다수의 목회자와 교인들은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했다는데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원인을 찾아내어 분석하고, 대책을 마련하며, 이를 구체적으로 추진력 있게 실천하는데 모두가 주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현실을 진단해 주신다면.

=한국교회의 최대의 위기는 선교 대상과의 단절과 심각한 괴리현상을 고민하지 않는 무감각 증상입니다. 즉 사회와 사람들이 무엇을 힘들어하고 고민하고 아파하는 지에 대한 관심보다는 오직 교회 이기주의적 자기성장만을 추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에 대한 궁극적 해답 없이는 교회성장 그 자체가 불가능하고 그것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회가 교회를 향하여 던지는 문제에 대해서도 고민은커녕, 그 사람들의 마음을 읽으려하지 않고, 겉으로는 동의하는 듯하면서도 사형(蛇形)의 논리에 기초한 교리적 답변을 반복하고, 심지어는 그들을 안티크리스챤으로 몰아간다는 것입니다. 분명히 고의적인 악성 안티크리스챤들이 있고, 교회의 강력한 대응책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가 만들어낸 안티, 교회에 기대하고 사랑했다가 절망한 안티들이 더 많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대형교회 건축, 교회세습, 목회자 납세 문제 등에서 교회는 교리적 반론보다는 그 비판에 귀를 기울이고 치열하게 고민해야 합니다. 건축, 세습, 납세라는 단어 자체가 사회적 용어인 까닭에 교리적으로만 대응해서는 안됩니다. 구원, 십자가, 천국 등과 같은 용어들은 본질적으로 사회와 충돌해야 하는 영적 개념들이며, 오히려 타협이나 양보가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교회를 향하여 요구되는 사회적 책무성과 관련된 부분에서는 교회가 내려놓을 때에 더 큰 힘을 발휘합니다.

다시 말하지만 한국 교회의 최대의 위기는 선교대상과의 단절과 영적 무감각 증상입니다. 교회의 영적 리더쉽을 회복하고 복음의 확산을 위하여, 주께서 그리하셨듯이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돌려주어야 세속의 올무에 걸리지 않고 세속으로부터 자유로운 교회가 될 수 있습니다. 즉 사회와 공유하고자했던 것들을 사회로 돌려주어야 합니다. 두 가지를 다 가지려는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절대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될 수 없고, 세속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한국교회가 과거의 위상을 회복하고 잃어버린 정체성을 회복해야 한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입니다. 과거 한국교회는 나눔과 섬김,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회의 모범이 되었으며, 세상 사람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았습니다. 병원을 설립해 의료선교에 힘썼고, 학교를 세워 교육에 힘썼으며, 봉사와 구제를 통해 가난하고 어려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는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존경은커녕 도리어 사회로부터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세상이 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습니다. 한국교회가 사회로부터의 신뢰를 회복하고,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하는 예언자적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교회에 대한 세속의 비판이 치열하다는 것은 그 만큼 교회의 빛의 강도가 약하고 소금의 짠맛이 시원치 않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하면 건건한 세속의 교회 비판을 무작정 내쳐버릴 수 없으며 귀를 기울여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타락을 이방의 회초리로 징치하셨고, 교회의 타락은 이단의 발호로 경고하셨습니다. 즉 이방과 이단의 발호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잘못을 책망하시는 하나님의 수단입니다. 궁극적으로는 그의 백성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이방과 이단을 궤멸시키셨습니다. 이처럼 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백성의 경성함을 위해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도구임을 기억한다면, 사회의 교회 비판 속에 담긴 하나님의 준엄한 경고를 겸허하게 듣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양심적 목회자라면 기업형 대형교회, 교회성장지상주의, 목회자의 천주교식 성직화, 교권의 정치적 압력단체화, 각종 사회적 이권 개입 등등 이런 것들을 이제는 버려야할 때인 것에 동의하실 것입니다. 그래야 사회가 교회를 존중하고 그 말을 무겁게 여길 것입니다.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한국 사회에서 교회의 역할과 기능은 결코 작은 것이 아닙니다. 특히 우리의 교육과 복지에서 교회를 빼고는 이야기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이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젊은이들이 교회에 다니는 사실을 감추어야 사회생활에 지장이 없다는 현실이 장차 한국 교회의 감추어진 비극적 미래를 보여주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옛 선진들은 개인적인 불이익을 당하여 교회다니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겼고, 사회는 그런 사람들 핍박했을지라도 마음으로라도 자기들보다는 우월하게 여겼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런데 지금 믿음의 젊은이들 스스로도 예수 믿는 것을 자랑스러워하지 못하고, 세상 역시 기독교인들을 자신들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아니 오히려 한 차원 아래의 부류로 여긴다는 것은 치명적이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 원인은 기성교인들에게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교회 성장의 원동력이었던 어른들이 젊은이들이 예수 믿는 것을 자랑스러워 할 수 있도록 해 주어야 합니다. 지금 한국 교회에 현실 추진동력은 있으나 미래 성장동력을 상실했다는 저의 주장 속에 담긴 교회의 참혹한 미래를 한국 교회 지도자들은 바라보아야 합니다.

