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 용 길 목사
요즈음 세상이 시끌시끌하다. 우리 어렸을 적에 어른들의 대화를 기억해보면 단연 이 말이 당시에 유행이었다. 물론 일제 강점기 625전쟁, 419에서 516, 또 518로 이어진 사회상은 한마디로 시끌시끌한 세상이요, 격변의 장이 하루에도 여러 번 이어질 것 같은 위태위태한 분위기이었으니, 그냥 시끌시끌하다 라는 말로 조금은 개관적이고 초연한 느낌이 드는 이 말을 왜 사용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조금은 조상들의 여유로움을 새롭게 되새겨보게도 한다.

정말 요즈음 시끌시끌하다. 이런 사회분위기가 남북이 평화통일로 가는데 도움이 될까 하는 의구심이 피어오른다. 우리 식으로는 그들에게 분명히 거부감이 있을 것이고 받아들이는 수용적 입장을 생각해보아야 하는데, 나 자신의 개인중심에서 벗어나지 못해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의지도 노력도 없이 내 생각을 따르라는 강압식 요구는 상대방에게 얼마나 당혹감을 줄까 전혀 생각해 보지도 않는 느낌이어서, 통일은 커녕 내 가정의 분위기조차 화평을 이룰 수 없을 것 같아 발등의 불조차 끄지 못하는 상황이라면 어찌 할꼬 하는 탄식이 먼저 터져 나온다.

온전치 못한 한 사람, 정치인이라고 하기에도 좀 그렇고, 그렇다고 기업인이라고도 말하기 찝찝한 분이 스스로 세상을 하직하고 남긴 메모로 인해 이 나라의 정치계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양상은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당혹스럽다.


그만큼 이 나라가 부패했다는 말인가, 아니면 국민 한 사람 한 사람 정직의 지수가 최하위라는 이야기인가, 아니면 뭐라고 해야 근접한 평가를 내릴 수 있을까, 그래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유구무언 그냥 할 말이 없다.

그렇다고 너무 실망마소 / 언제는 우리가 세상 기대하며 살았소/ 우선은 내가 그 당사자가 아닌 것에 감사해야 하오/ 어느 곳이나 부정부패는 있는 것/ 그래서 코믹하게 불렀던 유행가/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가/ 유명세를 탄 일이 있었지만/ 조금은 흔들리지 않는 의지를 가지고/ 세상을 보면서 / 사건 사건이 터질 때마다 반면교사로 삼고/ 더 나은 미래를 준비하는 지혜가 필요한데/ 정치에 덧대어 교묘하게 사건을 이용해/ 자신의 이익으로 삼으려는 태도는 / 이 나라를 여전히 정치 후진국으로 만드는 것/ 어느 세월에 개선을 이루고 / 어느 때나 진보를 이룰 것인가 생각하면 골이 아프다/ 이런 때는 누구의 지혜를 빌리지//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나와 곧바로 홍해를 건넜고 아말렉과의 전투에서 모세가 손을 올려 하루 종일 계속된 전투에서 승리를 거두웠는데 말 그대로 온 백성의 일치 단합된 모습을 보여준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했고 여호수아는 현장에서 목숨을 걸었으며 따르는 군사들도 그 결심과 충성에 대해서는 놀라운데 이런 단합에서 아말렉과의 전투를 승리로 장식하게 되고 하나님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이스라엘은 새로운 승전사를 쓰게 되었는데,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이 전투의 성격이고 보면 우리가 배워야 할 교훈을 가지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모세는 하나님께 기도하였고, 현장에서 싸우는 여호수아는 온 몸을 다해 적을 무찔렀으며

보좌 역할을 하는 아론과 훌은 지친 모세의 팔이 내려올 때 반석과 곁에서 팔을 부축하여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한 것이 승리의 비결이고 보면, 우리 사회의 부족한 면을 다 충족시킬 수 있는 지혜와 교훈을 보여주고 있다고 본다.

누가 모세의 팔을 붙들어 내려오지 않게 했던가? 누가 해가 지도록 팔을 붙들어 내려오지 않게 하는 수고를 감당했던가? 누가 현장에서 목숨을 걸었던가? 누가 이스라엘 이기라고 목청껏 응원했던가? 그런데 갑자기 세월호 사건은 왜 떠오르지?

안타까워 “모세 손을 올려요!” 이렇게 외칠 국민적 관심은 점점 사라지고 자기만 의인이라고 깃발을 들고 거리로 나선다.

한마음교회 담임•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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