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에서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시기 전 제자들과 성만찬을 하신 후 함께 한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역은 길이 지금처럼 아스팔트로 된 좋은 길이 아니었고 돌과 흙으로 만들어진 험한 길이었다. 유대인들은 맨발로 샌들을 신었기 때문에 발이 보호를 받지 못하고 돌, 흙의 먼지 때문에 상처 나고 더러웠을 것이다. 그래서 집집마다 문 앞에는 물 항아리가 항상 있었고 손님의 방문 시에는 주인의 종이 와서 손님의 발을 씻겨주기도 했다. 종을 거느릴 만한 형편이 안 된 사람들은 주인이 직접 손님의 발을
오늘 카톡에 행복을 주는 글 하나가 올라왔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사람이 공감할 수 있는 내용이라 나와 가까운 사람들과 공유한다. 글의 내용은 한마디로 옛날사람과 오늘을 살아가는 사람과의 인격적 차이, 가치관의 차이, 생활의 차이, 생각의 차이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는데 큰 의미를 부여해 준다.옛날 우리의 아버지는 힘겨웠던 시절을 어떻게 사셨을까. 당시에는 과학기술도 없고, 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드론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카톡도 없고, 페이스북도 없었다. 한마디로 모두가 불통의 시대, 갑갑한 세상에서 살아간 것 같이
시편 37은 히브리어 알파벳 순서를 따라 작성된 지혜시다. 이따금 답관체(踏冠體)라는 한자어로 설명된다. 히브리어 알파벳을 각 구절의 ‘머리’[冠]에 씌워 첫 글자로 삼았다는 뜻이다. 시인은 22글자를 2절마다 하나씩 사용한다. 알파벳 순서는 시의 내용을 쉽게 연상하며 동시에 암송할 수 있는 장치가 된다. 주제는 의인의 보상이며(16,21,25,32,39절) 크게는 인과율이다. 저자는 전도서의 철학자일 수 있으나 생활 속의 교훈을 가르치는 교사였을 가능성이 크다. 시편은 고대 이스라엘의 도덕, 교훈을 위한 교재로 활용되었다.전체적으
이제 국회의원을 선출하는 총선거가 얼마 남지 않아서일까? 기독인들 간의 의견이 심하게 충돌되는 것을 보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다는 ‘그리스도인’들 간에도 다툼이 심화될뿐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사랑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심히 염려된다. 특히 상대가 하는 말이 과연 성경에 부합 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부합하는가 하는 등은 고려 대상도 되지 않는다. 물론 생각의 차이는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이념, 사상적 사고로 억지를 부리는 일은 삼가야 하지 않겠는가? 심지어 무속, 사이비, 이단 등도 상관이 없어 보인다. 오
복음서에는 예수님 주변에 오랜 세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병으로 고통과 고난 속에 살아왔던 각색 환자들이 모여들었다. 예수님은 자신을 바라보고 온 이들을 일일이 고쳐 주시면서 이 환우들이 몸이 아픈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함이라고 하시면서 자신이 하는 일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라고 하셨다. 성경에 병을 낫게 하여 주면서 거기에 따른 대가를 수수한 기록은 없다. 기록에는 당시 병에 고생하던 자가 병을 완쾌되었을 경우 반듯이 제사장에게 보여야 하며 보이러 갈 때는 예물을 가져가는 관례가 있었다. 그러나 복음서에 예수님은 제자
“이는 우리가 믿음으로 행하고 보는 것으로 행하지 아니함이로라”(고린도후서5:7)어느 권사님을 심방을 했을 때 권사님은 “목사님, 제 스스로 걸어서 교회에 갈 수만 있다면 더 큰 복을 바라지 않겠습니다.”라고 말했다. “두 발로 설 수만 있다면, 들을 수만 있다면, 말할 수만 있다면, 볼 수만 있다면, 먹고 소화시킬 수만 있다면, 수술을 받을 수만 있다면, 수술비만 있다면, 몇 개월만 더 살 수만 있다면….”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우리는 종종 본다. 그런데 놀랍게도 누군가의 이 같은 간절한 소망을 우리는 너무 자연스럽게 누리며 살고
