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교회당의 재고품 정리, 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확보하자”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24) … 루터의 종교개혁 허점과 오류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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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10  09: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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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국교회 안에서 종교개혁 계속돼야

1517년 10월 31일 루터의 종교개혁이 이제 한국기독교에서 일어나야 한다. 이제까지 한국교회는 신을 교회당 안에 가두어 놓고, 신을 자신의 입맛대로 마음껏 이용했다. 목회자와 교인들은 신학이니, 교회니 하는 인간학적인 것들, 그리고 우리가 그리스도교적이라고 말하는 재고품들을 쌓아 놓아 신이 움직일 없도록 했다. 예수님은 “마음을 비우라” 했다. 그리고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라고 했다. 그래야만 신이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이 신학자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예수님은 돌아가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주셨다. 예수님을 배운다는 것은 ‘더불어 산다’와 ‘더불어 수난당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산다’는 것은 자신을 낮추고, 비우는 것이다. ‘더불어 수난 당한다’는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결부되어 있다. 본회퍼는 감옥 안에서 무신론자들과 더불어 살다가 더불어 수난당해 교수형의 이슬로 사라졌다.

앞서(제189호 1면과 7면, <종교개혁, 사회개혁과 동반될 때 비로소 성공>)에서 지적한 대로 종교개혁은 계속되어야 한다. 특히 서구에서 계속해서 일어나는 종교개혁에 우리도 여기에 속한 공동체의 역사이다. 서구의 계속되는 종교개혁은 또한 우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러므로 서구의 종교개혁을 귀감으로 삼아 신의 자리를 맘몬으로 빼앗아버린 한국교회, 바벨문화에 길들여진 한국교회, 군사문화에 길들여져 군비경쟁을 부추기는 한국교회, 성육신 하신 주님의 기쁨, 다가올 기쁨을 거부하는 한국교회, 타락한 중세교회를 그대로 재현하고 있는 한국교회, 선교초기부터 정교분리를 내세워 권력주변에서 온갖 혜택을 누린 한국교회,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하고, 민족의식을 국민들에게 심어주지 못한 한국교회, 민족운동과 항일운동, 그리고 민주화운동, 통일운동에 있어 방관자적인 입장을 취한 한국교회가 가야 할 길은 분명하다. 그것은 500년 전 루터가 일으킨 종교개혁을 비롯한 그 후 계속해서 일어난 종교개혁이 한국교회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

루터는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교회의 우두머리가 되려고 한 ‘교황의 수장권’ 문제, 교황만이 성서를 바르게 해석 할 수 있다는 ‘교황무오설’, 예수께서 제정해 주신 두 개의 성례전만을 인정하고 가톨릭교회가 임의적으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던 5개의 성례전, 이것은 성서에 기초하지 않은 것이므로 무효라고 주장하며,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또한 교황만이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초대교회의 의회주의 파괴를 공격했다.
루터가 이렇게 성서와 공의회 위에 군림하는 교황, 그리스도 대신 수장권을 주장하는 교황을 비판함으로써, 교회의 치리나, 교리, 제도의 규정은 성서로 환원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교회의 제도를 비롯한 규정, 치리가 성서로부터만 규정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과연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을 말하면서, 이를 실천하고 있는가(?)를 묻지 않을 수 없다.

   
 

루터의 ‘두나라설’, 잘못된 권력을 정당화의 빌미로 작용
종교를 보호하기 위한 로크의 정교분리와 상반된 입장에서 비판적 받아들여야

루터의 종교개혁 오류와 허점

루터의 종교개혁 역시 오류와 허점을 드러냈다. 루터는 종교개혁 이후, 가진 자들의 편에 서면서, ‘두나라설’을 강력히 주장했다. 이것은 선교에 있어 정교분리를 주장한 것으로 오늘 제3세계의 기독교에 많은 영향을 주고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에서 정교분리를 말할 이유는 없다. 한국 기독교가 정권을 장악해서 부패할 만큼 강대한 세력이 된 일도 없거니와 앞으로도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한국교회가 정치세력화를 위해 기독교정당을 만들기는 했으나, 실패했다. 기독교인들이 기존의 정당에 들어가 국회의원에 당선된 일은 많다. 현재 기독교인 국회의원은 3/1인 100명이 넘는다. 하지만 이들 역시 참 그리스도인들이 없다는 것이며, 교회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는 것이다.

