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것은 이단의 죄”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22) … 기복적인 열광주의의 폐해 ②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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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14  14:11: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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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의 아우성 소리를 들어라

“가난한 사람을 위한 책임을 부정하는 교인이 있다면, 그들은 신앙의 이런저런 항목을 부정하는 것과 똑같이 이단의 죄를 범하는 것이다. 인종차별이라고 하는 구조적 인종주의와 같이 가난한 이웃을 돌보지 않는 것 역시 이단이다. 따라서 이들을 외면하는 것은 신앙고백의 문제이다”

이 말은 1968년 세계교회협의회 스웨덴 움살라 대회에서 비서트 후프트가 교회의 역할을 신학적, 실천적인 문제로 대두시킨 것이다. 즉 인종차별주의자와 같이 사회적 약자에 대해 그리스도인 중 책임지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의 신자가 아니라는 말이다.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에서의 기독교 선교의 문제점을 극명하게 드러낸 것이라는데 의미가 있다.

문제는 한국교회를 비롯한 세계교회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의 시장경제에 매몰된 나머지 기독교선교의 신학적, 실천적인 모습을 거의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결국 기독교회 대부분이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시장경제에 젖어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는데 문제가 있다. 그러면서 근본주의와 경건주의 신학, 그리고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신학에서 벗어나면, 무조건 이단으로 정죄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한국장로교회 역시 102회 총회를 앞두고, 자신들의 신앙과 신학사상이 다르면 무조건 이단으로 단정 짓는다. 이 같은 오류로 인해 교단 간, 교회 간에 마찰이 끊이지를 않고 있다. 일부 목회자들은 성서의 중심에서 벗어나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에 빠진 교회들이 부르짖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사이비적인 교회들을 먼저 단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문제는 한국교회 안에서 이웃교회의 목회자와 교인들을 업신여기며, 신의 자리를 돈으로 만들어 버린 교회의 문제를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로 전환시켜 나갈 것이냐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돈으로 신의 자리를 빼앗아 버린 교회와 교단들이 한국교회를 좌지우지하며, 하나님나라운동을 외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한마디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가 없다는 것이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고 교육하고 있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에서 가난한 자, 소외된 자, 불구자, 병든 자 등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비서트 후푸트는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 참여하지 않는 교회와 교인들을 이단이라고 규정했다.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빠져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돈으로 신의 자리를 빼앗아 버린 교회가 이단이며, 기독교를 가장해서 사이비 행각을 벌인다는 것이다. 또 어떤 학자는 오늘 한국교회는 이단보다도 사이비를 경계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어찌 보면 이단은 하나님나라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있다. 한국교회가 문제의 단체로 규정한 일부 이단은 이웃을 사랑할 줄 안다. 가난한 자를 섬길 줄 안다. 환경운동과 반핵운동에도 참여한다. 하나님의 창조세계를 보전하기 위한 모습도 보인다. 성서에 나타난 예수님의 모습을 닮으려고 최소한의 노력을 한다. 이들이 어찌 보면 하나님나라운동에 가깝다”

이 신학자들의 말은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인정하지 않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가난한 자와 병든 자, 소외된 자들을 외면하는 한국교회를 향한 경고의 메시지로 들린다. 한국교회가 예수님의 선교, 성서로 돌아가지 않는다면, 한국교회는 한마디로 희망이 없다. 세계교회는 한국교회와 다르게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의 문제점을 인지하고, 정의롭고, 직접적으로 사회참여, 경제적 정의실현을 위한 기독교선교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기독교의 공공성을 회복하기 위한 논의에 들어갔다. 특히 제3세계에 대한 경제적 착취의 문제를 수면 위로 가지고 나왔다.

   
 

신학적, 실천적 교회역할 대두

이제 한국교회는 민족의 문제를 넘어 세계의 문제에 대해서 연구하고, 해결방안을 모색해야 한다. 지금까지 한국교회는 식민지 신학과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신학에 매몰돼 민족의 문제는 물론, 세계의 문제를 몰각해 왔다.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신학에 매몰된 나머지 교회성장에 급급해, 민족의 문제에 관심을 갖는데 게을리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세계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세계교회는 세계통일을 이루는데 크게 기여했다. 헌데 한반도의 분단의 중심에 있었던 한국교회는 민족의 아픔인 통일문제에 대해 반대 입장을 견지하며, 북한을 절대적으로 보며, 무조건 북한을 싫어하는 반통일적인 모습을 보여 왔다. 남북한의 통일에 대해서 공감하면서도, 북한은 공산주의, 사회주의, 김일성 3대 세습 등의 관념이 머릿속에 박혀 북한을 적대시 했다. 한마디로 한국의 기독교선교는 남한에 매몰돼 있었으며, 한민족선교에 대한 새로운 비전을 제시하지를 못했다.