성경에 이름이 기록된 구레네 사람 시몬에 대해 마가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고 기록하고 있다. 구레네 지방은 북아프리카 동북쪽에 있는 지중해 연안의 도시로 오늘날 리비아의 수도인 트라폴리를 말한다. 당시에 죄수는 자신의 십자가를 직접 지고 가야 되는 것이 법이었고 십자가를 지고 갈 때 빠른 길로 인도하지 않고 되도록 사형장까지 먼 길을 돌게 한 후에 십자가에 달리게 했다. 예수님도 법에 따라서 십자가를 직접 짊어지고 가셨다. 유월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구레네 지방에서 예루살렘으로 왔던 구레네 사람 시몬은 군병들이 예수님을 사형장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가복음10;45)한때 성공회 주교를 꿈꾸던 사무엘 브렝글이라는 미국의 목사가 구세군에 입대하려고 대서양을 건너 영국으로 왔다. 그때 부스 사령관은 그가 구세군에 들어오는 것을 못 마땅히 여겼다. 왜냐하면 그는 어깨에 힘이 들어가 있었고 미국에서도 존경받는 목회자이기에 높은 계급을 기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스 대장은 브렝글에게 말했다. “당신은 너무나 오랫동안 지도자로서 군림했습니다. 그래서 당신은 우리 구세
마가복음 16장에서는 예수님의 부활사건과 40일간의 사역, 예수님의 지상명령, 승천 사건을 기록하고 있다. 부활하신 주님이 자살한 가롯 유다를 뺀 나머지 열한 제자가 음식을 먹을 때 그들에게 나타나셔서 예수님의 부활의 소식을 들었어도 믿지 않았던 제자들의 믿음이 없는 것과 마음이 완악한 것에 대해 꾸짖으셨다. 주님께 복음 사명에 대한 가르침을 받았지만 제자들은 주님이 가신 후에 남아있을 자신들이 받을 핍박에 대한 걱정과 육적인 삶의 안위를 더 우선시하며 근심에 쌓여있었다. 그러나 예수님은 깨닫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온 천하를 다니며
“사람은 그 입의 대답으로 말미암아 기쁨을 얻나니 때에 맞는 말이 얼마나 아름다운고”(잠언15:23)“니고데모는 신분이 세리였고 키가 작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예수님을 몹시 보고 싶었습니다.” 어느 목사님이 설교중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설교를 듣던 성도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목사님은 설교가 은혜가 있어 그런 줄 알고 더 큰 소리로 설교했다. “그때 예수님이 니고데모가 사는 동네에 오셨습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보고 싶어 나아갔으나 키가 작아 뽕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설교가 이쯤 되자 성도들이 “와”하고 웃어버렸다. 그때
한기총·한교총, 사소한 일에 묶여 통합 안 되면 한국교회 큰 손해진보와 보수 상관없이 우리 사회와 한국교회 위해 일할 사람 중요한국기독교총연합회는 국가와 민족, 나아가 세계 속에서 다양하게 요구되는 도전 앞에서도 교회를 보호하며,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전파의 사명을 감당하는데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다. 특히 대교회적, 대사회적으로 한국교회를 대표하는 연합기관의 책임을 다하고 있으며, 갈수록 벼랑 끝에 내몰린 한국교회를 정상에 올려놓기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그동안 표류하고 있던 한기총을 바로 잡기 위해 두문분출하고
3.1만세운동 105주년을 맞았다. 3.1만세운동은 고종의 인산일인 1919년 3월3일에 앞서 이 땅의 백성들이 일본제국주의에 항거하여 3월1일 독립을 선언하고, 비폭력만세운동을 일으킨 사건이다. 1년간 계속된 만세운동의 중심에 교회가 있었다는데 민족사적, 교회사적 의미가 크다. 또한 3.1운동은 3천년간 이어져 온 봉건통치를 종식시키고, 민주국가 건립의 개시를 알리는 민족운동, 독립운동, 해방운동이었다.당시 교회를 중심으로 일어난 3.1만세운동은 서울과 경기도서 397차례, 황해도서 177차례, 강원도서 79차례, 충청도서 201
시온은 시편에서 흔한 칭송의 대상이다. 거룩한 산(시 2:6; 43:3), 축복과 구원(시 14:7; 128:5), 아름다운 시온(시 50:2), 사랑하는 시온(시 78:68; 87:2), 주의 처소(시 74:2), 영원한 공간(시 128:1), 선택하신 곳(시 132:13), 통치 공간(시 146:10) 등등. 그중에서 시편 48은 가장 빼어난 시온 노래에 속한다.히브리어 ‘시온’은 뜻은 확실치 않다. 건조해서 식물이 자랄 수 없는 땅이나 바위와 돌투성이의 쓸모없는 지역일 수 있다. 본래 시온은 여부스 족이 자리한 예루살렘 남동부
