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한 개그 프로였던 봉숭아 학당이 최근 그 이름만으로 사람들의 입가에 웃음을 준다. 정작 그 프로 때문이 아니라 진짜 봉숭아 학당 때문이다. 사실 그 프로를 보면서 엉똥해도 너무 엉뚱한, 현실을 넘어 무엇을 풍자하는 지도 모를 억지 웃음을 유발하는 스토리 때문에, 그런데 그 설정이 학당이라는, 어쩌면 가장 정석적이요 합리적이요 보편타당성을 갖추어야 하는
가정이 파괴되어 가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아가고 있다. 이혼율이 갈수록 증가하고 있고 청소년들의 비행도 위험수위가 넘어섰다. 부모에 대한 효심도 찾아보기 어려울만큼 우리의 가정윤리는 심각한 수준에 이르렀다.사회범죄도 엽기적이다 못해 입을 다물지 못할 정도다. 5월은 가정의 달임에도 패륜적인 범죄가 잇따르고 있다. 지난 1일 경남 사천에서 아내와 남매가
예로부터 우리나라를 향해 동방예의지국이라 부르는 이유는 동쪽에 있는 예의를 잘 지키는 나라라는 뜻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향해 이르던 말이다. 그만큼 예의범절을 잘 지켰고, 윗사람을 공경하는 마음이 한결같았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나라의 면모를 살펴보면 윗사람을 공경하는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예의범절에 어긋난 행위가 도를 지나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비단 사
한국교회가 말하는 이단?사이비의 잣대는 어디에 두고 있는가(?) 한국교회 교인 모두는 이단 및 사이비로 혼란을 겪고 있다. 그것은 교인, 아니 국민들이 보기에 대부분의 교회가 성경과 다른 모습인데, 누가 누구를 이단이라고 정죄 할 수 있느냐(?)는데 강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분명 성경말씀에 벗어난 신앙생활과 교회공동체는 이단 아니면 사이비라는 것에 대해
삼대라는 말에 그렇게도 깊은 뜻이 있었으리라고는 내 짧은 식견으로는 늦게야 깨닫고 사람의 지혜로움이 하나님의 어리석음보다 못하다는 것을 요즈음은 새롭게 실감하곤 한다.과거 한 때 우리는 둘만 낳아, 하나만 낳아, 잘 키운 딸 하나 열 아들 부럽지 않다는 등등의 구호를 통해 마치 못 사는 것이 식솔이 많은 연고요 잘 살려는데 길을 막고 방해하는 악조건은 자식
이 땅에서 힘겹게 살아가는 모자가정, 이 가정의 엄마도 누군가의 딸이며, 생명의 존엄성을 깨닫고 스스로 아이를 키우겠다고 나선 우리의 자랑스러운 딸이다. 이들의 모습은 한마디로 대견스럽고 아름답다. 아이를 낳아 버리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정한 엄마가 아닌,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깨달은 우리의 딸들이다. 이들도 분명 우리 아이들의 엄마이며, 누군가의 딸이
“부모 되기는 쉽지만 부모 노릇 하기는 쉽지 않다”는 옛말이 있다. 당연한 말이다. 자녀를 둔 부모가 “어떻게 하여야 자녀들을 잘 키울 수 있을까?”의 질문은 자녀를 둔 부모들의 영원한 과제일 것이다. 명절이거나 어버이 날 등에는 어머니 생각이 심난할 지경으로 깊다. 유독이 많은 자녀들을 키우신 우리 어머니께서 어떤 일로 마음이 상하실 때면 이르시던 말씀이
만물이 소생하는 생명의 계절 5월도 반 이상이 지나갔다.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 왕성한 활동을 시작했다. 이것은 분명한 변화이다. 그리고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하찮은 피조물들도 새로운 변화와 삶을 지적했음에도, 하나님의 형상 그대로 지음을 받은 인간은 변화될 줄을 모른다는데 문제가 있다. 이것은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질서에 반하는 행동을
5월 24일 주일은 전 세계 교회가 함께 지키고 있는 성령강림절이다. 하지만 우리 한국교회는 이 절기의 의미와 중요성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맥추절에 대한 잘못된 이해 때문이다. 해마다 한국 교회는 봄 추수가 거의 끝나는 무렵에 맥추감사절을, 가을 추수가 끝날 무렵에는 추수감사절을 지켜 왔다. 이러한 분류가 성경에서 말하고 있는 개념이 아님에도 불
정부가 수학여행 서비스 업종에 ‘KS인증’ 도입을 추진한다는 소식이다. 지난해 전국을 눈물바다로 만들었던 세월호 사고 등 크고 작은 수학여행 도중 사고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잠금장치인 셈이다. 이에 따르면 교육부는 수학여행 계약 시 업체의 안전요원 배치를 의무화하고, 중장기적으로 ‘수학여행 안전지도사’라는 국가자격을 신설키로 했단다. 앞으로 KS인증을 통