지금도 한국교회의 기독교선교는 민족통일을 위해서 봉사하기 보다는 납북분단을 고착화시키는데 중심에 서 있다. 그러나 세계교회는 인종문제를 비롯한 빈곤문제, 제3세계에 대한 경제적 착취 등 세계적인 문제에 대해서 연구와 해결방안을 모색하는 일에 노력해 왔다.

특히 세계교회는 인종주의를 제거하기 위해 ‘개발에 대한 교회의 참여를 위한 위원회(CCPD)’를 설치, 인종주의를 제거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을 구체화 했으며, 제3세계에 대한 경제적 착취문제를 다루게 될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주력해 왔다. CCPD 안에 정의롭고, 참여적이며, 지속 가능한 사회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프로그램 개발과 함께, 도시농촌 선교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이 프로그램은 인종차별 금지를 비롯한 성차별 철폐, 인권 및 사회경제적 정의 실현 등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은 1983년 캐나다 벤쿠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 총회에서 다시 종합적으로 논의 되었다. 하나는 정의, 평화, 창조질서본전이라는 주제의 상호 연계된 연구와 함께 그 실천 프로그램을 개발하기 했다. 또 하나는 이러한 프로그램은 교회의 존재와 이해라는 교회론적인 문제와 결합되었다. 이러한 새로운 프로그램은 교회의 책임과 함께 그것을 실천할 담지자로서 교회의 역할이 신학적, 실천적인 문제로 대두됐다. 교회가 사회적 책임을 다하지 못하면 비서트 후프트의 말대로 ‘이단의 죄’를 범하게 된다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 책임지지 않는 자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체제에서 왜곡된 세계경제체제에 대한 문제를 본격적으로 연구하고, 다루기 시작한 것은 세계교회협의회의 경제백서 <삶과 만민을 위한 충족: 기독교 신앙과 오늘날의 세계경제>가 나온 1992년도부터이다.

이 백서는 기독교란 이름아래 맘몬을 숭상하는 세계경제의 제반문제들을 분석하고 있다. 세계인구의 4/1, 즉 13억의 인구는 절대 빈곤 상태에서 신음하고 있다. 또 유엔개발보고서에 따르면 약 9억의 사람들이 빈곤으로 인해서 읽거나, 쓸 줄을 모르는 문맹이다. 세계인구의 20%가 총생산 중에 차지하는 비율은 82.7%이다. 반면 가난한 20%가 차지하는 비율은 1.4%이다. 아프리카나, 중동의 가난한 사람들이 보다 낳은 삶을 찾아서 지중해를 건너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비서트 후프트는 이러한 가난한 사람들을 외면하는 기독교인들을 이단이라고 했다. 그것은 성서가 교육하고 있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책임지지 않기 때문이다. 가난한 나라들이나, 부유한 나라들이나 모두가 그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 사이에서 빈부의 격차가 커지고 있다.

맹신하는 맘몬은 이단이다.

절대빈곤의 원인은 1970년대부터 발생하기 시작한 제3세계국가의 외채와 그에 대한 상환과정에서 더욱 심화되었다. 제3세계 국가들의 엘리트 지배자들은 ‘경제개발’이란 이름 아래 엄청난 외채를 도입, 이 자금의 일부를 경제개발에 사용하고, 나머지는 자신들의 불의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 군비 증강과 무기 구입에 사용했다. 또한 외채의 상당부분을 해외로 빼 돌렸다. 그 결과 외채 상환기간이 돌아오면서, 제3세계 국가들은 심각한 위기에 직면했다. 우리나라도 IMF를 경험했다.

경제백서는 제3세계국가의 부채문제가 1990년대 이후 더욱 심각해지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개신교회들이 오늘날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불의한 세계경제질서를 비판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경제백서가 기독교국가라고 할 수 있는 1세계에서 계속 나왔지만, 이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전혀 보여주지를 못했다.

한국교회 역시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며, 가진 자들의 눈물을 닦아 주기에 바빴다. 그리고 사회적으로는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분명한 것은 신자유적 세계경제체제하에서 벌어지고 있는 빈부 격차의 지속적인 확대, 특히 금융자본의 무제약적 횡포는 비인간적일 뿐만 아니라, 반신적이다. 오늘날 세계를 지배하는 것이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맘몬이다. 맘몬은 전 세계를 지배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그 지배력이 확대되어 가고 있다. 이것은 기독교 신앙의 문제이기도 하다.

체제 통일을 강요하던 로마 제국의 세력 하에서 살아가던 사람들을 향해 예수님은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기지 못한다. 한쪽을 미워하고 다른 한쪽을 사랑하거나 한 쪽을 중히 여기고 다른 쪽을 업신여길 것이다. 너희는 하나님과 제물을 함께 섬길 수 없다”(마태복음 6장 20절)고 했다.

