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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설
종교개혁, 사회개혁과 동반될 때 비로소 성공루터의 ‘두나라설’ 종교개혁을 계속하게 만든 동기부여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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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09.29  10: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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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권력성에 도전

오늘 프로테스탄트는 루터의 종교개혁을 빼고 말 할 수 없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는 비텐베르크교회 문에 95개조의 고백적 고발문을 내걸었다. 이것은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되었다. 당시 루터는 무명 승에 지나지 않았다.

마그네부르그의 감독에 임명된 알프레히트가 마인츠의 감독직까지 겸하기 위해 교황에게 엄청난 뇌물을 바치고, 그의 지배권 내에서 면책증을 판매하는 권한을 얻었다. 그 중 반은 교황에게 상납하고, 반은 자기가 착복했다, 이것이 바로 루터의 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됐다.

루터의 저항은 알프레이트에 대한 분노가 아니었다. 그리스도교의 권력구조성에 대한 도전이었다. 감독은 그 지역의 권력의 장이었다. 교황의 삼층폭이 상징하듯 교회는 모든 권력의 총체이기를 고집했다. 이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 그리스도가 지향했던 목표가 아니었다. 루터는 부패한 교회를 보고 저항하지 않으면 안 되었던 것이다. 종교개혁, 저항은 그리스도를 자기와 같은 숙명체로 생각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부패한 중세교회를 닮아가는 한국교회에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메시지이다. 루터가 말하는 프로테스탄트의 성격은 분명해 진다. 그것은 한마디로 ‘저항정신’이다. 불의를 보고 지나칠 수 없는 것이 바로 그리스도교이다. 그리스도교는 결코 권력체로서 치자일 수 없다. 언제나 섬기는 자여야 한다. 권력체화된 히에라르키 체제(성직자의 세속적인 지배제도)에 저항해야 한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는 그리스도가 현존하는 사랑의 공동체이다. 그 안에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계급이 있을 수 없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하나님과 인간의 유일한 중보자로 고백해야 한다. 그 사이에 또 하나의 중개계급으로서의 사제계층을 끼워 넣을 수 없다. 루터에게 있어, 아니 불의에 저항하는 사제와 교인들에게 있어 종교개혁, ‘히에라르키’에 저항하는 것은 당연했다. 루터는 그것을 ‘만인사제론’과 성서해석의 독점권 부정론으로 표출했다.

당시 교회제도를 합리화하기 위해 참담한 교리망으로 얽어매던 것을 뒤돌아보면, 루터의 종교개혁, 저항은 당연했다. 돈으로 이단에게 면죄부를 주고, 돈 없고 힘없는 목사와 단체에 이단의 올무를 씌우는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는 듯하다. 성서적인 입장에서 볼 때 루터의 저항은 당연하다. 예수님은 특수계급에게 그런 특권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신도, 경전도 독점하며, 교인들에게 무조건 추종을 요구하고, 그렇지 아니하면 죄인으로 규정해버린 예루살렘의 패거리로부터 얼굴을 돌렸다. 저들이 백안시한 갈릴리 민중에게 직접 와서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를 듣고, 그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의 거처는 분명 가난한 사람들의 아우성 소리가 들리는, 이들의 삶의 현장이었다. 그의 언어 역시 그들의 언어였다.

그곳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현장이었다. 그곳에 예수님이 계셨다. 이런 예수님을 중세교회는 교리화 시켜버린 것이다.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기에 바쁜 한국교회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를 잃어버렸다. 5만여 교회 중 한민족의 심음소리가 들리는 곳에는 그 흔한 교회 하나 없다. 등에 져야 하는 십자가는 건물 꼭대기에 매달려 세상에 희망을 주기는커녕, 국민들의 걱정거리로 변한지 이미 오래되었다.

예수님은 수많은 미신적 사크라멘트적 교리를 타개함으로써, 그들로부터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구원했다. 루터는 갈라디아서 연구에서 복음성의 핵심인 ‘의인론’을 재수립했다. 지식과 지위를 가진 전문가들의 점유물이 되고, 이들만이 알 수 있는 교리적인 구원론에 대해서 문맹도 쉽게 알고 행할 수 있는 ‘믿음만으로’이란 구원론을 내세운 것은 그 자체로 볼 때 너무나 대중적이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종교개혁 단행해야
권력과의 고리를 끊고, 고통당하는 사람들을 위해 행동하자


교권자들의 허구한 독점권에 저항

루터는 사제계층만이 독점하기 위해 라틴어로 된 성경을 민중의 언어로 옮겼다. 교권자들의 허구한 독점권에 저항했다. 그리고 “나는 자유인이어서 누구의 종도 아니다. 사랑 외에는 아무것도 빚지지 않았다”라는 바울의 주장을 종교개혁 전체에 적용했다. “사람 위에 사람 없고, 사람아래 사람 없다”는 자유가 궁극적 복음의 실체임을 드러냈다. 이것은 가난한 사람 중심의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바로 파악한 것이라는 점에서 재평가 되어야 한다.