     
 
 
▲한국교회의 대사회적 영향력 상실에는 제대로 된 인재를 키우지 못한 원인도 크다고 봅니다. 한국교회 신학교육이 인성과 지성, 영력을 두루 갖춘 인재를 제대로 길러내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됩니다. 한국교회 신학교육의 현 주소는 어떻다고 보십니까. 아울러 신학대학이 나아갈 올바른 방향은 무엇입니까.

=아시는 대로 지금 한국교회의 절망은 목회자들의 잘못에 기인한 것이 대부분입니다. 절대로 평신도들에게 물을 수 없는 책임들입니다. 그리고 그 잘못은 궁극적으로 신학교육의 실패라고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무당도 학습무당과 강신무당이 있습니다. 학습무당은 배워서 된 무당이고, 강신무당은 접신한 무당입니다. 학습무당은 가짜무당이지요. 한갓 무당이 이러한데 영적 종교라고 하는 기독교 지도자이겠습니까?
 

성경을 문자로만 안 까닭에 구원의 영적 확신도 성령의 임재도 경험하지 못한 이들의 신학교육이 만들어낸 학습 목회자들, 그 교육조차 받지 못하고 단기간에 찍어내듯 무분별하게 만들어진 목회자들, 신학은 간과하고 오직 은사와 능력에 매달린 왜곡된 목회자들, 세속적 권력과 명성을 좇아 기독교를 세속화시키는 사이비 기독교 사회운동가들, 한국 교회는 이들의 저급한 활동을 중지시켜야 합니다. 이로 인하여 세상은 교회를 비판하는 수준을 넘어 경원하고 멸시합니다. 그러므로 지금이라도 이것을 극복하는 스스로의 개혁을 단행하지 못하면 정말로 한국 교회의 미래는 절망적입니다.

이를 위하여 무엇보다 먼저 각 교단은 과감하게 흩어져 있는 소속 신학교들을 통폐합하고, 획기적으로 신학정원을 줄여야 합니다. 지금은 량과 숫자로 승부할 때가 아닙니다. 두 번째 정말 우수한 목회 자원을 선발해야 합니다. 지금도 교회에서 공부도 못하고 대학갈 가능성이 적은 학생 중에 교회 열심히 다니고 신앙이 좋으면 “신학교에나 가라”고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저는 분명히 그런 분들에게 “바로 그런 학생이 목회자가 되면 당신은 그에게서 설교를 들어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물론 학교성적이 목회 능력을 좌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적어도 하나님의 종으로 추천받을 사람은 그 교회에서 가장 우수한 청년이어야 합니다. 셋째 교회는 그렇게 선발한 신학생들에게 전액 장학금은 물론 기숙사비, 필요하다면 해외 유학 등 모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오직 말씀과 기도와 신학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한 생명을 붙잡고 평생을 울 수 있는 성실한 목회자로부터 세계 교회를 이끌어갈 지도자의 탄생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대학교는 350만 인구가 모여 사는 서울 서부권에서 유일한 4년제 종합대학교입니다. 1958년 개교 당시 신학과·사회사업학과·교육학과 등 세 개 학과에 불과했던 학교는 53년이 흐른 지금 일곱 개 학부, 14개 전공과 일반·특수대학원을 갖출 만큼 성장했습니다. 총장님께서는 ‘VISION 2020 종합발전계획’을 통해 2020년에는 수도권 질적 순위 20위 대학이 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힌 적이 계신데, 진행상황과 구체적인 계획을 밝혀 주십시오.

