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우리는 준전시상태라는 휴전 이후 초유의 대북 위기를 경험하였다. 물론 북한의 저자세와 협상의지로 졸지에 평화국면으로 전환되었지만, 아쉬운 것은 여기에 이 땅의 주역의 한축임을 자임하는 교회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같은 위기 앞에서는 한없이 약해지고 또한 추해지는 것인데, 이를 막고 영적인 보호막을 치열하게 제공하
선진국이란 세금의 규모도 있겠지만 세금을 국민을 위해 투명하게 쓰는 나라이다. 지도자의 부정부패가 아닌 투명도를 말하는데 교회의 재정도 마찬가지이다. 투명한 재정을 위한 규모가 있는 교회 중에 모범적인 사례 교회도 있다. 그러나 대형 교회의 재정의 비리로 인해 개척교회 목회자들이 같이 도매로 취급받고 있다. 한겨례 신문에 나와 있는 사례를 보면 기가 막히다
오늘 대한민국은 지역간, 계층간, 세대간, 노사간의 갈등이 심각하다. 양극화 현상은 나라를 파국으로 몰아넣는 망국병임에 틀림없다. 이제 양극화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 등 모든 분야에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병리현상이다. 정치권은 보수와 진보의 이념 논쟁 속에서 소모적인 다툼을 계속하고 있고, 경제적으로는 부자와 가난한 자 사이의 괴리감은 갈수록 벌어지고 있
오늘날 한국교회는 분열과 갈등에 신음하고 있다. 하나 된 한국교회는 너무나 먼 꿈일 뿐이다. 이는 교단 간 이기주의가 팽배하고, 서로가 이해관계에 얽혀 자신들의 기득권만 주장하기 때문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한국교회는 대사회적인 영향력을 갈수록 상실하고 있다. 계속되는 마이너스성장 속에서 한 줄기 희망마저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일각에서 한국교회의 회
바야흐로 장로교 총회 시즌이 도래했다. 한국교회 다수를 점하는 장로교는 거의 9월 중에 일제히 총회를 개회한다. 장로교의 본류라 할 수 있는 예장 통합과 합동, 기장은 나란히 100회기 총회를 맞는다는 점에서 특별한 의미가 있다. 장로교는 1912년에 총회가 조직되었으나 일제 말 3년간 총회를 열지 못했고 6.25 전쟁 발발로 1년간 지연돼 올해 제 100
대다수의 장로교단 총회가 일제히 열리는 9월이 다가왔다. 각 교단은 총회 준비 막바지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다. 모두가 성총회를 염원하는 마음으로 장인이 구슬을 한 땀, 한 땀 꿰듯이 몰입하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올해는 대부분의 장로교단이 100회 총회로 준비하고 있다. ‘100’이라는 숫자는 주는 의미도 있지만, 추락한 한국교회를 다시 되살려 보겠다는
귓불을 할퀴고두 뺨을 때리면서종점을 망각한 채 달려가던지리한 겨울 눈바람잦아질 날 없더니그토록 기다렸던춘삼월 봄바람 불어와도봄이 봄답지 않은 것은 왜일까늙은 지구의 모함일까저 북녘 하늘골골샅샅 들려오는 아사(餓死)의 신음성 때문일까그래도오늘 난봄 언덕에 서서올까 말까 망설이고 있는,상처뿐인 창백한 봄을 손짓하면 기다리고 있다 시는 음률과 은유라는 기본적인
대부분의 사람은 누구나 자신이 하는 일에 대해서 실패를 반복하면서도, 그 일을 놓지 않는다. 그러한 결과는 뻔하다. 유턴해서 돌아가면, 무엇인가가 보일 텐데 왜 실패를 반복하면서까지 하던 일을 놓지 못하는 것일까. 그것은 다른 일에 대해서 자신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이다.또한 이것은 아이들 교육도 마찬가지다. 아이들이 숙제도 않고, 텔레비전에 눈을 고정시키고
우리말 국어사전은 "공동체"(共同體)를 "생활과 운명을 같이하는 조직체"라고 정의하고 있다. 우리가 "교회"라는 말과 함께 "공동체"라는 말을 사용하는 이유는 "공동체"라는 말이 가지고 있는 특별한 의미 때문이다. 공동체는 구성원들 사이의 친밀하고도 인격적인 교제를 전제한다. 이런 교제가 있기에 생활과 운명을 같이할 수 있게 된다. 교회는
가을의 문턱인 9월 한국장로교 제100회 총회가 각 교단별로 일제히 개회된다. 세월의 수많은 흐름 속에서 십자가지고 숨질 때 되도록 찬송 부르면서, 교회와 노회와 총회를 지켜낸 분들이 있었기에 100회기라는 거대한 원년을 맞는다. 그러나 제100회 총회의 과제는 그 어느 회기보다 더 많은 과제를 안고 있다. 교단들의 명예를 실추시키고 있는 작금의 여러가지