예수님은 맘몬, 즉 재물 및 그것의 증식 목표로 하는 자본주의적 원리를 부정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라. 맘몬에 길들여 질대로 길들여져 있다. 하나님나라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 믿음의 척도를 헌금의 액수라고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 시장경제에 길들여진 나머지 목회자의 입에서는 맘몬만 외쳐진다.

이것은 분명 성서와 거리가 멀다. 하나님나라운동이 아니다. 맘몬을 섬기는 그리스도인, 성서와 다른 것을 실천하면 분명 이단이다. 그래서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교인들은 이단보다도 사이비를 더 경계해야 한다고 말한다.

성서는 분명하게 가르쳐 주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은 권력 및 경제체제에 의해서 희생당한 자들이 있는 곳에 있다 △성서와 기독교 역사는 개인적 경건의 전통도 강조하고 있다. 그러나 공동체성과 연대성을 강조한다 △노예화와 탈연대화를 강요하는 체제하에서 갈등 없이 해방과 연대성이 불가능 하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은 이러한 체제와 타협하지 않고 저항해야 한다 △오늘날의 체제와 이데올로기의 신격화를 신학적으로 비판해야 한다. △그리스도인들은 성서 및 그리스도의 전통에 서서 세계경제에 대항하는 철학적 사상이나, 타 종교들과 같은 협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성서는 교육하고 있다.

오늘 한국 개신교 안에서 ‘축복신학’으로 위장된 자본주의의 맘몬 신학과 그 실천은 하나님을 자신들이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복덕방망이다. 교회를 샤머니즘의 소굴로 만들었다. 축복신학은 탈연대성을 낳고, 사회적 공동체를 파괴한다.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는 몰록신은 전 세계적으로 사람들을 기아로 죽어가게 만든다. 오늘날 자본주의의 왜곡된 세계경제질서는 신학적으로 지원하는 세력과 이 체제를 옹호하는 교회들의 참회와 개혁 없이는 새로운 희망을 기대할 수 없다. 또한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선교 정신에 따라 등장한 새로운 시민운동과 연대해야 한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서 활동할 뿐만 아니라, 교회 밖에서 익명의 그리스도인들과 함께 자기의 역사를 이끌어간다. 또 고등이웃종교들과 함께 정의롭고 평화로운 나라, 인류사회 번영에 기여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그리스도의 정신이다. 여기에서 이탈해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그리스도인은 비서트 후프트의 말대로 성서와 다른 말을 하는 이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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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실
내세에 대한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현세의 부귀영화는 중요한 의미가 없다. 성직자들을 포함해서 많은 구도자들이 경전이나 명상에만 의존해서 우주와 생명의 본질을 탐구했기 때문에 올바른 깨달음을 얻지 못했다. 그들의 탐구는 결국 우물 안의 개구리에 불과하다. 그런데 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니라 과학자와 종교학자도 유능한 학자로 출세하기 위해서 무비판적이며 맹목적으로 기존학문을 배우고 익히는 데만 치중하므로 학문의 오류를 탐지하지 못한다.

인간의 장기가 다른 사람에게 이식되면 원래 주인의 생명과 상관없이 생명을 유지한다. 그렇다면 인간은 하나의 주체에 의해서 통제되는 단일생명체인가 아니면 여러 생명체가 함께 살고 있는 집단생명체인가? 기존의 과학과 종교이론을 180도 뒤집는 이론으로 우주와 생명을 새롭게 설명하는 책(제목; 과학의 재발견)이 나왔는데 과학자와 종교학자들이 반론을 못한다. 이 책은 서양과학으로 동양철학을 증명하고 동양철학으로 서양과학을 완성한 통일장이론서다.

아인슈타인의 공식(E=mc^2)이 옳다면 물질양자가 소멸하면서 에너지양자로 변해야 한다. 그런데 어떤 양자가 다른 양자로 변할 때에 양자는 더 작아질 수 없으므로 변화의 과정이 없이 변해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겠는가? 우주의 모든 변화는 양자의 위치이동(결합이나 분해)에 불과하며 진정한 변화(양자의 소멸과 생성)는 창조와 본질적으로 같은 것이므로 불가능하다. 핵반응에서 나오는 열(에너지)은 아인슈타인의 이론과 상관없는 다른 방법으로 생성된다.

기독교인들이 비성경적으로 행동한다고 비판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런데 그런 비판은 성경이 진리일 때만 가치가 있다. 성경이 진리가 아니라면 성경을 근거로 그들의 행동을 비판해야할 이유도 없다. 기독교인들이 수천 년간 비성경적으로 행동해도 왜 하나님이 그것을 방치하고 있을까? 세월호처럼 안전 규칙을 안 지키면 기독교인들도 사고가 난다. 기독교인들도 일반인들과 똑같은 확률로 암이 걸린다. 하나님은 공평한 건가? 아니면 기독교에 무관심한 건가?

(2017-09-15 00:4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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