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방안엔
바알간 숯불이 피고,
외로이 늙으신 할머니가
애처로이 잦아드신 어린 목숨을 지키고 계시었다.
이윽고 눈 속을
아버지가 약을 가지고 돌아오시었다.
아 아버지가 눈을 헤치고 따오신
그 붉은 산수유 열매--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
젊은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에
열로 상기한 볼을 말없이 부비는 것이었다.
이따금 뒷문을 눈이 치고 있었다.
그 날 밤이 어쩌면 성탄제의 밤이었을지도 모른다.
어느새 나도
그때의 아버지만큼 나이를 먹었다.
옛것이라곤 찾아볼 길 없는
성탄제 가까운 도시에는
이제 반가운 그 옛날의 것이 내리는데,
서러운 서른 살 나의 이마에
불현듯 아버지의 서느런 옷자락을 느끼는 것은,
눈 속에 따오신 산수유 붉은 알알이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
김종길 시인의 「성탄제」는 시집 『성탄제』(삼애사. 1969)에 실려 있다. 그리고,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시.(문학과지성사. 2007)에도 수록되어 있다. 이 시의 창작자인 김종길 시인 자신이 1969년 판 시집에 수록하였고, 또 2007년 판 선집에 재수록한 것이므로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시』(문학과지성사. 2007)의 것을 최종 확정본으로 보아야할 것이다.
김종길 시인 작고를 맞아 시인의 시 중에서도 널리 알려진 시「성탄제」를 살펴보면서 원텍스트로부터 상당한 오류가 넘쳐나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특히,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 등에 실린 시들이 심한 일탈을 보이고 있었다. 시 「성탄제」의 2행 ‘바알간’이 ‘빠알간’으로 잘못 표기된 것이 많았고,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생’이 ‘나는 한 마리 어린 짐승’으로, ‘옛것이란 찾아볼 길 없는’이 ‘옛 것이라곤 거의 찾아볼 길 없는’으로 마지막 행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가 ‘아직도 내 혈액 속에 녹아 흐르는 까닭일까?’로 되어 있는 것도 있었다. 이 외에도 월점, 행 구분, 연 구분이 잘 못된 것들도 많았다. ?표 하나가 붙는가의 여부도 그렇다. 특히 ‘바알간’과 ‘빠알간’, ‘짐생’과 ‘짐승’은 단순한 음상의 차이만이 아니다.
『문학과지성사 한국문학선집, 시』(문학과지성사. 2007)에 실린 김종길의 시 「성탄제」를 아래에 수록한다, 원텍스트에 맞게 전해지고 읽혀지길 바란다. (2017. 4. 3, 이건청).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