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뜩이나 한국교회의 위상이 바닥을 곤두박질한 가운데, 일부 목회자들의 불미스러운 행위로 인해 회복의 기회마저 박탈당한 느낌이다. 사랑의 종교로 이 땅의 소외된 이웃을 위한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재물과 권력에 눈이 먼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크다. 이러한 심각성을 인지한 몇몇 교단에서 목회자 윤리지침안을 총회에서 통과시키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는 있지만, 온갖 비윤리적인 행태를 벌이고 있는 한국교회 전체를 회복시키기에는 무리가 따른다. 말 그대로 이 사회를 올바른 길로 인도해야 할 교회가 윤리적 절름발이가 되어 오히려 사회적 비판의 대상으로 전락해 버렸다. 이에 목회자들의 윤리 개혁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다.

목회자 윤리의식 부재 팽배

한국교회의 크고 작은 사건들이 연일 매스컴을 타고 흘러나와 모두를 당혹케 하고 있다. 크리스천으로써 차마 보고 들을 수 없을 정도로 도가 지나치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최근 일련의 사건들을 둘러보면 과연 목회자가 맞나 싶을 정도로 윤리의식은 저 먼 곳으로 내팽겨 쳐진 것 같다.

모 지역 기독교연합회 사무총장이 공금횡령 등의 혐의로 고발을 당한 것은 빙산의 일각이다. 이 사무총장은 10여년간 지역 기독교연합회 사무총장으로 일하면서 연합회의 후원금을 받는 은행계좌를 공식적인 것과 본인이 관리하는 것을 따로 만들어 사용한 혐의로 고발당했다. 이 사건은 단 5개월 동안 약 5천만원의 공금을 횡령한 단서로 제보된 만큼 혐의가 입증되면 피해 금액은 더욱 커질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또다른 사건은 검경 수사관들이 수원의 모교회 사건을 무마해 주는 대가로 돈을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돼 충격을 던져주고 있다. 이 사건은 교인들이 A목사를 사기와 횡령, 업무상배임혐의로 수원지검에 고소하고, 또 같은 해 2월 업무상배임 및 사문서위조 등 혐의로, 10월에는 사문서위조 및 배임혐의로 고소하는 등 상황에서 A목사가 자신에게 고소가 잇따르자 측근을 통해 사건을 축소·무마시키기 위해 거액을 건넸다는 의혹이다.

목회자들의 성윤리 의식 부재도 만만치 않다. 감신대의 경우 최근 성추행 문제로 학교 이미지에 상당한 스크래치를 입었다. B교수는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논문지도를 맡았던 한 학생을 상대로 상습적인 성추행을 저질렀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이에 해당 교수는 현재 ‘업무상 위력, 위계에 의한 성추행 혐의’로 서울서부지검에 형사 고발된 상태다. 본인은 사건에 대해 전면 부인하고 있지만, 이미 학교와 교단의 이미지 실추는 진행된 상태다.

또한 신학대학원생이 수표를 위조해 성매매 하는데 사용한 사건은 목회자들의 성윤리가 어디까지 왔는지 자명하게 보여준 것이었다. 사회에 모범을 보이지 못했다면 적어도 사회적 법규를 어기는 파렴치한 일은 벌이지 말았어야 했는데, 이마저도 무너졌다. 그동안 목회자의 성윤리 부재를 ‘쉬쉬’하면서 모른 척 넘어간 것이, 장차 한국교회를 이끌어갈 자원을 망가트리는 결과를 초래한 셈이다.

이밖에도 목사이자 모 신학대학의 교수가 자신의 딸을 학대해 살해했는가 하면, 전도사였던 여자가 아버지를 살인하고,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 일면식도 없던 여성을 무참하게 살해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기도 했다. 모 교단에서 발생한 칼부림 사건은 한국교회가 정말 끝까지 내려 왔음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일련의 사건들은 목회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잔혹하고도 흉악한 범죄다. 이는 한국교회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1급 범죄에 흉악 범죄다. 그 어떠한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범죄를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들은 목회자들의 윤리의식 부재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속적 욕망에 사로잡힌 목회자 본질 망각 심각해
신학교 개혁 시급하고, 목회자 윤리강령 제정 절실

일련의 사건들은 목회자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잔혹하고도 흉악한 범죄다. 이는 한국교회를 넘어 사회적으로도 1급 범죄에 흉악 범죄다. 그 어떠한 말로도 변명할 수 없는 범죄를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다. 이 모든 사건들은 목회자들의 윤리의식 부재에 있다고 봐도 무방하다.

