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한국에서의 기독교 선교는 민족구원을 초월하는 하나님 나라를 주제로 가진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의 가장 박해를 받았던 3.1만세운동은 민족사적, 교회사적으로 큰 의미를 가진다. 이 운동은 1911년 105인 사건에 이어서 일본 지배자세력에 의해서 가혹한 탄압을 받은 두 번째 교회사적, 민족사적인 사건이다.

3.1만세운동은 선교사들과는 상관없이 깨어난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서 폭발되었고, 주체가 기독여성과 기독농민, 학생들었다. 이같은 역사적인 사실을 한국교회는 몰각하고, 민족대표 33인, 특히 기독교 대표 16인을 부각시키는 일에 열심을 냈다. 3.1만세운동 97주년을 맞은 한국교회가 역사적인 의의와 그 한계를 재 평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분명 3.1만세운동은 한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한 민족운동이며, 기독교운동이었다.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주제가 가난한 한민족과 기독여성, 기독농민, 학생들의 저변에서 일본침략세력에 맞서 비폭력평화운동인 민족의 해방과 나라의 자주독립을 외쳤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의 목회자중 일부는 민족구원의 연장에서 일어난 3.1만세운동을 영미선교사들의 영향 때문이라는 잘못된 평가를 내리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을 교인들에게 아무렇지 않게 강단에서 외치며, 3.1만세운동의 의의를 오도하고 있다는 것이 일부 기독교사가들의 지적이다.

이것은 한국교회의 보수적인 목회자들이 서양의 자본주의와 식민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신앙과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이것이 최고인 것처럼 포장하고, 영미 선교사들이 서양의 상업적 자본주의 이데올로기적인 신학을 한국교회에 그대로 이식시켜 놓았기 때문이다.

오늘 3.1만세운동의 주체였던 한민족의 생계를 책임졌던 농민과 민족의 어머니이며, 민족의 에스더인 기독여성들의 역사적 평가가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영미 선교사들의 한국선교는 봉건사회 극복과 남녀평등에 있어서 결정적인 계기를 가져다가 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이들은 한민족의 의식화와 조선의 독립을 철저하게 막았다. 그리고 가난하고, 피압박민족에게 ‘회개’를 외쳤다. 일본의 침략에 대한 정당성을 부여해 준 것이다. 그것은 당시 미국 장로교 해외선교부 총무였던 아서 브라운 박사의 저서인 <극동의 지배>에 잘 나타나 있다.

아서 브라운이 자신의 저서에서 분명하게 밝히고 있는 것은, 선교사들이 지배자의 세력이며, 식민지세력인 일본을 도와야 한다는 기록은 당시 선교사들의 행태를 잘 말해주고 있다. 심지어 조선의 백성을 미개하고, 더러운 백성이라고 표현했다. 일본은 선진국이며, 깨끗한 나라로 선교사들이 적극 도와야 할 의무가 있다고 기록했다. 그러면서도 한민족은 이국적인 서양 사람들에 대해서 매우 호의적이었다고 평가했다.

아서 브라운이 말하고 있듯이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일본지배자세력에 대해서 같은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조선백성의 민족주의운동과 의식화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 대신 도덕적인 계몽과 교육사업을 벌였다. 한민족을 향하여 ‘회개’와 ‘역적각성운동’만을 강조했다.

그럼에도 한국교회의 일부 기독교인들은 민족의 아픔에 대해서 자각하기 시작했고, 자각된 기독교인에 의해서 3.1만세운동을 비롯한 민족의 해방운동과 독립운동이 주도됐다. 그리고 오늘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 제97주년을 맞는 동안, 해마다 기념행사를 갖고 있는 것이다. 이제라도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의 민족사적, 교회사적 의의와 그 한계를 새롭게 조명해야 할 것이다.

인천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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