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황 인 찬 목사

본(基本)이 되어 있지 않은데 능력이 일어날 수는 없다. 바른 기본을 가져야 큰 능력을 얻는 것은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리와 같다.

예수님을 누구든지 주님이라 부를 수 있다. 누구나 주님을 부른다고 해서 주님은 아무에게나 주님이 되어주시지는 않는다.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롬10:13) 여기서 '누구'는 마음으로 믿어 주를 부르는 사람이다. 마음으로 믿는 믿음의 사람이 주님을 부를 때에 예수님은 주님이 되어 주신다. 이것이 믿음의 원칙이다. 신앙생활에는 원칙이 있다.

예배는 그 자체로 존중되어야 한다. 예배를 위한 우리의 준비(시간엄수, 복장), 예배자의 태도, 휴대전화의 사용습관 때문에 그 품격(品格)이 떨어져서는 안된다. 예배의 격을 떨어뜨리는 사람은 다름 아닌 바로 교회안의 성도들이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가 삶이나 사회생활에 표준을 제시하는 향도(嚮導)적 역할을 감당하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일 하나에도 원칙이 있다.

하나님에 대한 태도가 점점 더 주께서 원하시는 모습으로 되어가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인생과 예배와 대인 관계의 표준을 결코 낮추어선 안된다. 말하는 것, 생각하는 것, 대인관계(對人關係), 등등도 그렇다.

하나님의 사람, 사도 바울의 삶과 신앙에는 원리에 입각한 분명한 원칙들이 있었다. 하나님 앞에 선 사도로서 하나님에 대한 원칙과 대인관계, 대 사회에 대하여 원칙이 분명했다.

어떤 상황이든지 하나님께서 주신 원리와 원칙이 분명하면 흔들리지 않는다. 예수를 믿어 그리스도인 된 우리들에게 신앙과 삶의 원칙을 갖는 것은 당연하다.

‘돈(경제)은 손해 보더라도, 주님을 향한 믿음은 결코 손해 보지 않으리라.’는 믿음의 원칙을 가진 성도와, 상황 따라 형편 따라 원칙을 바꾸는 성도가 있다면, 과연 어떤 성도가 믿음의 진보와 일관성을 경험하겠는가?

중요한 것은 어떤 상황이 발생하기 전에 신앙과 삶의 원리와 원칙을 확보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은 자신에게 먼저 적용하여 실천하고, 성도들에게도 적용하기를 원했던 원칙이 있었다. 성도의 삶과 생각이 하향평준화가 아니라 상향조정되기를 꿈꾸었던 사도의 심정을 공유하고, 높은 수준의 신앙원리와 원칙으로 나를 성찰해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웃의 유익(有益)을 먼저 생각하는 원칙을 가졌다.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전10:24). 인간은 본능적으로 이기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도다운 성도가 되려면 이웃의 유익을 먼저 생각해야 한다.

당시 고린도지역은 상업이 발달하고,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곳이다. 시장에 나오는 고기들은 이미 우상 제물로 드렸다가 다시 시장으로 나오는 경우가 다반사(茶飯事)였는데, 이런 상황에서 우상 제물을 먹는 것이 가(可)한지를 질문했다.

이에 사도는 교회답고, 성도다운 문화를 만들기 위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는 원칙을 밝힌다. 다른 사람의 유익을 구한다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 기쁨을 주어 저희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을 말한다(고전10:33).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께 나아 올 수 있도록 그들의 유익을 구하라는 것이다. 이미 예수 믿는 우리들은 예수 믿는 사람들의 원리가 생활에 배어듦으로써 이웃이 본받을 만하게 되어 그들을 복음에로 이끌어야 할 책무를 가졌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는 것은 결코 아첨하는 것과는 다르다. 상대를 존중함으로 그 영혼이 예수를 만나게 하고, 믿음 공동체 안에서 예수 믿는 사람들의 품격을 올림이다. 우리가 다른 사람을 유익하게 하기 위해 그리스도인 된 자신의 절제가 절실히 필요하다.

“모든 것이 가(合法的/Lawful, Permissible)하나 모든 것이 유익(Profitable, beneficial)한 것이 아니요,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Constructive, build up)이 아니니”(고전 10:23)

예수 믿는 사람들은 영적인 면에서 과거의 모든 죄와 허물로부터 용서받고, 참된 자유를 누리는 사람들이다. 따라서 우리는 이 자유를 오용(誤用)해서는 안된다. 내게 법적으로는 하자가 없더라도 모든 것이 덕을 세우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교회생활과 대인관계의 원리는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사려 깊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것이다. 이기주의자로 가득 차 있는 곳은 지옥이고, 이타주의자로 가득한 곳은 천국이 된다.

<다음 주에 계속> 의왕중앙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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