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동조선인학살 제94주기 추도행사가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와 1923관동조선인학살 진상규명 대책소위원회 주관으로 지난 25일 한국기독교회관 2층 조에홀에서 열렸다.

이날 행사는 오충공 감독의 ‘1923제노사이드, 93년간의 침묵’ 다큐멘터리 영상 상영과 제94주기 관동 대학살 희생자를 위한 기도회, 관동 대학살 제94주년 기념강연회, 관동 대학살 조선인 희생자 추도비 탁본 특별전시회 등으로 진행됐다.

오충공 감독은 희생자들을 위한 추도행사나 위령비, 관련 특별법 상정 등에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정부를 강도 높게 지적하고, 오는 30일 부산에서 결성되는 유족회에는 관심을 가져달라고 요청했다.

조정현 목사(기장 1923관동소위원회 위원)의 인도로 드린 기도회는 김수산나 목사(생명선교연대)의 기도와 김경호 목사(기장 교회와사회위원장)의 ‘정직한 새 영을 넣어 주소서’란 제목의 설교, 윤광호 목사(기장 1923관동소위원회 위원)의 ‘간토 일기’ 추모가, 헌화, 이재정 사관(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부위원장)의 축도로 마쳤다.

유시경 신부(대한성공회 교우원 원장)의 사회로 진행된 2부 기념강연회 시간에는 타나카마사타카 교수(일본 센슈대)가 일본 내 관동 대지진 때의 학살사건 진상규명운동의 현황에 대해, 김강산 연구원(성균관대 박사과정)이 관동대학살에 대한 기독교인의 대응에 대해 각각 강연했다.

김강산 연구원은 관동대학살에 대한 기독교인들의 대응 방식과 그 논리를 살폈다.

김 연구원 “관동대학살은 식민권력이 부과한 언론통제로 인해 조선인에게 주어졌던 사건의 이미지는 ‘재난’에 가까웠다”면서,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조선인 학살의 소식이 전해졌고, 조선인들의 인식은 ‘재난’에서 ‘민족문제’로 바뀌어 나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기독교인들의 반응이 두 갈래로 나뉘었음을 설명했다.

김 연구원은 “기독교계 내 중견그룹인 교역자들은 조선총독부와 조성회의 ‘포괄적 구호’에 호응했고, 그들이 내세웠던 것은 ‘인류애’였다”면서, “반면 기독교계 청년그룹, 그 중에서도 일본 내 유학생은 적극적으로 ‘조선인 구호’와 생사조사에 나서고자 했고, 그들이 내세운 것은 ‘동포애’였다”고 주장했다.

또한 우치무라 간조와 그를 스승으로 모셨던 함석헌 선생의 사례를 통해 역사 앞에선 기독교인들의 상이한 자세에 대해 이야기 했다.

먼저 일본 기독교의 양심이라 불렸던 우치무라 간조에 대해선 “관동대학살을 가까이서 목격하면서도 일기에선 이러한 사실을 완전히 언급하지 않았다”며, “나아가 그는 ‘이번 진재를 보니 그분(예수, 주)의 허가 아래 일어난 일이다. 그러므로 일본 국민을 위해, 세계 인류를 위해, 최대의 선을 행하기 위해서 일어난 일이다’고 적기도 했다”고 지적했다.

1923년 동경에서 유학하고 있다가 관동대학살을 경험한 함석헌 선생에 대해선 학살이 일어난 지 50년이 지난 1973년 ‘내가 겪은 관동대진재’라는 제목의 글을 소개했다.

김 연구원은 “그는 ‘관동대진재의 원흉은 누구냐? 지진 화재가 문제 아닙니다. 그 핵심은 조선인 학살에 있습니다. 수로야 얼마 아니 되지만 그 죽음은 지진 화재에 죽은 것과 의미가 다릅니다. 실지로는 4,5천이지만 그 뜻을 말하면 조센징이기 때문에 죽은 것이니깐, 결국 전체 조선이 학살된 것입니다’라고 적고 있다”고 밝혔다.

강연회가 끝난 뒤에는 김지태 목사(기장 1923관동소위원회 위원)가 관동대학살 사건에 대한 문재인 정부의 책임을 촉구하는 성명서를 낭독했다.

아힘나평화학교, 1923간토한일재일시민연대, 기장생명선교연대, 한신대학교총동문회,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 정의평화위원회, 한국기독교장로회 교회와사회위원회 등은 성명을 통해 일본정부를 향해 진상규명을 촉구함과 동시에, 한국 정부를 향해서도 조속한 진상규명을 실시하라고 촉구했다.

또한 한국정부가 이 사건에 대한 역대정부의 미온적 태도를 버리고, 일본정부의 사과 및 국가적 책임을 강력하게 묻기를 촉구했다.

아울러 일본에 있는 조선인학살추도비를 온전하게 지키고, 희생자의 유골을 찾아 봉환하여 억울하게 돌아가신 수천의 영령들을 위로할 추모시설을 건립하라고 요청했다.

덧붙여 차별과 배제의 원점이 된 관동대학살 사건에 대한 일본 교과서의 왜곡을 막아내고, 한국교과서에도 올바르게 기술하며 상시적 교육을 위한 ‘1923역사교육관’ 건립을 촉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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