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길 자 목사

오늘 한민족에게 있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과거 이스라엘의 역사, 이미 한계점에 도달한 서양의 역사에서가 아니라, 현재적 분단된 이 민족의 상황에서 다시 고백되어야 한다. 이 땅의 여종들이 광복 72주년을 맞아 8천만민족을 위한 기도성회를 갖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이스라엘 역사와 서양기독교, 문화사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피압박민족의 역사와 현재에서 증언되어야 한다. 특히 광복 72주년을 맞은 이 민족은 일제의 36년의 긴 터널을 지나는 동안 피압박민족에 대헌 하나님의 구원이라는 역사적 경험을 했다.

기독교가 한국의 백성들에게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인지를 깨닫게 해 주는 대목이다. 다시 말하면 이 민족의 역사가 그의 구원에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을 증언하는 것이기도 하다. 한국기독교 130년은 이 민족과 더불어 우뚝 서기도 하고 쓰러지기도 했다. 이것은 기독교 선교가 추상적이며, 감상적인 장에서 혹은 서양의 기독교에 붙어서 존속할 수는 없었다.

남녀평등, 세계평등, 민족평등, 사회평등은 세계민족에게 있어 하나의 주제이며, 기독교가 이 세계에서 실현해야 할 하나님나라운동이다. 이러한 보편적인 주제는 이 민족 역사에 구체적으로 고백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은 이 주제는 추상화적인 것에 불과하다.

그 주제를 철저하게 실현하려고 하면, 우리는 그것이 창조자와 구원자의 하나님, 예수그리스도에게 있어서의 새 인간성, 교회공동체의 주제라는 것을 인식하지 않을 수 없다. 종말적인 구원에의 신앙에서 그 주제는 철저해지고, 그 필연성이 파악되어 진다.

한국교회는 이제 이 주제를 포착해서 이 민족의 현장에서 세계를 위해서 증언해야 한다. 분단된 세계에서 어느 한편에 결탁하여 한국교회는 자체의 자유, 분단을 넘어서는 민족과 세계 미래에의 자유를 상실해 왔다. 이제라도 분단을 넘어서는 제3의 길을 모색해야 한다. 자유와 평등, 그리고 평화의 길을 찾아야 한다. 그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필자는 여성 목사의 한사람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여성의 지위향상만을 위주로 하는 여성이데올로기에만 귀착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 왔다. 한국여성은 남성 중심의 교회체제를 문제 삼으면서, 한국내의 사회 모순을 문제 삼아야 하고, 그리고 세계의 잘못된 지배구조에 대해 문제를 삼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민족과 세계의 새로운 미래, 남자와 여자, 억압자와 피억압자, 부유한 자와 가난한 자를 넘어서는 제3의 세계를 대변할 수 있다. 한마디로 궁극적으로 종말적 인간성 성취와 하나님나라의 도래를 기대할 수 있다. 오늘 세계는 아직도 여성들이 남성의 지배구조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희생을 당하고 있다. 특히 보다 낳은 삶을 찾아 지중해를 건너 유럽에 안착된 여성들 중 상당수가 남성의 지배구조에서, 남성들의 성노리개가 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들 중 16살 아래의 소녀들이 상당 수 끼어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민족 역시 일제하에서 이 땅의 여성들이 일본군 정신대로 끌려가 많은 수모를 당하지 않았는가. 이 민족은 이러한 역사를 잃어버렸는지, 아니면 망각했는지 대한민국의 거리에는 일본차가 질주하고, 국민들은 일본여행에 참여하고 있다.

피억압과 고난을 망각한 처사이다. 종말적 구원은 억압자와 고난을 당하지 않은 사람은 알지를 못한다. 그래서 고난을 당한 여성들만이 미래를 탄생시킬 수 있고, 민족과 세계를 증언할 수 있다. 여성의 어머니 됨은 바로 역사적 책임에서 종말적 구원의 표징이다. 그래서 이 땅의 모든 여성, 일본제국주의 아래서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는 남편과 아들, 그리고 딸을 보면서, 이들이 무사히 귀환하기를 간절히 기도한 이들이 바로 민족의 어머니이며, 역사의 어머니이다.

광복 72주년을 맞은 한국교회는, 민족의 해방과 고난의 터널 속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의로운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는 것을 증언한 이 땅의 어머니, 그의 나라는 분명히 임한다고 부뚜막에 앉아 기도했던 생명의 어머니의 기도는 분명히 성취될 것이다.

빛사랑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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