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동물의 제왕인 사자가 초원에서 느긋하게 잠을 자고 있었어요. 그런데 새끼 쥐 한 마리가 그만 사자의 코를 밟고 말았어요. "어느 놈이냐! 감히 나의 코를 밟은 녀석이?" 사자는 화를 내면서 벌떡 일어났습니다. 새끼 쥐는 너무 놀라서 도망갈 염두도 못 내고, 발발 떨뿐, 무서워서 꼼짝할 수가 없었어요, 오직 손 발 할 것 없이 싹싹 빌며 들릴 듯 말듯 한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애원을 하였어요, "사자 제왕님, 제발 한 번만 용서해 주세요, 제가 일부러 그런 것이 아니라 제왕님의 발밑에 쥐구멍인 우리 쥐들의 집이 있답니다. 제왕님이 계신 줄 모르고 집에서 나오다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한 번만 용서해 주신다면 반드시 앞으로 기회가 생기면 반드시 그 은혜를 갚겠습니다." "은혜를 갚는다고?" "그렇습니다. 대왕 폐하! “기회?” 예! 믿어 주십시오. "어흥……." 사자는 흥 콧방귀를 뀌면서 기회는 무슨 기회, “그럴 일은 없다!” 하였으나, "오늘은 내가 배도 부르고 기분도 좋으니 너를 용서해 주마“하고는 ”그만 가라!“하였습니다. 새끼 쥐는 걸음아 날 살려라 하고 도망치듯 그 자리를 빠져 나왔습니다. 얼마가 지났을까? 하루는 사자의 큰 울음소리가 온 숲속을 뒤덮었습니다. "어흥, 어흥! 나 좀 구해 주시오." 사자가 큰 소리로 울부짖었어요. 그러나 숲 속의 동물들은 사자의 울음소리만 들어도 겁이 나서 감히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고, 아무도 구해주려 하지도 않았습니다. 이 때 먹이를 찾으려고 숲 속을 거닐던 쥐가 사자의 울음소리를 듣게 되었답니다. 혹시나 하는 생각에 쥐는 조심스럽게 사자의 울음소리가 들려오는 쪽으로 다가 갔습니다. 그런데 글쎄 얼마 전 자기를 놓아주었던 그 사자가 아니겠어요! 사자가 사냥꾼이 설치한 그물에 걸려 꼼짝달싹 못하고 있지 뭐예요. 쥐는 말했어요! "사자 제왕님, 걱정하지 마세요. 제가 구해 드리겠습니다." "네가 할 수 있겠니?" “예! 그렇습니다!” "오 그래! 그래 어서 나를 좀 구해다오!" 사자는 애걸하였습니다. 쥐는 사자를 묶고 있는 단단한 밧줄의 그물을 자신의 이로 하나씩 하나씩 자르기 시작했어요. 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사자를 꽁꽁 묶고 있던 밧줄이 모두 끊겼어요. "사자 제왕님, 이젠 됐어요. 어서 나오세요." "아아, 이젠 살았구나!" "사자는 이렇게 아주 작은 동물에게 도움을 받을 줄이야!" 하면서, 쥐에게 "네가 나를 구해주었구나 고마워!" 하면서 사자는 쥐에게 눈물겹게 고마움을 표했어요! 쥐는 "아니에요, 사자님이 저를 용서하고 살려주신 은혜를 갚았을 뿐입니다." 사자는 쥐를 자기의 머리 위에 얹고는 함께 노래하며 숲속으로 달려갔어요. (참고 : 이솝 우화)

한 때 “있을 때 잘해”라는 말이 회자 된 일이 있었다. 이는 부부간의 애정에 관한 말로 많은 이들의 입에 오르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는 .이솝‘ 우화를 보면서 권력, 재물 등 자기가 행사하는 영향력을 선용해야 하는 점을 생각해 보면, “갑 질”이 회자되는 세태 속에 “더불어 사는 세상”을 기대해 본다면 무리일까?
축구 등의 국제경기를 할 때면 너도 없고 나도 없이 오직 대한민국 국민으로써 한 몸인 것을 체감하게 한다. “대~한~민~국~!”을 외치는 함성에는 권력자, 부자, 힘없는 자, 가난한자 등도 구별되지 않는다. 그러나 사자나 호랑이 같은 근성들만이 난무 하여, 권력자, 사업가 등 자기들의 영역에서 일어나는 모든 관계에서 나 외의 다른 이들은 자신들의 먹이 감으로만 생각하는 이들이 활보하는 세상이 된다면, 그것이 곧 정글의세계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우리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원한다면, 힘이 있을 때 힘없는 자들을 존대하고 서로의 존재감과 가치를 인정하며 공유해야 한다. 힘없고 별 볼일 없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의 촛불민심이 누구를 향했는가를 잊지 말고 .....! 그 때에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거하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아이에게 끌리며(사 11 ; 6)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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