그러나 루터의 종교개혁도 한계가 있었다. 부작용도 뒤 따랐다. 루터는 정교분리, 두 나라설을 주창했다. 두 나라설은 권력과 야합, 부패하는 교회 내부의 사정에만 부심한 결과를 초래했다. 그 결과는 정치, 사회에 대한 방임주의, 나가서는 그리스도공동체들의 무책임한 체절을 만드는 계기가 되었다.

루터는, ‘세상나라’는 육체와 제물만을 다스린다고 하고, 교회는 영 또는 영적인 영역에만 관여해야 한다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이런 이분법의 모호성도 문제지만, 이로써 그는 권력정치의 황포성과 권력욕을 방임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이렇게 정치와 종교를 나누어버리면 루터가 사랑 등을 아무리 강조해도, 그것은 결국 허구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권력에 의해 고난당하는 자를 위한 행동은 있을 수 없다.

루터의 두 나라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개신교는, 정교분리를 내세워 일본식민주의와 미국 팽창주의를 정당화해 주었다. 또한 피압박민족의 의식화와 민족운동, 항일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 또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정통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오늘도, 루터의 종교개혁을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마음껏 우려먹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오류와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500년 전 10월 달에 단행된 종교개혁이 좋은 평가를 받는 이유는,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이 중세교회의 상활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루터의 종교개혁이, 종교개혁의 기폭제가 된 것은 물론, 영국의 산업혁명이후에도 제2의 종교개혁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나게 했다.

루터가 주장한 두 나라설은 결국 사회개혁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루터는 처음 영주와 농민들 간의 전쟁에서 중간자적인 입장을 취했지만, 결국에는 학대받는 농민들을 버렸다. 루터는 타락한 종교의 개혁만을 생각했지 그것이 사회개혁과 병행될 때 비로소 성공한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 오늘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에 목을 매는 이유는, 선교초기부터 정교분리를 주창해온 한국개신교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정교분리를 말하면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려온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외에는 어떤 것도 내세 울 수 없는 입장이다.

최소한도 한국교회가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만이라도 이해하고, 목회현장에서 실천했다면,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를 보라 신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시켰다. 신의 현현은 달러가 되었다. 교회의 예배는 다우존스 주가이고, 신의 성체는 돈이 됐다.

루터의 종교개혁 후에도, 종교개혁은 계속되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계기로 실업자군이 거리를 헤매고, 자본가의 횡포는 극에 달했다. 이미 자본과 결탁한 세상나라는 그 자본가들의 협조자의 위치에 있었다. 그리스도교는 ‘두 나라설’의 충실한 한 수호자로서 이런 사태에서도 불구하고 잠에서 깨어나지를 못했다. 나아가 전환기에서 생기는 모순이 폭동에로 휘둘리는 일이 없도록 공장 안에서 착취를 당하고, 자리에서 쫒겨 나는, 이른바 노동자들을 무마하는 카리타스(자선)운동으로 의식, 무의식적으로 자본주들의 시녀노릇을 하는 것으로 그리스도교를 정당화 했다.

사회개혁을 몰락한 종교개혁

영국의 산업혁명 당시 그리스도가 정의에 눈뜬 사람들의 증오의 대상이 된 역사는 없다. 이런 분위기는 마르크스주의의 온상이 될 수밖에 없었으며, 마르크스가 그리스도교 비판을 그의 비약적 논조의 발판으로 삼았다는 사실은 우연이 아니다.

이러한 상황이 극에 달하면서 19세기 말부터 여기저기에서 두 나라설에서 오랜 잠에 취한 그리스도인들이 잠에서 깨어 제2의 종교개혁을 시도하는 운동이 일어났다. 영국에서는 모리스, 킹슬리, 커들로 등, 미국에서는 로센부시, 독일에서는 부름하르트 부자, 바르트, 본회퍼 등 스위스에서는 쿠테르, 라기츠 등, 이들은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의 동반을 들고 나섰다. 한마디로 선교의 무대가 교회를 넘어 사회전체여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특히 스위스의 종교개혁자 쿠테르와 라기츠는 자본주의적 사회체제에 대한 냉혹한 비판과 더불어 그리스도교의 하나님을 종교라는 탈을 씌워 인위적 성역에 가두어둠으로써 결국 사회는 무신 세계화되고 맘몬이 판을 친다는 것을 애리하게 비판했다. 한마디로 교회의 ‘하나님 독점화’로 야기된 모순을 공격한 것이다.

쿠테르는 <당신의 의무>라는 글에서 “맘몬니즘에 근거한 제한없는 탐욕을 원리로 하고 거짓을 근본으로 하여 형성된 것”이 바로 잔본주의 사회라고 진단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종교가 아니다”라는 선언을 하기에 이른 것이다. 칼 바르트는 그리스도교와 종교성을 준엄하게 대립시키고 있다. 그런데 그것은 그가 젊은 시대에 받은 영향 때문이었다.

독일의 나치스의 폭압과 황포는 그리스도교회에 큰 영향을 주었다. 루터의 두 나라설은 그리스도가 제 할 일을 못하게 했다. 종교개혁의 다음단계를 열 수 밖에 없는 원인이 됐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을 동반할 때 비로소 성공할 수 있다고 했다. 여기에서 행동하는 교회, 행동하는 종교, 행동하는 목회자 양심의 중요성이 제기된다. 루터의 ‘두 나라설’은 그리스도교를 관념적인 종교로 만들어 놓는데 결정적 동기가 됐다.