루터의 두나라설의 영향을 받은 한국의 개신교는, 정교분리를 내세워 일본식민주의와 미국 팽창주의를 정당화해 주었다. 또한 피압박민족의 의식화와 민족운동, 항일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 또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그리고 정통주의적 신학의 영향을 받은 신학자들은 오늘날 루터의 종교개혁에 대해 비판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마음껏 우려먹고 있다.

루터의 종교개혁이 오류와 허점이 드러났음에도, 이렇게 호평을 받는 이유는,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이 중세교회의 상황과 전혀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또 루터의 종교개혁이, 종교개혁의 기폭제가 된 것은 사실이다. 영국의 산업혁명이후에도 제2의 종교개혁이 유럽 국가들을 중심으로 일어났다는데서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중세 타락한 가톨릭교회의 상황을 계속해서 부각시켜야 오늘 신의 자리를 빼앗아 버린 한국교회가 그래야만 체면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이웃교단과 이웃교회를 이단으로 정죄하며, 한국교회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있다. 분명히 말 할 수 있는 것은, 성서와 다른 것은 모두 이단이라는 것을 착각하고 있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한마디로 예수님은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을 동시에 단행했다.

부자가 된 한국교회, 가난하고 소외되고 병든 자들을 외면하는 한국교회가 바로 이단이 아닌가(?) 한국교회는 이들을 외면한 채, 교회가 있어야 할 곳에서 이탈했다. 루터의 두나라설, 영미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정교분리는 결국 대한민국에 들어와 우리의 문화는 민속이 되었고, 종교는 미신, 언어는 방언, 예술작품은 수공업으로 이해되었다. 음악은 그냥 음악이라고 부르지 않고 국악 혹은 민요라고 불렀다. 이같은 잘못된 문화는 지금도 국민들 속에 뿌리 깊게 박혔다.

기독교의 이러한 세계화와 선교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예수의 선교명령과 그에 기초한 기독교 역사가 추구한 세계화는 많은 오류와 허점을 드러냈다. 1494년 콜럼버스는 대서양을 향해 떠나면서,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기도를 되뇌었다.

“하나님은 승리하실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백성들의 우상들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

당시 콜럼버스는 이웃나라를 점령한다는 생각보다는 하나님의 세계지배를 생각하면서 항해에 나섰다는 말이다. 이 복음이 미국을 거쳐 한국에 들어 왔다.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이 복음은 한국에 들어와 기업이 되었으며, 세기말 천국과 회개만을 외쳐 됐다. 피압박 민족의 향한 복음, 피압박민족의 아픔과는 거리가 멀었다.

사회개혁을 생각하지 못한 종교개혁

루터가 주장한 두나라설은 결국 사회개혁을 이루어 낼 수 없었다. 종교개혁은 사회개혁이 동반되지 않으면, 결코 성공할 수 없다. 루터는 처음 영주와 농민들 간의 중간자적인 입장에 있었지만, 결국에는 가진 자들로부터 학대받는 농민들을 버렸다. 루터는 타락한 종교의 개혁만을 생각했지 그것이 사회개혁과 병행될 때 비로소 성공한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다.

이런 점에서 존 로크가 말한 정교분리와는 전혀 다르다. 존 로크의 종교분리는 국가의 간섭으로부터 종교를 보호하자는 의미에서 정교분리를 강력히 주장했다. 한마디로 교파들 사이의 갈등을 극복하고, 종교 간의 싸움을 막기 위해서는 국가와 교회가 완전히 구별되어야 한다는 입장을 제시했다. 존 로크는 미국 캐롤라이나 주의 헌법제정에 직접 참여했다. △한분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을 공적으로 예배하며 △정부가 요구할 때 주민들은 신앙고백을 할 의무가 있다. 그리고 어떤 사람도 종교적 집회를 방해 받거나 예배 방식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다. 즉 국가는 종교 활동에 일체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수직적인 신으로부터, 수평적으로 특정 정치세력과 종교 세력으로부터 인간의 자유, 정치적 자유와 경제적 자유의 뿌리가 되었다.

