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섣달
열엿새 기망(旣望)
둥근 만월 하늘을 채우다

엄동
쨍그랑 소리 나는
강추위

하늘도
검푸름으로
밤물결 너울 이는
한강 길

따사로운 가슴으로
둥근 달 한 아름 안고
함께 걷는
두 연인

 -창조문예 17년 4월호에서

* 한상원
『心象』으로 등단. 연세대학교 부총장 한국문헌정보학회 회장. 국제도서관 협회연맹 이사
시집 『편지』 『그대는 나의별』

▲ 정 재 영 장로
시의 정의 중 하나인 언어로 그리는 예술이라는 말이 있다. 이때 그리는 기법으로는 은유와 상징 등 문학적 수사법을 사용한다. 이 말은 화자(시인)의 정서를 눈에 보이듯 시각화하려 한다는 뜻이다. 시에서 형상화작업이라는 말이 그것을 의미한다. 은유나 상징 또는 역성이나 아이러니 등을 사용하였으니 작품 속에 나오는 언어의 일상적인 의미와 다른 뜻으로 바꿔 두었다는 것을 전제하고 읽으라는 것이다.

 시인이 <시작여담>에서 ‘극심한 혼란과 불안이 동토의 엄동설한의 겨울밤에 본 수퍼문 달밤에 정신의 고향인 사랑과 꿈을 지니고 있는 한강 길의 연인에게서 소망을 발견했다’고 밝힌 대로, 단순한 사랑의 이야기가 아닌 어려운 사회상의 인식을 사랑의 가치에 희망을 의탁하고 있음을 알게 해준다. 

 이 작품은 단형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이는 시의 생명인 절제미와 언어의 간결미을 위해  응축미를 시도하려는 목적이다. 담고 있는 내용은 문학의 영원한 주제이다. 이것은 인류 보편적 가치인 존재와 사랑이라는 명제임이 틀림없다. 이런 주제를 시각 이미지를 동원하여 동양화를 그리듯 짧은 행과 연 사이의 공간에 다양한 상상을 삽입해 두었다. 

 기망(旣望)이란 보름에 뜨는 달이 아닌 열엿새 날에 보이는 둥근달이라는 말이다. 이는 보름이 지나 사라져야 할 만월을 보게 된다는 희망의 가닥을 말하고 있다. 여기에 겨울 한강 길을 걷는 연인의 사랑의 마음으로 시대적 희망을 설파하려는 의도를 겹쳐 설치하고 있다. 이런 이질적인 이미지의 두 상관관계인 외연과 내포 사이에서 생기는 긴장이 바로 자유시의 외재율이다.

 추운 겨울 한강과 따사로운 두 연인의 가슴인 이질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설정하여 새로운 이미지를 생성, 화자가 관념이나 정서를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창작법이 곧 융합시학의 모습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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