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명 환 목사

<요한복음>에는 예수님은 자신이 ‘생명의 밥’이라고 여러차레 말하고 있다. 이 말은 예수님껫허 영원한 생명을 주는 ‘영원한 밥’이라는 말이다. 이 말을 영적인 말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학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예수님은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을 때,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생명의 양식인 밥을 나누어 먹었다. 특히 세리와 같은 죄인들과 밥을 나누어 먹었기 때문에 “세리와 죄인의 친구”라는 비난도 바리사이파 사람과 대제사장들로부터 받았다.

또한 성서에는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5천명을 나누어 먹인 이야기가 있다. 이 이야기도 예수님께서 신통력을 발휘해서 물고기 두 마리와 보리떡 다섯 개로 많은 사람을 먹였다는 식으로만 이해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픈 가난한 사람들과 더불어 집단적으로 생명의 양식인 밥을 나누어 먹은 사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굶주린 사람들이 예수님과 더불어 음식을 함께 나눌 때, 그들은 깊은 사랑과 연대의 경험, 영원하고 풍부한 하나님이 임재 하는 경험을 했다. 이 이야기는 집단적 경험을 담은 예수님의 기적으로 보아야 한다. 음식을 나누어 먹는 것이 예수님의 삶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특징을 이루고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설명할 때도, 잔치로 비유해서 말했다. 어떤 왕이 큰 잔치를 베풀고 사람들을 초대한 이야기로써 예수님은 하나님나라를 설명했다. 예수님이 사람들과 음식을 나눌 때, 단지 물질적인 것만을 나눈 것은 아니다. 음식을 나눔으로써 삶을 나누었고, 삶을 나눔으로써 사랑과 평화의 길이 일치했다. 참으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 것이다. 그런데 오늘 일부 목회자들이 하나님의 ‘임재’함을 오용하고 있다. 이 오용은 결국 ‘이단’이라는 올무를 쓰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예수님은 밥만을 나누어 준 것이 아니다. 십자가에 달려 죽음으로써 자신의 몸과 생명까지 인간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하나님의 사랑으로 나누어 주다보니 결국 자신까지 세상의 모든 사람에게 나누어 주게 된 것이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철저하게 나눔과 섬김의 삶을 살았다.

예수님은 나눔의 삶을 살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자신의 살과 피를 우리에게 나누어 주었다. 그리스도는 부활한 후에도,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자리에 나타났고, 밥을 나눌 때 알려졌다.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도, 밥을 나누어 먹으면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알아 보았다. 여기에는 예수님의 삶 전체가 담겨져 있다.

예수님은 오늘도 다른 곳에서 알려지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함께 나누는 곳에서, 음식을 나눔으로써 삶을 나누고, 사랑과 평화가 일치하는 곳에서 알려진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밥을 나눔으로써 오늘의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증거 할 수 있다. 이 나라에서 물질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에게 물질을 나누어 주고, 노동자와 농민들이 그 일한 대가를 충분히 받을 수 있도록 할 때, 교회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알아볼 수 있다. 예수님은 구체적인 우리의 삶 속에서, 생명의 양식인 밥을 서로 나누고, 서로 아픔을 나누는 곳에서 우리와 함께 살아 계시다. 그래서 교회를 향해 행동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또 예수님의 ‘삶의 현장’인 역사의 현장으로 들어가라고 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사랑과 평화의 길을 열어야 한다고 말한다.

인천 갈릴리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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