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그리스도인들처럼 공통점을 많이 가지고 있는 모임은 찾아보기 드뭅니다. 세상 사람들은 고향이 같다는 이유로, 또는 출신 학교가 같다는 이유로 친하게 지내고 하나로 뭉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보다 훨씬 더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아버지를 섬기며, 같은 소망과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같은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우리는 정말 많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하기에 우리가 실질적인 생활에서 어떻게 서로 하나됨이 적용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서 알아야 합니다.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롬15:1)

모든 성도들은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 힘을 얻기를 원합니다. 그 누구도 책망 받기를 원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 뿐 아니라 오늘날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은 피곤하고 힘든 삶을 살아갑니다. 직장에서, 사회에서 시달리며 살아갑니다. 또한 믿는 사람으로 살아가는 것이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따듯한 위로와 격려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 역시 서바나로 가기 전에 로마 교회 성도들을 만나 힘을 얻길 원했던 것입니다. 서바나에는 전쟁이 바울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주일날 우리에게 위로가 필요한 것은 월요일부터 전쟁터에 나가기 때문입니다. 직장을 다니는 것, 사업을 하는 것 등이 모두 전쟁터에서 싸움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을 지키기 위해서,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전쟁터로 나가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위로와 격려를 받을 수 있는 날은 교회에 오는 주일입니다. 그 때에 성도들과의 교제를 통해서 힘을 얻고 싸움터로 나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주일에 교회에 와서는 늘 책망을 받는다면 힘을 얻을 수 없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신앙의 거인이라 할지라도 위로와 격려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너무도 연약하고 평범한 우리들은 더욱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강해 보이고 성숙해 보이는 사람들에게도 위로 격려가 필요합니다. 사도 바울은 여러 형제들로 위로를 받고 힘을 얻었습니다.(몬 1:17,20) 또, 때때로 그는 물질적인 도움을 통해서도 큰 위로를 받았습니다.(빌 4:14-18) 다른 성도들을 격려하고 위로할 때, 우리는 말을 통해서도 그를 위로할 수 있지만 물질을 통해서도 성도들을 위로하고 격려할 수 있습니다. 작은 물질을 통해서도 큰 위로를 받을 수 있습니다. 목회자들을 볼 때 강해보이고 흔들리지 않을 것 같이 보이지만 그들도 동일하게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오늘 누군가를 위로하는 위로자가 되어야 합니다. 말과 기도의 위로 뿐만 아니라 행동으로 위로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강하고 담대하며 어떤 힘겨움도 다 견디고 모든 영적 싸움에서 승리 할 것만 같은 사도 바울도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위로를 받아야 하는 연약함이 있었습니다. 때로는 교회와 성도들로부터 오는 위로가 필요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너희와 사귐으로 얼마간 기쁨을 가진 후에”(롬15:24절) 로마 성도들과의 교제로부터 얼마간의 기쁨을 얻기를 원한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감당하며 살아가는 현장에서의 형편을 고전 4:11-13에 이렇게 증언합니다. “바로 이 시간까지 우리가 주리고 목마르며 헐벗고 매 맞으며 정처가 없고 또 수고하여 친히 손으로 일을 하며 후욕을 당한즉 축복하고 핍박을 당한즉 참고 비방을 당한즉 권면하니 우리가 지금까지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끼 같이 되었도다.” 바울 사도가 당한 이러한 형편이 오늘날 세상에서 믿음으로 살아가는 모든 성도들의 영적 전쟁과 같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일을 날마다 경험하는 성도들에게 필요한 것은 진정한 위로입니다, 죽임 당할 뻔 한일을 여러 번 겪은 이에게 필요한 것은 주님의 은혜 안에서 오는 따뜻한 ‘위로’입니다.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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