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탁 기 목사
토인비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난 것은 갈대아의 문명사회가 경직되면서, 자유와 정의를 잃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다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자유가 없는 거대한 나라로부터 탈출한 것이다. 출애굽 사건도 이집트 왕국에서 신음하는 노예들이 자유를 찾아 탈출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억압과 수탈, 부역 때문에 고통당하던 노예들이 파라오 밑에서 탈출해, 가나안땅에서 자유롭고, 평등하고,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나라를 세우기 위해 몸부림친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이다. 이것이 바로 출애굽사건이다.

그러나 이들도 가나안에서 왕국을 세웠다. 그들의 왕국도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던 과거를 잃어버리고, 억압과 수탈적으로 변질됐다. 이 때 예언자들이 나타나 왕과 귀족들의 억압과 수탈을 강하게 비판했다. 결국 이들의 왕국도 앗시리아와 바벨론제국에 의해 망했다. 이어서 이스라엘은 마케도니아왕국, 시리아제국, 로마제국의 억압적인 지배를 받았다. 그 기간이 1천년이나 된다.

1천년동안 자유를 위해 해방운동을 벌여온 이스라엘 민족은 더 이상 인간에게 통치권을 맡길 수가 없었다. 하나님나라를 대망한 것이다. 한마디로 하나님만이 참된 자유의 나라, 평등의 나라, 정의의 나라를 이룰 수 있다고 굳게 믿었다. 이 때 세례요한과 예수님이 나타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선언했다. 즉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가난한 자, 억눌린 자, 갇힌 자들을 해방하는 복음으로 선언했다.(누가복음 4장18절 이하).

주님이 말한 은총의 해는 50년 만에 한 번씩 돌아온다. 그 해에는 빚 때문에 빼앗긴 땅을 도로 찾고, 종이 되었던 사람들은 종의 신분에서 해방되었다. 이처럼 가난하고, 억눌리고, 소외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것이 예수님의 사명이었다. 바울 역시 문자주의적인 율법적 사고를 깨트리고, 복음의 자유와 영적자유를 지키기 위해 몸과 마음을 다 받쳤다. 율법주의자들과 싸우면서, “예수님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 되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라”고 했다.

현대의 조직화된 사회에서 국민 모두는 일할 수 있는 자유와 권리를 가진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어느 누구부터도 자유롭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자유케 했기 때문이다. 누구에게도 예속될 수 없다. 그것은 섬기는 자유이며, 사랑하는 자유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자신의 죄와 욕심에 사로잡혀서 죄의 종노릇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우리를 죄와 죽음의 세력에서 건져 내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자유로운 삶, 평등의 삶을 살게 했다. 하나님 자녀의 삶은 홀로 살지를 않는다. 내 뜻대로 살지를 않는다. 즉 하나님과 더불어 사는 삶, 이웃과 함께하는 삶을 말한다. 우리를 섬기는 사랑에로 해방시켜 주셨다. 때문에 하나님의 자녀된 누구도 종의 멍에를 질 수 없다.

루터는 “그리스도인은 만인으로부터 자유롭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만인의 종이다”고 했다. 그렇다 그리스도인은 만인의 종이 되도록 부름을 받았다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섬기는 사랑 속에서 찾아야 한다. 하나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사랑 속에서만 자기를 실현할 수 있다.

인간은 누구나 사랑을 받을 수 있고, 사랑을 할 수 있는 존재로 창조되었다. 버려진 아이들이 불쌍한 것은 집과 옷이 없어서가 아니다. 부모로부터 사랑을 받아보지 못했기 때문에, 사랑을 받을 줄도 모르고, 사랑할 줄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큰 사랑을 통해서 우리로 하여금 사랑을 경험하게 하고, 사랑을 할 수 있게 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교인들 모습은 어떠한가. 마음이 닫혀져 있다. 그러면서 교회의 강단에서 외치는 설교는 마음 문을 열라고 한다. 사실 한국교회의 교인들은 세상의 버림받은 사람, 갇힌 사람,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외면하면서, 거짓사랑을 말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진리를 말하면서, 자기중심적이며, 이기적인 삶의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오늘 엉망진창이 되어버린 교회의 모습은 이를 잘 대변해 준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깨어나지 않으면 자아를 만날 수 없다. 또 진정한 이웃도 만날 수 없다. 또한 하나님도 만날 수 없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벽을 무너트릴 때 자신의 참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이웃을 만나고, 사랑을 쏟아 부을 수 있다. 또 하나님도 볼 수 있다.

/그리스도의 교회협 전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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