그런데 한국교회는 어땠는가. 일제시대에는 일본 경찰과 헌병의 감시를 받았으며, 그 감시 아래서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또한 이승만 정권 아래서는 이승만의 장기집권을 정당화해 주는데 앞장섰으며, 박정희, 전두환으로 이어지는 군사독재 정권 아래서는 철저하게 정교분리를 내세워 군사독재정권을 정당화시켜주며, 권력의 주변서 온갖 혜택을 누리지 않았는가. 심지어 한국교회는 군사쿠데타로 정권을 빼앗은 전두환씨를 위해 조찬기도회를 주도하지 않았는가.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잘못된 정권의 첨병으로써의 역할을 충실히 수행하며,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눈물을 외면했다. 당시 한국교회가 서운했던 것은, 전두환씨가 불교신자였다는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에 목을 매는 이유는, 선교초기부터 정교분리를 주창해온 한국개신교의 입장을 정당화하기 위해서이다. 또한 정교분리를 말하면서,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려온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이외에는 어떤 것도 내세 울 수 없는 입장이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인디언들을 살육하면서, 아메리카에 들어간 선교사들에 영향을 받은 선교사들이 조선에 들어와 샤머니즘적인 축복신앙과 관념적이고 추상적인 하나님나라만을 외쳐 됐다.

그 결과 한국의 기독교는 우리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민족의식을 몰각할 수밖에 없었다. 선교사들은 조선을 자국의 이익을 대변하는 장사꾼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으며, 한국교회는 권력의 주변에서 온갖 혜택을 누렸다. 또한 일본 국가주의에 쉽게 굴복,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심지어 신사참배와 사회개혁을 부르짖는 이웃교회와 이웃교단을 이단으로 정죄하는 범죄를 저질렀다. 그러면서 성장주의에 매몰돼 한국교회를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재고품들을 교회당 안에 쌓아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 공간을 없애 버렸다.

심지어 성장주의와 열광주의에 매몰된 한국교회는 스스로의 위치를 부정하고, 가난하고, 병들고, 소외되고, 불구자들에게 등을 돌리는 과정 속에서 기형화되어 버렸다. 한국교회사적 측면에서 볼 때 교회로 찾아든 사람들은 한말부터 눌리고 버림받은 계층이었다는 사실, 이때 한국교회는 크게 성장했다. 한마디로 교회는 있어야 할 자리에 있었다.

백낙준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한국에 있어서 전형적인 교회는 시골교회이고, 전형적인 그리스도인은 건강하고 열심히 일하는 정직한 농부다”며, 그것을 자랑스럽게 내세웠다. 반면 서구계몽사상에 물든 이광수는 지적수준이 낮은 한국교회 성원들을 비판했다. 안창호 선생도 교회에 모여 통성으로 기도하는 교인들의 모습을 보고, “저 어리석은 국민들을 어떻게 깨우치랴”고 개탄했다.

이것은 초기기독교회가 한마디로 하류계층의 공동체였다는 사실을 암시해 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라. 이 같은 모습은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다. 그러면서 노숙자선교, 노동자선교, 어르신선교, 다문화선교, 북한선교를 한다며, 떠들어 된다. 예수님은 보잘 것 없는 사람에게 한 것이 나에게 한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이들이 먼저 하나님나라에 들어간다고 선언했다. 이 얼마나 인정 넘치는 공동체인가. 하나님나라는 부자들의 것이 아니다. 부자들의 것이라고 외치는 목사와 그들을 따르는 그리스도인들은 이단이다. 그것은 성서와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

최소한도 한국교회가 오류와 허점투성이인 루터의 종교개혁의 정신만이라도 이해하고, 그의 정신을 목회현장에서 실천했다면, 한국교회의 종교개혁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고 말 할 수 있다. 오늘 한국교회를 보라 신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시키지 않았는가. 이제 신의 현현은 달러가 되었다. 교회의 예배는 다우존스 주가이고, 그의 나라는 크램린 지도자들까지도 좋아한 자본주의 보편문명이 되어 버렸다.

유달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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