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효 종 목사

최근 서울의 가장 잘 산다는 동네인 강남에서 그것도 대낮에 칼부림 사건이 일어났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5~6명의 시민들이 위험을 무릅쓰면서까지 나서서 범인을 제압했고, 피를 흘리며 현장에 쓰러져 생명이 위태로운 중년 여성을 살리기 위해 지압 등 응급처지를 벌여 소중한 생명을 구해냈다. 아직은 우리 세상에 이타적인 사랑이 존재하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러나 소름이 끼치는 것은 당시 현장에 있던 일부 시민들은 ‘도와 달라’는 간절한 부탁에도 도움은커녕, 사진을 찍거나 멀찌감치 구경만 했다는 점이다.

이처럼 백주대낮에 눈앞에서 칼부림 사건이 발생한다면 어떻게 할까. 위험에 처한 사람을 돕기 위해 쉽게 나설 수 있을까. 십중팔구 ‘당연히 나서야지’라고 생각하기보다는, ‘나도 피해를 보기 전에 도망가야지’를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일면식도 없는 상대를 구해내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안타깝지만 이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당시 현장에서 피를 흘리던 피해자를 지압하면서 ‘제발 신고해 달라’며 부탁했던 한 의인은 이러한 현실을 개탄하며, 인터넷에 글을 올리기도 했다. 누군가의 가족일지도 모르는데, 그저 사직을 찍고 구경하는 것은 너무 하지 않느냐는 볼멘소리였다. 덧붙여 비슷한 일을 보면 다시는 사진을 찍거나 구경만 하지 말라는 당부이기도 했다.

참으로 안타까운 현실이다. 오늘의 현실은 소위 방관자 효과, ‘제노비스 신드롬’으로 인해 남의 죽음이나 고통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이들은 ‘내 일도 아닌데, 무슨 상관이냐’는 생각으로, 자신의 눈앞에 어떤 일이 일어나도 무감각하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단지 ‘네 이웃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 아닌,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셨다. 네 이웃이 처한 상황이 어떻든 한 몸처럼 여겨야 한다. 그것이 진정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는 방법이다.

비단 이런 칼부림 사건뿐 아니라, 우리 사회에는 비슷한 일들이 많이 있다. 굶주림에 쓰러져 구걸을 하는 사람도 있고, 갈 곳이 없어 역사에서 노숙을 하는 사람도 있다. 정상인과 다르다는 편견으로 고통당하는 장애인들도 있고, 벌이가 없어 자식들 눈치 보는 어르신들도 있다. 또한 미혼모로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도 있고, 불타는 20대 청춘을 일자리를 구하기 위해 허비하는 청년들도 있다. 이 모두가 우리 주변에서 고통 받고 있는 우리 이웃들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는다. 자신의 일이 아니면, 상대방의 처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이는 ‘혼밥’, ‘혼술’, ‘1인 가구’ 등 혼자서 살아가는 세태가 유행처럼 되어버린 오늘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하고 있다. 이웃사촌이라는 말도 사라진지 오래다. 단지 나만 잘되면 된다는 것이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사회는 혼자서 살아갈 수 없다.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마찬가지로 나도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것이 사회다. 그렇기 때문에 도움을 필요로 하는 이웃에게 대가 없는 도움을 줄 때 그 가치는 값어치를 매기기 어렵다.

시대가 변하고, 혼자 사는 세상이 유행처럼 번졌다고 해도, 과거 품앗이를 하면서 서로 도움을 줬던 우리 사회가 훨씬 인간적이며, 하나님이 보시기에도 좋은 세상이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일이 아니라고 나 몰라라 하는 세상이 아니라, 누군가의 소중한 가족이라는 생각으로 도움의 손길을 건네는 아름다운 세상이 되길 소망한다. 모두가 사랑하며, 함께 살아가는 세상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예장 호헌 증경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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