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자연自然

나의 자정(子正)에도 너는
깨어서 운다
산은 이제 들처럼 낮아지고
들은 끝없는 눈밭 속을 헤맨다.
나의 풀과 나무는 다 어디 갔느냐.
해체(解體) 되지 않는 영원
떠다니는 꿈은 어디에 살아서
나의 자정(子正)을 부르느냐
따순 피가 돌던 사랑 하나가
광막(廣漠)한 자연이 되기까지는
너는 무광(無光)의 죽음
구름이거나 그 이전의 쓸쓸한 유폐(幽閉)
허나 世上을 깨우고 있는
잠 속에서도 들리는 저 소리는
산이 산이 아닌, 들이 들이 아닌,
모두가 다시 태어난 것 같은
기쁨 같은 울음이 달려드는 것이다.

▲ 정 재 영 장로
제목부터 자연이란 말을 들고 있음에서 시인의 의도성을 엿볼 수 있다. 자연의 뜻을 사전에서 보면 ‘사람의 힘을 더하지 않은 저절로 된 그대로의 현상. 또는 사람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우주의 질서나 현상’ 으로 되어있다. 즉 자연은 창작물이 아닌 저절로 있는 존재, 곧 창조적 존재물이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함이다. 따라서 자연법칙은 조물주의 법칙임을 암시하고 있다. 결국 그것은 겨울의 창조적 의미를 담고자 함이다. 많은 경우 자연을 보고 음풍영월에 치우치기 쉽다. 그러나 이 작품은 겨울자연을 보고 창조적 본성과 법칙을 깨닫고 난 종교나 철학의 주제를 아우르고 있는 작품이다. 자연 앞에서 우주적 인식과 생명의 존재론적 담론을 하고 있는 거시적 담론이다.

자정이란 소실점이자 생성점이다.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의 접점이다. 겨울이라는 시제를 통해 한해와 새로운 해의 접선의 경계 즉 죽음과 생명의 영원한 손잡음의 시간을 말하고 있다. 허무에서 소망을 제시하는 작품에서 이 작품이 다루는 의미망이 얼마나 광대한가를 함축하고 있다. 겨울의 들과 산을 단순화 시켜 시각적 이미지로 옮긴 종말론적 철학담론이다.

자연에서 풀과 나무는 철따라 바꾸는 장식물과 같은 것으로 보고 있다. 그것은 허무한 것들의 총체적 의미다. 그런 것들이 사라진 겨울 자연은 무광이다. 오직 순백으로 죽은 듯 있는 모습이 자연이 본질이다.

그러나 이 작품의 묘미는 앞 행의 전제와 달리 새로운 소망의 정서를 겨울의 침묵에서 함성으로 반전하는 대목에 있다. 자연을 총칭한 들과 산을 통해 사라짐과 동시에 새로움의 탄생을 인지하고 있다. 그것으로 인해 ‘기쁨 같은 울음’으로 다가온다. 이런 이질적인 요소 즉 허무와 존재의 양극성을 통해 진폭이 확장된 감명을 제시하는 융합미학을 보여주는 면에서 융합시학의 이론과 실제를 잘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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