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재 범 목사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지니고 사는 사람이다. 본래 그리스도인이라는 명칭은 예수 믿는 사람을 경멸하는 의미로 사용됐던 이름이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인류의 역사와 사회에 기여한 바가 커지면서 명예로운 이름으로 된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에게 속했다’ ‘그리스도의 것이다’라는 뜻으로 권위를 의미하기도 한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권위를 부여받은 자들이기 때문에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에 합당한 삶은 무엇일까.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의 권위를 갖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나님의 자녀의 권위를 가지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말하고 행하는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연결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이름의 권위를 위해서 또 그분의 이름의 영광을 위해서 말과 행동을 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의 대사로서 살아야 한다. 바울 사도는 우리를 ‘사신’이라고 했다. 사신은 ‘대사’라는 말이다. 대사는 파송한 나라의 권위를 위해서 사는 것이다. 그래서 대사는 파송한 나라의 권위가 떨어지지 않도록 잘 살아야 한다. 그리스도의 파송을 받은 대사로서 고상한 길을 걸어가야 하는 것이다.

마태복음 5장 16절에는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우리가 착한 삶을 살아야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신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진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영화롭게 해야 한다. 또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특성이다. 죄로 인하여 멸망 받을 우리가 십자가의 피를 통해서 구원받았기 때문에, 항상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는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서는 안 된다.

감사하는 마음은 믿음의 나무에 맺히는 열매이다. 로마서 1장 21절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고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며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나니”라는 말씀을 통해 믿음이 있는 사람들은 불평하지 않고 감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감사는 믿음에 정비례한다. 혹시 믿음이 어느 정도인지를 알고 싶다면 나의 마음속에 감사하는 마음이 어느 정도 있는지를 살펴보면 알 수 있다. 감사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주신 은혜이다. 이 은혜를 우리가 다 받았으므로 이 은혜를 잘 지켜야 한다.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으려면 항상 밝은 면을 봐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깜깜한 밤이라도 별빛을 보고도 감사해야 하고, 검은 구름 위에 무지개를 보고도 감사해야 한다. 즉, 슬픔가운데서도 소망을 바라보고 감사해야 하는 것이다.

로빈슨 크루소는 배가 파선되어 무인도에서 혼자 살게 되었다. 아무도 없는 섬에서 혼자 살면서 자신의 형편을 살펴보았을 때, 불행한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죽지 않고 산 것에 감사하였고, 외딴섬이지만 먹을 것이 있어서 감사했다. 따뜻한 햇볕 때문에 단벌옷밖에 없지만 감사할 수 있었다. 또한 대화할 친구가 없어도 파손한 배에 들어가서 이것저것 살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음에 감사했다. 로빈슨 크루소는 불행한 환경 속에서도 감사하는 면을 더 많이 발견한 것이다.

이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항상 보존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마음속에 담고 살아야 한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에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는 말씀이 있고, 빌립보서 4장 4절 말씀은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말씀이 있다.

이러한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고 있으면 늘 감사가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 마음속에 충만하게 하면 감사하는 마음이 떠나지 않는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다. 그리스도인의 특성은 감사이다. 어두운 면을 보지 말고, 밝은 면을 보면 항상 감사할 수 있다. 범사에 감사하는 우리 모두가 되자.

예장 성서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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