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 용 호 목사

2017년 문재인 정부의 출범으로 남북 평화통일에 새로운 초석을 놓는 뜻 깊은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해 본다. 우리민족의 소원은 통일이다. 한반도에서 전쟁은 어떠한 경우에서든지 막아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 들어가야 한다. 교회는 그곳에 있어야 한다.

6.15 선언과 10.4 선언은 금방 통일이 이루어질 것만 같았다. 통일에 대한 장밋빛 희망은 ‘비핵•개방•3000’이라는 정부 구상과 ‘비핵화 없이는 대화도 없다’는 선언으로 실체가 사라 졌다.남북 정상 간의협정은 휴지조각이 되어 버렸고, 남북 간의 대화와 교류도 중단됐다.

어떤 경유에서든지 ‘남북 간의 교류가 중단’되어서는 안된다. 그런데 남북대회의 통로인 개성공단의 문이 닫혔다. 북한의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가 계속되고 있고, 남한과 미국의 군사훈련과 사드를 둘러싼 논쟁은 남북 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있다.

금방이라도 한반도에서의 전쟁이 일어날 것만 같다. 여기에다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남북한의 전쟁이 일어나 봤자 100만명 정도 죽는다고 아무렇지 않게 말한다.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서 남북한의 화해와 민족통일을 말해야 할 목회자들의 이 같은 태도는, 어찌 보면 핵전쟁을 하자는 말로 밖에 들리지 않는다. 특히 기독교의 집단들은 통일을 이야기 하고, 민족통일을 염원하는 국민들을 향해 ‘좌파’, ‘빨갱이’라고 거침없이 말한다.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인 우리에게 ‘화목하게 하는 직분’, ‘화해자의 역할을 감당하게 하는 직분’을 주셨다. 이것은 남북한 민족 모두가 하나님의 은총을 받도록 회복시키는 은총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반통일적이고, 반 화합적인 모습은 분명 반그리스도인의 행동이 아닌가. 화해는 먼저 대화가 선행되어야 한다. 그리스도인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들어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남북한의 화해와 평화적인 민족통일은 용서와 대화에서 출발한다. 왜 남북한 민족이 전쟁을 싫어하는가. 그것은 남북한 민족 모두가 동족상잔의 비극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주의의 주구’, ‘미국제국주의의 앞잡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의 협력자’, ‘사회계약의 걸림돌인 맹신자 집단’ 등으로 몰려 탄압과 박해를 받고, 심지어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많은 사람들이 희생을 당했기 때문이 아닌가.

재산까지 몰수를 당하고, 부모형제들이 고향을 버리고 남한으로 피난했다. 그러나 우리는 자신을 버린 형제를 용서한 요셉을 기억해야 한다. 요셉은 자신을 보고 두려워하는 형제들을 보고 말했다.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 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십시오”(창세기 50장 19절-21절)

요셉은 자신을 버린 형제들을 용서했다. 그리고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라는 말로 그들을 위로했다.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평화통일은 하나님께서 우리민족에게 복을 주기 위해서 예비하신 것이라 믿는다. 이를 위해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미움과 증오 그리고 불신을 버리고, 사랑과 용서, 그리고 이해와 신뢰로 북한동포들을 용서하고, 한민족의 화해와 평화적인 민족통일을 노래해야 한다. 한마디로 화해자와 중재자로서 하나님의 선교적 사명을 감당해야 한다. 이것만이 그리스도인들이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현장에 들어가는 것이다.

아가페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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