목회자는 우월한 도덕성과 영성을 소유해야 하기 때문에 단순한 직업으로 설명하기 어렵다. 힘들겠지만 목회자는 이 사회와 성도들에게 교과서와 같은 모습으로 비춰져야 한다. 인간으로서 어렵고 힘들겠지만, 어찌 보면 주의 종으로서 당연히 갖춰야할 소명이자 숙명이다. 그런데 이러한 소명을 저버린 채 세속적인 욕망에 사로잡혀 본질을 망각한다는 것은 분명히 문제가 있다.

신학교 개혁 당장 이뤄져야

그렇다면 그 문제는 어디서 찾아야 할까. 가장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것은 바로 목회자들을 양성해 내는 신학교부터 살펴볼 필요가 있다. 신학교는 말 그대로 장차 목사를 길러내는 목장으로 목회자의 최소한의 윤리에 대한 기본 소양을 가르치는 곳이기도 하다. 단순히 성문제로 그칠 것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기본적인 윤리의식과 주의 종으로서 윤리적인 문제를 모두 포괄한다. ‘첫 단추를 잘 끼워야 된다’는 말처럼 신학교 시절 윤리의식을 제대로 교육시키지 못하면 훗날 어떤 범죄자로 전락할지 모른다. 우리는 흔히 잘 나가던 목회자들이 재물을 탐하거나, 혹은 성문제에 얽혀 본인의 커리어를 잃어버리거나 한국교회에 크나큰 손실을 입힌 사건들을 알고 있다.

때문에 목회자들의 윤리의식의 단초를 놓아줄 신학교의 역할이 중요하다. 그런데 작금의 신학교는 이와 반대로 가고 있다. 요즘 신학교들은 인성과 목회적 소양을 갖춘 목회자를 양성해 내는데 전력을 쏟기보다는 교세확장이라는 울타리에 갇혀 함량 미달의 목회자들을 양성해 내고 있다. 이는 비단 장로교만의 문제가 아닌, 한 때 한국교회의 새바람을 일으켰던 감리교와 기장 등 교단에서도 똑같이 발생하고 있다. 신학교가 돈벌이 수단으로 전락했다는 비난까지 받고 있다. 신학교육 정책이 진지한 성찰 없이 지금과 똑같이 재탕에 삼탕을 할 경우 지금의 상황보다 더욱 큰 위기에 처할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따라서 신학교는 깊은 영성을 함양하고 창의적인 사고와 높은 도덕성을 갖춘 인재를 발굴할 수 있는 커리큘럼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기 위해서는 단순히 목회적 신학교육을 넘어서 인격적인 교육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학교 운영을 위해 한명이라도 더 신입생을 유치시키려는데 혈안이 되지 말고, 한명이라도 제대로 졸업시키겠다는 마음가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신학교별로 정원을 감축하는 것도 효과적인 방법이다. 물론 경제적으로 당장은 어렵겠지만, 멀리 내다보면 한국교회 전체에 큰 도움이 된다. 이는 곧 하나님이 좋아하시는 결과를 도출해 낼 수 있다. 정원이 줄어든다면 학교에서도 신학생 한명, 한명의 영성을 함양하고 심성과 도덕성을 길러주는데 보다 더 관심을 기울일 수 있다.

그리고 한국독립교회선교단체연합회가 이미 오래 전부터 목사안수 후보생들 전원을 대상으로 인성, 심리검사 실시하고 있는 것처럼, 신학생들의 인성을 검사할 수 있는 다양한 방법을 동원하는 것도 좋다. 사실 최근 일어난 각종 사건에서 알 수 있듯이 평상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던 사람들이 갑자기 돌변해 살인자가 되거나 범죄자가 됐다. 이들의 인성을 평상시 알았더라면 최소한 끔찍한 살인은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이와 함께 비단 신학교 재학생들뿐 아니라, 매너리즘에 빠진 목회자들의 재충전의 기회를 제공하는 목회자 재교육도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우리나라 교육의 특성상 대학교만 들어가면 공부를 안한다는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목회자들도 마찬가지다. 목회자가 된 이후 자가당착에 빠진 목회자들이 앞서의 사건들의 주체자가 되지 않도록 목회자가 된 이후에도 자기 관리와 경건훈련을 할 프로그램이 절실하다.

다만 목회자 재교육을 조금은 강제성을 띠도록 만드는 것도 필요하다. 사실 잘나가는 목회자들의 경우 스스로 높은 자리에 앉아있다는 자만심에 빠져 재교육에는 관심도 보이지 않는다. 목회자 재교육을 단순히 잘 나가지 못하는 목회자들을 위한 위로의 자리라고 치부하는 경우도 있다. 하지만 반드시 목회자 재교육은 필요하다. 목회자로 부르신 거룩한 소명을 되새기고,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소중한 시간이기 때문이다. 자칫 나태해진 영성과 윤리의식을 바로잡을 기회마저 놓친다면 훗날 땅을 치고 후회할지도 모른다.