독일의 나치는 이 관념에 의해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에 침묵하며, 나치의 충실한 충견이었다. 본회퍼는 나치 정권을 그대로 두는 한 모든 것이 불가능 하다는 것을 뼈저리게 절감했다. 때문에 그는 저항운동에 뛰어들었다. 그 결과 그는 투옥되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신학자로서 신학적인 고민과 그 해답을 찾았다. 안병무 박사는 본회퍼의 이 같은 행동에 대해서 한마디로 “그는 스스로 게토화된 교회의 문을 열고 그들을 밖으로 내모는 전선의 지휘자와 같은 역할을 했다”고 평가했다.

본회퍼는 “부활의 예수는 피안으로 간 것이 아니라 바로 이 사회 안에서 승리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이 현장에서 그의 승리를 보고 거기에 참여해야 한다”고 교회의 역할론을 강조했다.

게토화 된 교회의 문 활짝 열자

본회퍼의 이 같은 교회의 역할론은 유럽교회를 비롯한 제3세계 교회, 그리고 아시아 국가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게토화된 교회의 문을 활짝 열게 해 주었다. 하지만 근본주의 신학과 경건주의 신학, 정통주의 신학, 식민주의 신학 등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적인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는 아직도 감상적이며, 추상적인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며,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관념론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다. 유대인 600만을 학살하는데 히틀러 혼자서 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박은 유대인들은 무조건 싫다“는 유럽 기독교인들의 관념에 사로잡혀 히틀러와 함께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했다.

한국개신교 역시 선교초기부터 루터의 정교분리를 내세운 ‘두나라설’에 충실했다. 그것은 해방이후 이승만 정권과 박정희 정권, 전두환 정권, 박근혜 정권 등 아래서도 계속됐다. 세계 기독교 역사상 한국 개신교처럼 정권과 밀착된 나라도 없다. 한국개신교는 불의한 정권을 응원하는 응원자였다. 국사독재정권을 정당화해 주었으며, 힘없는 백성들이 권력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는데도 침묵했다. 그리스도교의 역할을 제처 놓고, 권력을 등에 업고 바벨탑을 쌓는데 급급했다. 한마디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는 없었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그리스도교는 없었다. 권력과 부자들의 주변에 교회를 세워, 이들의 눈물을 닦아주며, 신의 자리에 맘몬으로 대치했다. 오늘 한국교회가 마이너스 성장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이유도, 예수님의 처절한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 못하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했기 때문이다.

본회퍼는 감옥에서 민중을 발견했다. 그 민중! 예수님이 싸고돌고, 또 예수님이 좋아 밤낮으로 따라다녔던 갈릴리의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과 동일했다. 예수님은 저들을 조건 없이 받아들였는데 누가 저들을 정죄할 것인가. 있다면 교리요. 교권이지 본회퍼 자신은 그럴 수 없었다. 본회퍼는 신학자로서 신학적인 근거를 찾아야만 행동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신학자로서 신 없이 사는 가난하고 소외되고 고난당하는 사람들도 하나님의 백성이요.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입증하는 것이 필요했다. 여기에서 본회퍼는 바울에게 근원을 두고, 루터에게서 종교개혁의 원천이 되었던 의인론을 들고 나왔다. “하나님이 죄인을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것은 죄인이 법적으로 의인이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범인 그대로를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그들의 의식상태가 어떻든, 무슨 일을 저질렀던지 하나님은 그들을 의롭다고 인정한다는 것이다.

이상의 것에서 알 수 있듯이 본회퍼는 교회를 세계로 불러낸 순교자이다. 차안트는 순교자들 중에 세계를 교회로 불러들인 사람은 많은데, 교회를 세계로 불러낸 사람은 본회퍼 이외는 없다고 했다. 교회의 시대가 지났음을 경고하는 말이 아닌가. 돼먹지 않은 지식으로 신학이니, 교회니, 인간적인 것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적이라고 하는 재고품들을 깡그리 없애 버려야 한다.

이제라도 하나님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준비하는 오늘 한국교회가 해야 할 일이 아닌가.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하나는 ‘더불어 산다’는 것이며, 다른 하나는 ‘더불어 수난 당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사는 길은 자기를 낮추고 비우는 것이다. ‘더불어 고난 당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과 결부되어 있다. 예수님은 이 땅의 고난당하는 사람들 속과 역사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다가 수난을 당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수난의 상징인 십자가를 건물 꼭대기에 호화롭게 장식해 놓고, 부자들이 몰려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이 십자가는 이 땅의 가난하고, 멸시받고, 천대받고, 감옥에 갇힌 죄인들에게 희망이 되지를 못하고 있다. 예수님을 교회 안에 가두어 버렸다. 그래서 본회퍼를 비롯한 종교개혁자들은 교회를 세계로 끌어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것은 세계선교와 사회선교를 위해서 중요한 신학적 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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