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대한민국은 심각한 저출산 문제로 미래가 암울하다.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져 국가적으로 출산율 올리기에 다각도의 노력을 하고 있지만, 위기경보는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다. 오히려 시간이 갈수록 출산율 최저치를 계속 경신하는 웃지 못 할 상황에 처했다. 그럼에도 묘수라고 떠올릴만한 대책이 마땅치 않아, 정말 특단의 조치를 내리지 않을 경우 우려가 곧 현실로 닥칠지 모른다. 그렇다면 그 특단의 조치는 어디에 있을까. 오늘 출산율 저하는 아이를 낳고 마음껏 기를 수 없는 환경과 형편에 원인이 있다. 맞벌이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한국교회가 위기에 처해 있다는 우려는 부정하고 싶지만, 현실이다. 한 때는 세계에서 유례가 없을 정도로 부흥성장의 모델이었으나, 이제는 되찾아야할 과거의 전유물(?)이 되어 버렸다. 유럽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으며, 브레이크 없는 자동차가 비탈길을 내려가는 것처럼 위태롭다. 높은 곳만을 향해 앞만 보고 달려온 결과다. 이대로 가다가는 정말 한국교회 존폐위기에까지 몰릴 지경이다. 이제라도 가던 길을 멈추고 되돌아봐야 한다. 코너까지 가서 후회해봤자 이미 늦는다.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선 먼저 근본적인 원인을 찾아야 한다. 오늘 한국
tvN 토일드라마 (극본 박지은, 연출 장영우 김희원)이 최고 시청률을 기록하며 종영했다. 미국의 타임지(TIME)의 호평을 시작으로 최고의 글로벌 인기를 누리고 있는 이 작품은 재벌 3세 홍해인(김지원 분)과 용두리 이장 아들 백현우(김수현 분)가 결혼 3년 만에 이혼 위기에 직면하며 온갖 시련을 겪지만 오직 ‘눈물’을 통하여 다시 사랑하게 되는 이야기다. 백현우는 홍해인의 시한부 인생 3개월 소식을 듣고 처음엔 기뻐하다가 이내 절절한 눈물을 흘리며 심경의 변화를 일으킨다. 그는 기억을 잃게 될 해인에게 “네가 그
서울신학대학교가 ‘유신진화론’ 논쟁에 휩싸였다. 이 대학 박 모 교수가 ‘창조론’을 비난하고 진화론을 수용하는 ‘유신진화론’을 주장하자 이사회가 징계를 논의하면서 외부 보수·진보 학회간의 뜨거운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문제의 첫 발단은 서울신대가 신학전문대 과정에 ‘창조과학’ 과목을 신설하고 전문가를 초빙하자 박 모 교수가 “창조과학을 사이비 과학”이라고 비난한데서 시작됐다. 학내에서 시작된 논쟁이 대학 밖으로 번지자 지방회 목회자들이 대학측에 조사를 요청했고, 대학측이 신학 검증위원회를 열어 조사한 결과 박 모 교수의 주장이 교단
이승만 정권의 독재와 부정부패에 온 국민이 저항해 민주주의를 되찾은 시민 혁명4·19혁명 국가조찬기도준비위원회(이하 4.19선교회)는 제42회 4·19혁명 국가조찬기도회를 지난 26일 오전 11시 서대문 4·19혁명 기념도서관 강당에서 드렸다. 4·19민주혁명회, 4·19혁명 희생자 유족회, 4·19혁명 공로자회와 함께 한 이날 예배는 박해용회장의 사회로 대회장 김영진 장로(전 농림부장관)의 개회사, 강영준 목사(예장합동연합 총회장)목사의 개회기도, 부회장 배해원 장로의 성경봉독, 자매 여성 듀엣 클레시스의 찬양(주의 은혜라) 등의
한국개혁신학회는 일부 신학자들이 유신진화론을 주장하는 상황에서 그 무엇보다도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론을 다시 한번 되새기면서 본 성명서를 발표하고자 한다. 유신진화론에 동조하는 일부 신학자들의 목소리가 최근에 신학교와 학회와 교회를 어지럽히는 상황에서 한국개혁신학회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창조론이 신구약성경에 근거한 신앙과 진리를 굳게 세워줌으로써 그 어떤 악조건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교회를 지키려는 성도들의 기도에 부응하고자 한다.종교개혁자 칼빈은 하나님께서 세계를 무로부터의 창조하셨으며, 모든 생물의 종(kind)들을 계통을 따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이곳저곳에 아름다운 꽃들과 사랑스러운 나무들로 가득한 봄을 주셨다. 우리는 그 봄의 생명들이 움트는 모습을 바라보고 피부로 직접 느낄 수 있어서, 우울함보다 밝은 미소를 짓게 된다. 그것들은 마치 해 맑은 어린아이의 얼굴을 보는 듯하여 우리를 행복하게 한다. 그래서 사람은 무엇을 보느냐가 매우 중요하다.하나님께서 마련해주신 낙원에 살던 하와는 “하나님께서 절대로 따먹지 말라는 선악과를 보니 먹음직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하여, 결국 자신도 따먹고 남편 아담에게도 먹게 하
