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함으로 복을 받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율법의 말씀은 그것을 순종했을 때 복을 받을 수는 있지만 그것을 통해 하나님의 의에 이를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잘못되었던 이유가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이유는 사람이 얼마나 무도한 죄인인가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즉 지키지 못함을 아시고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자비에 의지하지 않고 끝까지 자신들의 의를 세우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목적과는 반대되는 행동을 했습니다. 율법이 정상적으로 작용했다면 죄는 살아나고 자신은 죽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열심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십계명을 포함한 무수히 많은 율법들을 정확히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율법들이 주어질수록 죄가 드러나고 자신은 죽어야 정상인데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이러한 율법들이 주어질수록 자신의 의롭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이유는 율법을 지켜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아니라 율법 앞에서 자신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함입니다. 롬 4:15에서는 율법은 진노를 이루게 한다고 말합니다. 유대인들은 그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받음으로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었습니다.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율법에 비춰보았을 때 죄인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율법이 없는 이방인들도, 자기의 마음의 법, 즉 양심이 죄인임을 증거하므로 결국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됩니다. 우리는 텔레비젼에서 범죄한 사람이 얼굴을 가리고 고개를 숙인 모습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이 저지를 죄에 대하여 떳떳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그 속에 양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양심이 자신을 죄인이라고 증거하는 것입니다. 결국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으며 이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죄인을 구원하시는 은혜인데 사람이 자신이 하나님 앞에 지옥 갈 수 밖에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됩니다. 구원은 죄인이 받는 은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람의 죄를 깨닫게 하기 위해서 양심의 거울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라”(롬3:20) 검정색을 부각시키기 위해서 보색인 흰색을 테두리로 사용하는 것처럼 우리의 죄를 드러내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죄를 율법을 통해서 발견할 때 자신의 노력과 의지를 포기하고 죄에서 구원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 앞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율법은 단순히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만 주어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죄인인 것을 깨달아서 그리스도 앞으로 나아가게 하기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 앞에 나아가려고 합니다. 그것은 참으로 어리석을 행동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많이 지킨 사람일수록 교만합니다. 바리새인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세리와 같지 않음을 감사했습니다. 그들 역시 율법을 온전히 지키지 못하는 죄인일 뿐인데, 교만했던 것입니다. 교만한 마음으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 없습니다. 자신의 죄를 깨닫고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자비를 구할 때, 하나님의 사랑과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힘입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착각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의 수준이 어떠한 것인가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율법을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완벽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의는 완벽한 것이지만, 사람은 어느 누구라도 그것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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