오늘 그리스도를 뺀 제왕적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니다. 그것은 교회가 그리스도를 주인으로 하는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겉으로는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며,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공동체라고 강력히 주장한다. 그러나 오늘 한국교회의 속을 깊이 들여다가 보면, 이 같은 인식은 한 번에 사라진다.교회는 분명 그리스도의 것이다. 헌데 오늘 한국교회는 그
사람의 일생 중에 좋은 스승을 만나는 것은 가장 큰 복이라 할 수 있다.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스승은 예수님이시다. 히브리적 사고에는 스승이 제자를 선택한다는 것은 스승이 나를 제자 삼고 제자의 생명과 모든 것들을 책임지고 스승의 일을 물려주겠다는 의미다. 제자는 그것에 대해 당신을 스승으로 모시고 나의 생명을 스승에게 맡기겠다 그리고 스승의 일을 그대로
SBS 간판 프로그램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위험한 속삭임-수화기 너머, 검은 혀’ 편에서 ‘보이스피싱’의 전말을 밝혔다. 그동안 알고 있던 ‘보이스피싱’과 개념자체가 다른 수법에 소름이 끼칠 정도였다. 모르고도 당하고, 알고도 당한다는 익명의 제보자 말이 귓전에 맴돌 정도다.‘보이스피싱’이라 함은 전화를 활용해 불법적으로 개인 정보(주민등록번호, 신용
숨 가빴다고 말했던 무박 4일의 남북 협상이 6개항의 공동발표문으로 정리되었다. 그 동안 한반도는 소위 일촉즉발이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군사적 대치 상황을 극대화시켜가며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북은 준전시상태를 선포하고 국가 전체를 전쟁체제로 변경하고 군대를 전개하였고, 한미 양국은 웨치콘 2상태의 실적 직전의 경계상태를 유지하며 대북 무력시위를 계속하고
동심은 창조의 원형이며꿈은 실체의 반영이다어젯밤 꿈속에 나는, 나는 한 점 바람이었다.실낙원의 뒷뜰에 이삭 줍는 청지기로아! 바람이 분다.재잘대는 해 맑은 숨소리동심은 아직도 살아 있어잠든 창가에 콩콩 뛰는 가슴으로침전하는 나를 깨운다.동심은 토종 육모로새싹 틔워낸 씨방처럼빈 껍질로 지켜온 교단 반 백년웃고 울고 아물지 않는 상처가그리움은 이십사 계절마지막
목회자에 대한 ‘윤리지침안’이 마련된다는데 환영의 뜻을 전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윤리성과 도덕성을 가장 큰 덕목으로 삼아야 하는 목회자에 대한 ‘윤리지침안’ 마련이라는 말이 나온다는 점에서 애석한 마음도 있다. 그동안 미혼모들의 자조모임을 만들어 이들의 윤택한 삶을 지원해온 필자로서는 마음 한구석이 편치 않다.그것은 분명 역으로 말하면 목회자들의 가장 큰
정신없이 바쁜 이 성하(盛夏)의 계절에 목회자들은 오히려 고독에 빠지는 아이러니를 겪는다. 디모데후서는 노인이 된 바울이 두 번째 로마감옥에 수감되었을 때, 그의 사랑하는 믿음의 아들 디모데에게 마지막 유언처럼 써 보낸 편지여서 이 편지에는 그 동안 철저히 절제되었던 바울의 개인적인 감정들이 풍부하게 나타난다. 특별히 디모데후서 마지막장인 4장에는 바울의
지난주 에 ‘할머니 미안해’이란 제목의 컬럼이 실렸다. 필자는 황호관 목사님이었다. 황 목사님은 일본군 위안부로 끌려간 김혁의 저서인 에 나오는 이야기를 소개했다. 춘자 일행이 어떻게 위안부로 끌려왔으며, 그들이 당한 고초를 적나라하게 적었다.가난한 조선의 딸들은 ‘방직공장 여공 모집’이라는 감언이설에 속아 힘겹게 아리랑 고개
세상은 보이는 세계와 들리는 세계의 치열한 충돌로 말미암아 크게 요동을 겪고 있다. 교회의 권위가 추락하는 현재의 조짐도 여기에 붙들려 있다는 판단을 배제할 수가 없다. 그렇지 않은가, 한번 우리 자신부터 검색에 들어가면 웬만하면 긍정을 하게 될 것이다. 교회당의 외모가 화려해졌고, 목사들의 복장이 화려해졌다. 박사학위가운으로 휘감고 있는 모습은 어찌 보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