사실 기독교인이 기독교를 불신한다는 표현은 껄끄러운 일이지만 기독교에 다니는 자들 가운데 이런 비판을 스스럼없이 하는 자들이 있다. “ 나도 기독교인지만 기독교가 하는 일은 마음에 안 들어, 세상에는 굶주림에 처한 자들이 수도 없이 많고 전쟁으로 고통과 고난에 처한 난민과 이념 또는 사상과 정치적으로 핍박받아 목숨을 부지할 수 없는 자들도 넘쳐나며, 먹을 음식도 마실 물도 없는 나라가 한두 곳이 아닌데도 교회는 건물을 저렇게 많은 돈을 드려 건축하는 이유를 도대체 모르겠다.” 푸념하는 이들이 부지기수다. 그런데도 기독교 지도자들의
나의 아내와 나는 유대계 크리스천이다. ‘미하이’가 다섯 살 되었을 때 우리는 시내 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은 것을 기념하는 축제인 ‘심해 토라’(글자 그대로의 뜻은 ‘율법을 즐거워하는’ 이다)를 당해 그를 회당에 데리고 갔다. 율법을 적은 두루마리가 회당 안에 돌려지면 사람들은, 특히 아이들이 그것에 입을 맞추기 위해 앞으로 나선다. 그 행렬이 우리 가까이에 왔을 때 ‘미하이’가 내게 물었다. “저도 두루마리에 입을 맞춰야 하나요?” ‘네 마음에 달렸다.“ 나는 가기 전에 이미 그에게 그날과 의식의 의미에 대해 설명을 해주었다.
누구나 외모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 문제는 외모를 보고, 그 사람의 모든 것을 판단한다는데 있다. 그래서 요즘 사람들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모습 있는 그대로를 보전하지 않고, 마음대로 뜯어 고치는 일을 서슴치 않고 있다. 이런 사람은 자신을 감추는 것과 다르지 않다. 또한 하나님의 형상대로 완전하게 지음 받은 인간의 본 모습을 인위적으로 바꾸는 것으로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위반하는 것이기도 하다. 로마서 2장11절에 "이는 하나님께서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아니하심 이니라"고 기록되어 있다. "는 행복과 풍요로운 삶의 절대적인
거름 없이 농사를 지을 수 없듯이 영적인 거름 없이 영적인 농사를 지을 수 없다. ‘정직한 자의 형통’이라는 농사를 짓기 위해 우리는 ‘정직한 자의 고통과 억울함’ ‘정직한 자가 바보 됨’ ‘정직한 자의 실패와 눈물’ ‘정직한 자의 망함’이라는 거름을 이 땅에 뿌려야 한다.죽으면 결국 교회를 지킬 수 없다는 생각으로 신사참배를 한 사람들이 있었다. 아무리 옳은 일이라도 죽으면 끝이라며 신사참배를 하고라도 살아남아 교회를 지키려 한 갸륵한 사람들(?)이 있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를 지킨 것은 살아남은 자들이 아니라 믿음으로 순교한
사람들은 무엇인가 부족할 때 두려워한다. 돈이 부족할 때, 건강이 부족할 때, 지식이 부족할 때 등 어떤 것이 부족함으로 하고 싶은 일들을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라는 두려움이 생길 수가 있다.자본주의 사회에서는 무엇보다도 돈이 부족해서 겪는 불편함을 넘은 두려움을 가지게 된다. 이렇게 돈이 부족할 때 우리에게 필요한 믿음이 있다.먼저 우리의 부족함을 채워주시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이 있어야 한다.예수님께서 광야에서 무리들에게 말씀을 가르치고 난 후 어느 새 저녁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제자들이 예수님께 이들을 마을로 보내서 각자
우산이고 싶다 그리움에 젖어 비가 내린다우산에 떨어지는 글씨들꿈과 사랑을 던진 초록빛으로 쓴 기억세월의 파편들로 새겨놓은 유적빠르게 늙어가는 내 모습에서도아련한 그대로 중학교 가는 길까마득한 마음이 열리고분주한 거리의 우산들이 소리치는소멸의 항로를 따라 떨리는 심장 소리우산 위의 빗소리였다는 걸머무를 수 없어 떠나는 시간빗소리로 새긴 세월의 기억을 만지며사랑을 받쳐 주는 우산이고 싶다-시집 『세월, 나였다』에서* 이병률 시인 : 《표현문학》 등단. 진안문인협회 전 회장. 진안예술인상 수상 등우산이라는 대상에 대해 화자의 인식을 살펴