2. 사이버 교회와 온라인 예배 논쟁 비대면 예배를 선도하는 사이버 교회 (Cyber church)의 온라인 예배 (Online Worship) 가 디지털 기술문명의 빛과 그림자를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필자는 아직 한국교회 내에서는 사이버 교회, 혹은 인터넷 교회만을 운영하는 곳이 있다는 말을 듣지 못했다. 다만, 각 곳에 있는 지역 교회가 보조 수단으로서 웹사이트를 활용하고 있는 정도로만 파악하고 있다.그러나 전 세계적으로는 “스크린 세대”가 성장하면서, “영상”을 보는 것에 익숙해져 있다. 아주 어린 아이들부터 시작해서, 거의
‘토마스 모어’(Thomas More)를 두고 가히 목숨 바쳐 신앙양심을 실현한 명재상이라 할 수 있다. 죽음의 위협 앞에서도 자신의 신앙을 굳건히 지켰던 최후진술에서 그는 이렇게 말했다. “진실하고 충직한 신하는 영혼과 양심을 존중해야 할 의무가 있다.”그는 ‘케더베리’ 대주교구의 성직자 회의가 국왕의 인가 없이는 교회법규를 제정하거나 회의를 소집하지 않겠다는, 이른바 성직자의 굴복(Submission of Clergy)문서를 수락한 날, 즉 헨리 8세를 영국교회의 영적 지도자로 맞아들이게 된 날 1532년 5월 16일 국사의 짐
105주년을 맞은 3,1절이 지금은 무늬만 3,1절이지 그 정신은 이미 기독교도들의 정신 속에서 탈색된 지 오래된 기분이다. 기독교 신앙을 가진 당대의 신자들은 나라의 운명이 풍전등화와 같을 때 살신성인의 신앙과 믿음으로 나라 독립을 위해 분연히 일어섰었다. 일제는 최신무기로 한국 백성을 탄압하였지만, 한국인 가운데 기독교도들은 신앙이 곧 애국임을 내세워 총과 칼을 앞세운 일제 순사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손에는 오로지 태극기만 들고 무저항 투쟁을 벌였었다. 특히 기독교 신자들은 신앙을 가진 사유 가운데 하나가 나라가 위태할 때는 언
예수님이 베드로와 야고보, 그의 형제 요한 세 제자를 데리고 올라 간 높은 산(변화산)에서 제자들은 예수님의 얼굴이 해 같이 빛나고 옷은 빛과 같이 희어졌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보게 되는 신비한 체험을 하게 된다. 베드로는 주님과 모세와 엘리야를 위하여 초막 셋을 짓고 자신들은 그 장소가 너무 좋으니 내려가지 말자고 예수님께 말했다(마 17:1~4). 오늘 본문에서는 산 아래에 있던 나머지 제자들에게 일어난 사건에 대해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과 세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자 어떤 한 사람이 예수님께 꿇어 엎드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해진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 1980년 3월, 프랑스 파리의 부르세 병원에 많은 사람에게 존경받는 한 지성인이 폐수종이라는 병으로 입원했다. 그는 한 달 동안 이 병원에 입원해있으면서, 소리를 지르고, 찾아온 사람들에게 고함을 치는 등 발악을 했다. 그는 죽음에 대한 불안과 공포 때문에 자기의 병명이 무엇인가를 곁에서 돌보는 자기 아내에게조차 묻지 못했다. 아내 역시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 자기 남편에게 그의 병명을 말하지도 못했다. 이 사람이 바로 실존주의 철학자 장 폴
“이재명 더 이상 방탄조끼 입는 꼴 못 보겠다”‘대장동 키맨’ 유동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이 14일 오전 여의도 자유통일당 중앙당사에서 자유통일당(당대표 장경동, 고문 전광훈) 입당을 공식화 하고, 더불어민주당 당대표인 이재명 의원의 지역구인 인천 계양구을에서의 총선 출마를 선언했다. 자신을 ‘이재명의 측근이었고, 공범, 죄인’이라고 밝힌 유 전 사장은 “껍데기 밖에 안 남은 이재명이 더 이상 여러분이 주신 표로 방탄조끼를 만들어 입는 꼴을 못 보겠어 나왔다”고 출마의 변을 밝혔다. 그러면서 “(계양을) 도시에 인프라를 깔고, 서울
스데반 집사가 복음을 전하다 많은 사람의 돌에 맞아 순교한 날, 예루살렘 교회는 많은 핍박과 박해를 받았다. 사도 외에 성도들은 뿔뿔이 흩어져 베다니와 구브로, 무역의 중심지 수도였던 안디옥까지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게 되었다. 안디옥 교회는 팔레스타인 북쪽 수리아에 있는 이방 나라에서 최초로 세워진 이방 교회였다. 안디옥 교회는 여러 계층의 다양한 사람들이 모여(행 13:1) 한뜻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했다. 재능이 있고 가르치는 일에 은사가 있는 교사들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선교에 앞장섰고 예루살렘 교회를 오히려 도울 정도로 선교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