=우리 대학은 세운 선교사들은 “한국 땅에 신약성경이 가르치는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 한국 교회를 개혁하고, 한국을 거점으로 한반도 서쪽의 나라들을 복음화하려는 서진(西進)의 꿈”을 꾸었습니다. 그 뒤를 이어받은 한국 지도자들이 그 꿈을 이어가려고 무던히도 애를 썼고, 지금의 모습으로까지 성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우리의 꿈과 역량을 모아 저는 총장 취임과 더불어 “내적으로는 수도권 20위 대학, 외적으로는 서진을 현실화시키려는 VISION2020계획”을 수립하였습니다.

그런데 그 계획을 막 실행하려는 시점인 2011년도에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포함되는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우리 구성원들의 마음가짐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이 위기 극복을 위해 10%라는 전국에서 가장 높은 등록금 인하를 단행하고 내핍 예산을 편성했습니다. 동시에 구성원들 거의 대부분이 급여의 일부를 발전기금으로 갹출하는 성의를 보였고, 교수님들은 상당기간 동안 급여의 5%를 제자사랑 장학금으로 내시고, 대학은 그 금액에 동일한 금액을 매칭하여 적립한 결과, 각 학부별로 상당한 제자사랑장학금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4년째 급여 인상 동결을 참아주었고, 각종 혜택과 복지를 뒤로 미루어 주는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 학생들도 따지고 비판하기 보다는 위기극복에 적극 협력하고 오히려 대학과 현실을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힘을 모아줌으로서 대학 당국자들을 감동시킨 바 있습니다. 이로 인해 금년도 정부재정지원대대학 자체 조사 결과 지표상 수도권 5위권, 전국 10위권의 좋은 성적으로 위기를 극복한 바 있습니다.

저는 총장으로서 학생들과 구성원들에게 미안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그리고 잠시 멈추었던 VISION2020을 다시 재정비하여 시작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저의 소망이 아닌 우리 KCU 모든 구성원들의 소망이며 꿈이요 현실이요 제 뒤를 이을 후임 총장들의 사명이 되기를 소망합니다. 핵심학부로서 신학과 신대원의 역량 강화, 일반학부의 특성화 역량 강화, 개명과 캠퍼스 분할(환원 캠퍼스, 등촌 캠퍼스)을 통한 대학 경쟁력 강화, 지역 사회의 교육과 문화의 중심 허브, 이를 기초로 서진(西進)의 꿈을 차질없이 달성하고자 합니다.

 
▲취임 당시 ‘야성이 살아 있는 대학’을 슬로건으로 내거셨습니다. ‘야성’과 ‘대학’. 언뜻 어울리지 않는 조합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어떤 의미입니까.

=저는 야성이 곧 대학의 기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주 절묘하게 조화된 기가 막힌 조합이지요. 저는 야성을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성품, 자연의 순리를 따라가는 역동성, 창의적 의지에 의한 새로운 창조력”이라고 합니다. 이런 힘이 없는 대학을 대학이라 부를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학문은 본질적이고 근본적인 동시에, 공학적이며 실용적인 가능성의 길을 열어주며, 이런 학문의 역동성은 순리를 따라가는 논리적 체계위에 서야 비로소 힘을 발휘하며, 그런 학문적 역량을 소유한 창의적 학자에 의해 새로운 학문과 기술이 개발되기 때문입니다. 즉 대학의 야성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낸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학은 야성이 살아있어야 합니다. 학생들도 대학의 야성에 물들어야 하며, 그렇게 포효할 줄 아는 기백이 있어야 합니다. 당연히 목회자들에게서 야성은 거의 절대적입니다. 그런 야성을 지닌 사람의 특징은 자신에 대해서는 자기 존엄의식으로 충만하고, 대상에 대해서는 에로스적인 열정이 있고, 내면의 세계로는 파토스적인 열망이 있습니다. 순수한 도전을 소중한 가치로 여기는 사람이며, 무례하거나 무법하지 않으면서도 포기할 줄 모르는 강력한 공격력을 가진 사람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의 물량적 비천함과 정신적 빈곤함도 결국 교육과 대학이 야성을 잃어버린 결과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대학교는 다양한 국적의 우수한 교수진을 유치하고, 외국 대학과의 파격적인 교류 프로그램을 통해 글로벌 정책을 지향하고 있는데요. 구체적인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 대학은 교육부와의 경영컨설팅에서 약속한 83.7%의 교수 충원이 끝난 후에도 지속적으로 외국인 교수를 충원할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서진(西進) 정책과 그 맥을 같이 하는 것인데, 특별히 미국과 중국은 우리의 주요 정책 대상국이 될 것입니다.