요한일서 4장11절에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이같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우리도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고 기록되어 있다. 하나님은 참사랑이시다. 은 순수하고 진실한 사랑을 말한다. 조건 없는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어리석은 사랑이다. 문제는 오늘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 현대인은 하나님의 참사랑을 잊고 살아간다는 것이다.예수 그리스도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이 바로 삶의 현장이었다. 이 곳에서 사회와 가정으로부터 버림받은 가난하고 소외된 문둥병자, 창녀, 귀신들린 자 등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노력하지 않는 사람은 밥도 먹지 말라고 했다. 노력하지 않고 성공하기를 바라는 사람은 맨손으로 허공을 치는 것과 같다. 오늘날 노력도 하지 않고 쉽게 살려고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특히 젊은이들은 부모의 덕을 보며 살려고 하는 풍토가 자리를 잡았다. 좋은 일자리만을 선호한다. 그렇다보니 젊은 실업자가 그 어느 때보다도 많다는 정부의 통계는 어렵고 힘든 과거를 살아온 필자를 비롯한 어르신들은 이해할 수 없다.잠언 3장11절과 12절에 "내 아들아 여호와의 징계를 경히 여기지 말라 그 꾸지람을 싫어하지 말라 대저 여호와 께서 그 사랑
“그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보 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 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 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 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 16:4)우리는 봄이면 쑥이나 냉이를 나물로 먹는다. 향긋한 봄나물은 이른 봄 잃어버린 입맛을 돌아오게 하는 데에 그만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모르는 것 중에도 먹을 수 있는 풀이 굉장히 많다. 은 그중 하나이다. 이름이 낯설지 모르지만 이 들꽃은 우리 주위에서도 흔하게 볼 수 있다. 아직 음지에는 찬바
시인은 하나님이 순간 이동하듯 자유롭게 나는 모습을 그룹에 비견하여 재치 있게 묘사한다. ‘그룹에’ 앉아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는 장면을 포착한 것이다. 특히 ‘바람 날개’와 관련하여 두 동사가 나란히 나온다. ‘야오프’는 마음대로 날다는 뜻이고, ‘예데::’는 쏜살처럼 공중으로 빨려 들어간다는 뜻이다. 그러니 ‘높이 솟아오르셨도다’는 은 ‘flew and came swiftly’보다 훨씬 더 역동성이 살아난다. 두 동사는 지진과 화산, 폭풍과 우레 등 두려움과 공포 가운데서도 민첩하게 움직이시는 하나님의 구원
성경은 우리에게 종말에 대한 교훈을 여러 곳에 기록하고 있으며, 예수께서도 종말에 대한 교훈을 계속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러함에도 오늘날 기독교에서는 종말론에 대하여 금기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그 이유는 이단, 또는 이단성을 가진 집단들이 종말론을 자신들의 집단 유지를 위하여 사용하고 있기 때문으로 기성교회에서 종말론을 말하면 자칫 이들과 동종의 집단으로 취급될 것을 우려하기 때문이다.신학적으로 볼 때 조직신학에서도 종말론에 대한 교육은 아주 기본적인 것만을 다루고 있으나 성경 전체를 살펴볼 때 우리는 종말에 대한 더 많
2. 인터넷 기술은 극심한 양극화를 초래한다인터넷 교회의 최대 장점이자, 최악의 문제는 사람들을 나눈다는 사실이다. 인터넷 기술에 접속할 수 있는 계층과 이런 디지털 기술문명에 접근이 불가능한 빈곤층 사이의 양극화는 정말로 극심하다. 컴퓨터 사용이 편리하고, 스마트 폰을 비롯해서 태블렛 등 고가의 전자 제품을 구입할 수 있으며, 그것들의 사용에 따르는 상당한 막대한 비용을 지불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인터넷 교회에 가입할 수 있다. 그러나 가난하거나, 인터넷 망이 제대로 구축되지 못한 사람들은 전혀 접촉할 수 없다. 부익부 빈익빈이라는
세상은 혼자 살아갈 수 없다. 너와 나, 그가 서로 기대어 살아가도록 창조됐다. 너와 내가 주고받으면서 아름답고 행복하게 살아가야 한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질서이다. 창조적 섭리이라. 헌데 모두가 욕심쟁이가 되어 혼자만 살겠다고 아우성친다. 배려와 배품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세상이 됐다. 성경 이사야 63장7절에 "내가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모든 자비와 그 찬송을 말하며 그 긍휼을 따라, 그 많은 자비를 따라 이스라엘 집에 베푸신 큰 은총을 말하리라"고 기록되어 있다. 데일 카네기(Dale Carnegie, 1888~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