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두진

나는 아직도 잊을 수가 없다.
그날 강물은 숲에서 나와 흐르리.

비로소 채색되는 유유(悠悠)한 침묵
꽃으로 수장(水葬)하는 내일에의 날개짓.

아, 흥건하게 강물은 꽃에 젖어 흐르리
무지개 피에 젖은 아침 숲 짐승 울음.

일체의 죽은 것은 떠내려 가리
얼릉대는 배암 비눌 피발톱 독수리의,

이리 떼 비들기 떼 깃쭉지와 울대뼈의
피로 물든 일체는 바다로 가리.

비로소 햇살 아레 옷을 벗는 너의 전신(全身)
강이여, 강이여, 내일에의 피 몸짓.

네가 하는 손짓을 잊을 수 없어
강 흐름 핏무늬길 바다로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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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두진은 청록파 시인 중 하나다. 그중 널리 알려진「해」는 많은 사람들이 암송하는 작품 중 하나다. 그 작품에서 마찬가지로 그는 상징어(象徵語)를 들어 관념을 드러내는 시어로 사용한다.

상징이란 사전적 의미는 ‘추상적인 사실이나 생각, 느낌 따위를 대표성을 띤 기호나 구체적인 사물로 나타내는 일’ 또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심상을 통하여 암시하다’라 풀이한다. 즉 사물을 들어 원관념을 들어낸다. 이 사물을 보조관념이라 한다. 그런 예술사조를 상징주의(象徵主義 symbolism)이라 한다.

19세기 프랑스 보들레르, 베를레느, 랭보, 말라르메 등이 중심되어 현상의 저편에 존재하는 영원하고도 절대적인 본질의 세계를 추구하며 그 세계와 시인과의 교감상태를 중시하는 경향이다. 그들은 뚜렷한 의미의 전달보다 신비롭고 그윽한 분위기를 통해 미묘한 상지의 음영을 보여주고자 했다. 그들은 종래의 규칙적인 리듬을 버리고 영혼의 자유로운 율동을 표현하는데 적합한 내재율을 창출했다. 여기서 나온 것이 자유시와 산문시다.

이 시에서는 끊임없이 흐르는 강이라는 사물을 들어 시간이나 역사의 진행을 표현한다. 즉 강은 역사의 상징어다. 숲에서 나온 강이 꽃을 만나는 과정은 지나온 격동, 시련의 세월을 말하는 것이다. 꽃은 그런 격동과 분열을 거치어 마침내 성취하여야 할 찬란한 미래를 상징하고 있다.

그런 과정은 핏무늬길로 상징하는 고통과 희생의 과정을 거치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배암, 독수리, 이리 떼로 상징하는 잔인성의 모습과 비둘기 떼로 대칭하여 보여주는 평화의 상징물의 양극화 구조에서 역사라는 강은 선악의 투쟁을 통해 결국 바다로 흘러가게 된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준다.

종말로 가는 과정은 핏무늬 길을 거쳐야 꽃으로 가는 길이듯 역사나 삶은 순탄한 길이 아닌 고통과 희생을 수반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한국기독시인협회 회장 정재영 장로(시인,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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