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 재 형 목사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아직도 더 큰 믿음을 얻어 보려고 몸부림치고 있으나 이 믿음은 사람이 제조할 수 있거나 자기 자신 속에서 스스로 노력하여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선과 도덕적 완전성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니며 열심히 봉사한 대가로 혹은 자선을 베풀었으므로 얻을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 믿음은 저울로 달아 볼 수도 없고 그것을 그릇에 넣을 수도 없으며 어떤 물건처럼 분석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예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큰 믿음 보다는 바른 믿음을 바라는 사람이 찾아야 할 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함께 하시는 예수님이십니다. 모든 좋은 것과 온전한 선물을 주시는 분은 우리의 믿음의 창시자요 우리의 믿음을 완성시키는 분 곧 예수님이십니다. 그분은 다른 보혜사 곧 성령으로 오시어 영원토록 우리와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시고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하셨습니다. 매우 화창한 날씨에 호수는 잔잔하고 조용했으며 가는 도중에 예수님은 선미에서 잠이 드셨습니다. 그때 갑자기 큰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하여 작은 배는 막 뒤집혀질 지경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되자 드디어 주님을 깨우며 "주님, 주님, 우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부르짖었습니다. 그 때 예수님이 일어나 바람과 성난 파도를 꾸짖자 폭풍이 그치고 물결이 잔잔해졌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 믿음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들의 믿음은 언제나 그들과 함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을 잠시도 떠나지 않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이 곧 그들의 믿음인 것입니다. 그러나  제자들조차도 그들의 믿음이 예수님이신 것을 잘 모르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범한 실수는 문제의 풍랑에만 정신이 팔려 그들의 믿음이신 예수님이 배에 함께 계신 사실을 잊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진리를 배우게 됩니다. 각종의 풍파가 우리들 인생의 작은 배를 뒤집어엎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승리를 위한 우리들의 믿음은 손이나 발보다 더 가까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이 저와 여러분의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23장을 보면 아브라함이 그의 사랑하는 아내 사라가 죽었을 때 그녀를 매장하기 위해 묘지를 사는 장면이 나옵니다. 사라가 죽은 곳은 가나안 땅 헤브론이었습니다. 사실 이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에 아브라함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땅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그 땅은 아브라함에게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 땅의 주인은 여전히 강한 헷 족속 이었습니다. 그는 헷 족속에게 사라를 위한 조그마한 매장지를 팔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헷 족속은 아브라함에게 기꺼이 무료로 주겠다고 말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헷 족속이 보는 앞에서 땅주인이 요구한대로 은 사백 세겔이라는 매우 비싼 가격을 주고 기꺼이 그 매장지를 매수하였습니다. 이제 누가 보더라도 그 매장지는 아브라함의 소유였습니다.

왜 아브라함은 비싼 가격을 주고 가나안 땅에서 매장지를 샀을까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의 후손에게 언젠가는 약속의 땅으로 주어질 그 가나안 땅을 믿음으로 확보하는 믿음의 행위였던 것입니다. 믿음으로 가나안 땅 심장부에 믿음의 깃발을 꽂았던 것입니다. 사백 년 후에 여호수아를 통해 이루어질 미래이지만 아브라함은 그 미래를 바라보며 믿음의 깃발, 승리의 깃발을 가나안 심장부에 미리 꽂은 것입니다. 미래에 주어질 가나안 땅 전체를 바라보면서 지금 작은 땅을 사서 확보하는 행위를 하는 사람, 이런 사람을 우리는 믿음을 실천하는 사람이라고 부릅니다. 가나안 땅의 정복도 이 조그만 매장지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사실을 주목하십시오. 믿음의 사람들이 각자 처한 자기의 위치에서 하나님의 약속하신 말씀을 믿고 그 믿음을 따라 깃발을 꽂을 때 약속하신 말씀이 실체가 되는 역사를 보게 됩니다.

본지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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