목회자 윤리강령 절실

이런 의미에서 최근 기독교윤리연구소가 제정한 ‘목회자 윤리강령 28’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르면 목회자는 먼저 하나님의 자녀로 부르심을 받은 후에 은밀한 개인적인 부르심을 받아야 하며, 그 후에는 교회의 비준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목회자는 믿음, 겸손, 인내, 모범적인 삶, 세상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 태도, 성도들에 대한 자애와 엄격함, 열매를 위한 간절한 바람과 기대를 갖추어야 한다.

이와 반대로 목회자는 다른 사람들보다 더 죄에 빠지지 않도록 주의하고, 자만·투기·탐욕·분노·음욕·태만 등을 경계하며, 숫자에 집착하지 않고, 개인주의에 빠지지 말고, 타인을 배려하며, 공개적이고 투명한 태도로 교회정치에 임해야 한다. 더불어 목회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인 권한을 남용하여 성도들을 성폭력의 대상으로 이용해서는 안 된다.

‘목회자 윤리강령 28’ 3장 목회 윤리와 교회정치는 작금의 한국교회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선 목회자의 건실한 교회정치가 필요하다. 목회자는 교회의 교회됨과 하나님 나라를 향한 사회적 섬김 역량 강화를 위해 교회와 교단의 건설적인 정치에 힘써야 한다. 또한 교회정치는 품위 있고 질서 있는 교회를 세우는 것으로, 이를 위해 목회자는 ‘적극성’과 ‘협력성’이라는 기본 원리에 기초해 자신의 역할과 책임을 규정해야 한다.

이와 함께 목회자는 종교개혁자들의 후예로서, 교회정치가 성경적인 원리를 올바르게 적용하고 있는지, 또한 시대적인 요구에 부합한지를 끊임없이 반성하고, 교회의 교회됨을 위한 개혁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목회자의 성윤리적인 부분에 있어서도 목회자는 자신도 성적 존재로 창조된 것을 인정하고, 성을 긍정적으로 누리며 살아가야 한다. 하지만 목회자가 저지른 성적 탈선은 하나님의 공동체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히는 것임을 명심하고, 성을 오용하거나 과도하게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더불어 목회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영적 권력을 남용하여 여성도들과 성적 일탈 관계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간혹 목회자가 영적인 능력으로 치유해주겠다면서 성도들을 현혹하는 일이 있는데 이는 절대적으로 지양해야할 대목이다.

뿐만 아니라 목회자가 성적 탈선에 빠지면 영적으로 권위 있는 목회를 할 수 없게 되고, 상대 여성에게 치유 불가능한 내상을 입힐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이는 교회에 상처를 줄 뿐만 아니라 이웃과 사회를 대상으로 한 복음 사역에 걸림돌이 되므로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자신의 한순간 선택이 본인은 물론, 피해자와 지역사회까지 영향을 미칠 수 있음을 각별히 유념해야 한다.

따라서 목회자는 정직한 자기 인식과 성직자로서의 자아 정체감을 재확인하고, 가능한 한 신체적 접촉을 자제해야 한다. 더불어 견실한 결혼생활이나 동료 모임을 유지하는 등 성적 탈선의 위험을 미리 감지하고 예방해야 한다. 덧붙여 목회자의 성적 탈선이 일어난 경우 교회 안에서 적법한 절차를 통하여 정의롭게 처리하고 회복의 길을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원만하게 해결하지 못할 경우 교회가 풍비박산이 날 수 있음을 유의하고, 공명정대하게 해결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작금의 한국교회에 산재된 문제는 너무도 많다. 당장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는 현실을 슬기롭게 극복하기 위해 그 원인을 찾아 개혁과 갱신으로 거듭나야 한다. 또한 암울한 사회가 밝은 세상이 될 수 있도록 교회가 나서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 남과 북이 하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전 세계에 흩어진 한민족이 손을 맞잡아 갈 수 있도록 단초를 놓아야 한다. 무엇보다 하나님의 복음이 세상 끝까지 퍼지도록 전진, 또 전진해야 한다.

그런데 이처럼 가장 세속적인 문제로 발목이 잡혀 있으면 안된다. 이제는 목회자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이 땅에 모범이 되어 든든히 서가야 한다.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가장 투명한 모습으로, 가장 인간다운 모습으로, 가장 선한 모습으로 이 사회와 세상이 온전히 서도록 달려가야 한다. 그것이 바로 주의 종으로서 갖추어야할 가장 기본적인 자질임을 기억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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