미국에는 문서가 아닌 혈통적으로 같은 상당수의 우리 자매대학들이 있습니다. 전액장학금 및 생활비 지원이라는 파격적 프로그램을 지원하는 프리드하드만과 같은 자매 대학에서부터 부분적인 지원을 하는 대학에 이르기까지, 지금까지 이룬 자매 대학들과의 교류 성과를 토대로 이를 더 활성화시켜 더 많은 학생들이 세계화에 걸맞는 인재로 교육받게 할 것입니다.

특히 중국은 우리 서진의 첫 대상국임에도 G2 시대를 이끌어가는 나라임에 대단히 중요한 국가로 새삼 부상하고 있습니다. 이미 시행중인 2+2 등 교류협력대학과의 관계를 심화시키고 교류의 다변화를 모색하되 역량이 흩어지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지금은 교류의 폭이 좁고 깊으나 역량을 확충하여 외연의 확대를 꾀할 것입니다. 그 외에도 서쪽의 다양한 국가들에 대한 진출 계획을 착실히 준비해 가고 있습니다.

▲요즘 취업이 어렵습니다. 청년백수들이 넘쳐나는 시대인데요. 학생들의 취업을 위해 어떤 제도와 지원을 하고 계신지요.

=원칙적으로 취업의 책임은 국가와 기업이 져야 하고, 대학은 국가와 기업이 원하는 인재를 제대로 양성했느냐를 평가받아야 한다는 사실을 전제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현실은 가혹할 정도로 대학으로 하여금 취업의 짐을 지우고 있습니다. 우리 대학도 이를 비켜갈 수 없기에 몇 가지 독자적인 취업지원제도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첫째 취업전문기관과 협력한 잡코칭, 잡매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학생이 제대로 취업할 수 있도록 취업 코칭을 상당기간 해주고, 졸업이 임박한 학생에게는 실제로 취업처를 알선하는 매칭 사업이 그것입니다. 지금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고, 또 학생들이 관심이 많습니다.

둘째 이런 취업 프로그램이 성공적이기 위해서는 학생들의 역량이 중요합니다. 그래서 각 학부는 자격증 취득을 위한 과정을 운영하고, 스팩을 쌓을 수 있도록 지원하며, 어학능력 향상을 위한 프로그램도 획기적으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셋째 학부별로 평생지도교수제를 실시하여 입학과 동시에 학업을 관리하고 취업을 돕는 등 평생 멘토로서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유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취업에 관한 한 학생 스스로 과도한 기대를 버리고 자신의 비젼과 적성에 맞는 직업을 선택하고, 또 자기만의 인생을 설계하기에 적합한 직장을 얻기 위한 사전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각종 취업 특강이나 훈련을 통해 이를 인식시키고 있습니다.

▲계사년 새해를 맞아 기독교한국신문 임직원들과 본지 독자들을 위해 덕담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자고로 민주사회에서 신문의 역할은 감시와 견제, 민의와 여론의 전달이고, 그 정신은 흔히 말하는 정론직필이구요. 즉 민주언론은 어떤 압력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권력과 기득권과 지배층 등 현실적 실권자들과 미래 운명에 대해 책임있는 자들을 공공의 눈으로 감시하고, 공동의 귀로 듣고, 공익의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동시에 사회적 약자와 대중의 생각을 같이 읽고 호흡하고 전달하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민주언론의 가치가 그렇다면 그 연장선상에서 교회언론의 가치도 자연스럽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교회언론은 어떤 압력과 환경에도 불구하고 복음의 보존과 해석과 전파의 책임있는 자들을 진리의 눈으로 감시하고, 사랑의 귀로 듣고, 의의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동시에 교회와 목회자와 성도들을 부당한 세속적 공세로부터 보호하고 이들의 전위에서 싸워주어야 합니다.

나는 기독교한국신문의 창간주역들을 살피건데 위와 같은 사명을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또 그래야 합니다. 이 땅에 수 많은 기독교신문들이 있고 나름대로 의미가 있겠지만, 빠른 시간내에 기독교한국신문만의 독특한 색깔을 가짐으로 한국 교회의 사랑을 받은 기독교 신문으로 속히 정착하기를 기대합니다.

대담=유달상 편집국장
정리=이재호 기자
사진=유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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