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우리에게 부딪치는 시험은 대체로 ‘이상’으로부터 오지 않고 ‘현실’로부터 온다. 이상은 누구에게나 고상하고 아름답다. 책임지지 않고도 말할 수 있다. 그러나 ‘현실’은 다르다. 현실은 누구에게나 치열하다. ‘현실’은 얻으면 살고, 잃으면 죽는다. 우리의 믿음도 바로 이 ‘현실’로부터 시험을 받는다. 그러나 어떻게 대응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다르다. 출애굽 백성들의 이야기가 귀감이 될 것이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어 이르되 내가 이 백성에게 어떻게 하리이까 그들이 조금 있으면 내게 돌을 던지겠나이다.”(출 17:1-7) 목마름의 ‘현실’ 앞에서 백성들은 모세를 원망했고, 모세는 하나님께 매달렸다. 이 둘 사이의 간격은 하늘과 땅 차이만큼이나 크다. 우리가 ‘시험’을 이긴다는 것은 목마름의 현실에 굴복하지 않고 자신의 의지를 하나님의 의지에 복종시키는 것을 말한다. 반대로 시험을 이기지 못한다는 것은 목마름의 현실에 굴복하여 자신의 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예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기 전 시험 받았다. 만일 예수께서 광야의 시험을 이기지 못했다면, 당신의 공생애는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왜 시험을 받으셨는가? 히브리서에 의하면, 예수의 시험은 우리의 고난과 깊은 관련이 있다(히 5:1-10). “그는 육체에 계실 때” 즉 목마름의 ‘현실’에 직면했을 때이다. 바로 이 목마름의 현실에 직면했을 때 “심한 눈물과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하나님께로부터) “들으심” 곧 응답을 얻게 된다. 신약에서 이곳에만 기록된 표현이 “그가 아들이시면서도 받으신 고난으로 순종함을 배워서”이다. 그가 아들이었다는 것은 결핍 없이 살 수 있는 신분임을 말한다. 그런 분이 하나님을 향한 순종을 십자가 고난을 통해서 배우신 것이다. 예수께서 ‘배우는 자’이셨다니 놀라운 일이다.

믿는 이들에게 순종이란 고난을 통해서 ‘배우는’ 것이다. 고난을 통해서 배우지 않은 순종은 ‘현실’ 앞에서 무기력하게 무너지기 쉽다. 그리하여 하나님을 향한 ‘순종’은 ‘맹종’과는 다르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분이 왜 십자가 고난 가운데서 순종을 배우신 것인가? 고난 가운데 있는 인생을 돕기 위해서다. 예수를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대제사장’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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