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요즘 대한민국의 모습은 참담하다 못해 잔인하다. 세계 10위 경제대국이라는 이 땅의 아이들이 왜 계속해 주검으로 발견되는 것일까?

갓 태어난 아이가 부모에 의해 살해 당했다. 그 시신은 수 년 동안 냉동고에 유기됐다. 또한 길 가던 아이가 시내버스에 치어 죽임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또한 사이비종교집단에 빠진 부모와 신도에 의해서 아이가 죽임을 당하고, 3살 난 아이가 동거남에 의해서 살해되는 등 대한민국은 분명 아이들이 마음 놓고 살아갈 수 있는 나라가 아닌 것이 분명하다.

이뿐 아니라 얼마 전 인천에서는 8살 된 아이가 이웃 언니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다. 이와 함께 우리나라 곳곳에서는 새엄마와 새아빠에 의해서 아이가 죽임을 당했다는 이야기가 하루가 멀지않게 안방에 그대로 전달된다. 여기에다 다섯 아이의 아버지가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새로운 나라를 갈망하는 이 나라에서 일어나는 사건의 면모를 자세히 보면, 이 나라는 아이들이 꿈을 꾸며, 안전하게 살 수 있는 나라는 아니다. 그래서 부모들이 아이 낳기를 거부하고, 아이들이 살기 좋은 안전한 나라로 떠나고 있다. 아무리 천문학적인 재정을 쏟아 붙고서도 해결되지 않는 저출산 문제는 이처럼 당연한지도 모른다.

비보는 끊이지 않고 있다. 두 딸을 살해해 사채를 냉동실에 유기한 비정한 엄마는 구속됐다. 하지만, 엄마의 의해서 죽임을 당한 아이의 ‘한의 소리’는 하늘을 찌르고 있다. 매번 아이들이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했을 때마다 하는 소리이지만,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국민들은 죽임 당한 아이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도,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흘려보낸다. 갈수록 죽임당한 아이들의 ‘한의 소리’는 더욱 크게 들린다.

분명한 것은 사랑해서 낳은 아이니 만큼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이 하나님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모로부터라도 가해를 당해서는 안된다. 피조물 그 자체로 존중을 받아야 한다. 서로 사랑하고, 존중하며, 평화롭게 살아갈 권리를 가진다. 예수님은 아이들이 자신에게 오늘 것을 막는 제자들을 향해 천국을 이들의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부산에서 일어난 두 딸 살해사건은 역시 자신이 낳은 두 딸이 숨지자 동거남의 집 냉장고 냉동실에 시체를 유기했다. 그것도 3년 동안 아이를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했다는데 많은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사건은 동거남 여동생의 신고로 세상에 들어났다. 여동생의 신고 전까지 아기 시신의 존재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는데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마치 2002년과 2003년 서울 서래마을에 살던 프랑스인 부부가 자신이 낳은 아이 2명을 살해해 냉동실에 보관한 사건이 다시 떠오르게 하는 영아살해사건이었다.

예수님도 십자가 못 박혀 죽임을 당하기 전 “하나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니까”라며, 하늘 향해 절규했다.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이들의 ‘한의 소리’가 전국 곳곳에서 들려온다. 죽임 당하기 전까지 아이의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병원에서 태어난 아이는 3년 동안 행방불명 됐는데도 어떠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 생부에 대한 이야기도 없다. 경찰 조사결과 이 비정한 엄마는 2014년 9월 첫 번째 아기를 병원에서 출산한 뒤 남구 인근 수영구 자신의 원룸에 데려왔나 제대로 돌보지 않아 사망에 이르게 했다는 것이다. 둘째 딸은 직장 근무 중 조퇴한 뒤 자신의 원룸 욕실에서 샤워하다 출산했다. 키울 여력이 안돼 이틀 동안 방치되었다가 결국 숨져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됐다.

결국 이 두 딸의 비정한 엄마는 구속됐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아우성 소리, 아니 “한의 소리‘를 그냥 지나쳐서는 안된다.

더 이상 이 땅의 아이들이 자신을 낳아 준 부모와 이웃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 아이들이 없어야 한다. 정부의 관계부처가 죽임당한 아이들의 ‘한의소리’를 듣고, 이 땅의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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