부산에서 일가족 5명이 숨진 사건이 발생했다. 가정의 달을 맞아 비보도 이런 비보가 없다. 부산의 한 고층 아파트 단지 화단에 A씨가 숨진 채 발견됐다. 또 A씨의 아파트에서도 A씨의 아버지와 어머니, 누나, 조카 등 4명이 목이 졸린 흔적으로 발견됐다. 경찰은 이들 일가족 사망사건을 두고 아들이 합의하에 나머지 가족을 목 졸라 숨지게 하고, 본인도 아파트
나는 목사로서 제일 두려워하는 말씀 몇 곳이 있다.“…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때에 내가 그들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태7:22b-23), “…누
더 이상 교회는 성범죄의 안전지대가 아니다. 오히려 성범죄자들이 은밀하게 숨기에 더 없이 좋은 공간이 되어 버렸다. 서울 강남의 한 대형교회 목회자가 지하철역에서 여성들을 몰래 촬영하다 덜미를 잡혔는가 하면, 여신도 상습 성추행 논란으로 입에 오르내렸던 모 목사는 여전히 건재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성직자인 목사가 여성 교인들을 대상으로 성범죄를 저지르고
네팔의 참사를 하나님의 징벌이라 말하지 말라. 처참하게 죽어간 그 불쌍한 영혼들을 위하여 목숨을 건 선교사들과 죽어간 순교자들의 피를 위하여서도 그렇게 말하지 말라. 우리는 네팔을 휩쓸고 있는 악한 영들과의 싸움에 피흘릴 뿐이지, 아무런 힘이 없는 저 불쌍한 영혼의 비참한 최후를 가슴 아파하며 그들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우리 한국 교회가 가진 모든 힘을
낮게 낮게고개를 낮추고 허리를 낮추고생각을 낮추어 가장 겸손한 모습으로 메마르고 푸석거리는 마음밭을촉촉하게 적셔주는 은혜. 봄비가 은혜라는 말이다. 다른 계절에도 비가 내릴 턴데 어찌 봄비만 은혜를 표징하는 대상으로 동원하였을까. 서둘러 말하라면 봄비의 촉촉함에 있다. 그것은 거칠지 않고 부드러워 폭력적이지 않는 이미지를 빌어 왔을 것이다. 이 작품은 계시
젠더와 섹스는 우리말로 '성'이라는 같은 말로 표기되지만, 영어로는 미묘한 의미의 차이가 있다. 최근 페미니즘(feminism : 여성억압의 원인과 상태를 기술하고, 여성해방을 궁극적 목표로 하는 운동 또는 그 이론)의 어법에서 젠더는 생물학적으로 다른 성에게 부여되는 사회문화적 기원의 특성들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된다. 페미니스트(feminist : 여
5월은 '가정의 달'이다. 가정의 달의 의미는 사랑과 정성으로 일궈내는 가장 소중한 보금자리가 가정이라는 것을 일깨우고 항상 화목하고 행복하자는 바람을 담고 있다. 매스컴에서는 온 가족이 함께 나들이를 하고, 외식을 하며, 문화행사에 참여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러나 우리는 겉으로는 드러나 보이지 않지만 그렇지 못한 사람들에 대해 생각해보는 여유가 필요
한 엄마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서점을 방문하였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주신 소중한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자녀 양육에 관한 책을 한 권 골랐다. 그리고 아이에게도 읽고 싶은 책을 한권 가져 오라고 했다. 그런데 그의 자녀도 엄마가 선택한 것과 유사한 책을 가지고 왔다. 그래서 그 부모가 아이에게 물었다. “너는 왜 자녀 양육법에 관한 책을 사려고 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을 따로 떼어놓고 말할 수 없다. 하나님을 말함으로써 인간을 말하고, 인간을 말함으로써 하나님을 말해야 한다. 하나님은 인간과 더불어 사는 존재로 창조했다. 하나님 안에서 산다는 말은 이웃과 더불어 자연과 더불어 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문제는 아담과 이브가 범죄를 저질렀듯이, 인간 모두는 탐욕에 길들여진 나머지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한국교회 안에는 목사다운 목사, 아름다운 목사는 없는가(?) 또 교회다운 교회가 없는가(?)교인들은 묻고 있다. 그것은 한국교회의 목사들이 가진 것을 내려놓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리고 교회가 지니고 있던 맑은 정신을 세속에 빼앗겨, 교회의 정체성을 살실한 것과 무관하지 않다. 2년전 타계한 ‘법정스님의 의자’는 국민 모두에게 감명을 주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