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

면도날을 사용한 듯, 머리 위 저어 높이에서부터
지평선 저어 너머까지
주욱 내리 그은 칼금,

주욱 갈라진 틈새,

뒤쪽이 내다 보이고…… 가맣다

며칠째 갠 날이다 아침에는 A4용지에 손끝을 베이었다

▲ 문 현 미 시 인
시란 무엇일까? 눈이 부시도록 높푸른 하늘을 보며 생각에 잠긴다. 많은 시이론가들이 시에 대한 정의를 내렸지만 이렇다 할 결론은 없다. 결국 “시에 관한 정의의 역사는 오류의 역사”라는 T.S.엘리엇의 말에 공감이 간다. 시는 함축적 언어로 표현된 예술이므로 독자는 시어를 통해 전달되는 비의를 느끼는 것이다. 사람의 심장은 하루에 십만 번씩 박동한다. 이 규칙적인 박동이 어떤 심리적, 정서적 자극이나 충격을 받으면 두근거리기 시작한다. 시는 그런 두근거림에서 싹이 돋는다.

지난 여름은 참 길고 무더웠다. 작열하는 태양 아래 누구도 땀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뜨거웠던 여름날이 지나가는 길목에서 간간히 풀벌레 소리 들리고 선선한 바람마저 불면 가을의 기척을 느끼고 두근거린다. 그러다가 뜻밖에 아득히 멀리 높고 파아란 하늘이 펼쳐지면 두근거리다 못해 황홀하기까지 하다. 그때 그곳에 시인의 눈길이 머물면 영롱한 이슬같은 시가 탄생한다.

위선환 시인은 1960년 2월에 등단했지만 40년간 절필한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시를 끊으면서 무척 가혹했다. 시를 쓰며 살아온 흔적들을 모조리 불태웠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태우고 버렸던 것이나 다름없다. 쉽지 않은 선택이었다. 그야말로 死卽生의 길을 간 것이다. 공백 기간 동안 시인은 더 많은 성찰과 더 깊은 사유의 강을 건넜을 것이다. 그러면서 시인의 내면이 아주 견고해졌으리라.

하늘을 향한 끝없는 동경이 하늘가에 닿고 마침내 하늘 너머 비가시적인 세계에까지 이르렀다. 이 시는 수행자가 오랜 수련 후 관조를 통해 마음의 눈으로 그린 한 점 풍경화를 보는 듯하다. 여러 설명이 필요 없다. 비유에 의해 표현된 하늘과 하늘 틈새와 하늘 너머까지 간파하는 놀라운 상상의 날개 덕분에 가뿐하다. 시는 설명이 아니라 전달되는 것이므로 독자는 시를 느끼면 된다. 이 시에서는 행간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여백의 미도 한껏 느낄 수 있게 한다. “면도날을 사용한 듯”한 시적 감각이 예사롭지가 않다. “주욱 내리 그은 칼금,/의/주욱 갈라진 틈새,/의” 행간을 읽다가 독자도 날카로운 감각의 칼날에 베이는 기쁨을 누린다. 무한한 깊이와 높이가 전해져 오는 명편이다. 어느 새 마음 기슭에 하늘물빛이 스미는 가을날이다.

백석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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