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언 창 목사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이 되었다. 한국교회 안에서 제2, 3의 종교개혁이 일어나야 한다는 목소리가 거세다. 그것은 예수님의 시간과 공간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말로 들린다. 예수님은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서 가난하고 굶주린 사람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셨다. 교회도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있어야 한다. 십자가도 교회의 지붕이 아니라, 가장 적대적이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자리에 있어야 한다.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오늘 한국교회의 상황에서, 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그곳은 민족의 염원이며, 소원인 분단을 극복해야 할 현장이 아닌가.

특히 올해는 민족해방 72년, 분단 72년, 대한민국 정부수립 69년, 6.25 한국전쟁 67년이 되는 해이다. 그 어느 때보다도 역사적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는 3.1만세운동 100주년, 2년을 남겨놓고 역사적 의미를 새롭게 정립하기 시작했다. 또한 2017년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는 해이다. 분단의 현장에 교회가 없는데, 종교개혁 500주년을 말할 수 있는가. 8천만 민족을 위한 기도성회가 필요한가.

한민족의 해방과 광복은 미완성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한반도를 둘러싼 국제관계는 한마디로 긴장상태이다. 북한은 핵무기개발과 연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를 긴장시키고 있으며, 중국은 남한의 사드배치와 관련, 무역보복에 들어갔다. 또한 러시아를 비롯한 일본은 한반도의 긴장을 고조시키고, 미국은 연일 북한선제공격을 말한다.

오늘 한반도의 문제는 당사자인 남한과 북한 정부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는 것보다도, 주변국들에 의해서 ‘북 치고 장구 친다’는데 문제가 있다. 해방이후 지금까지 한반도의 문제가 거의 강대국들의 이익에 따라 논의되고, 해결되어 왔다는데 문제가 있다. 남북한 문제를 논의하는데 있어 당사자인 남한이 빠져 있었다는데 국민 모두는 자각해야 한다.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이나, 민족해방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에 대해서 관심을 보이고 있는 반면,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서 방관자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다는 지적의 목소리가 높다. 민족통일을 간절히 바라는 뜻있는 목회자와 평신도, 그리고 신학자들은 민족분단의 한복판에 있었던 기독교가 이제는 가던 길을 멈추고, 분단극복과 평화적인 민족통일에 대해 말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이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구원사건의 표징이다. 일제탄압 아래서의 수난, 민족분단 상황에서의 온갖 조작과 수난은, 세계 죄악의 산물이라는 사실을 그리스도인들은 아는가. 기독교는 ‘거룩한 전쟁’이라는 이름으로 침략하고, 전쟁을 일으켜 세계민족을 죽음으로 몰아 넣었는가. 또 많은 사람이 무고하게 감옥생활을 하지 않았는가.

이러한 수난은 그 죄악을 증거하는데, 또 이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미래를 표징한다. 예수님께서 죽음으로서 보여주신 새로운 미래는 반드시 도래해야 한다. 이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의 신앙고백이다. 죄악과 억압, 전쟁과 희생이 반복되는 한 새로운 미래는 묘연하다.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은 자칫하면 허무주의에 귀착하고 말 수도 있다. 인간성이 성취될 궁극적인 새로운 미래가 도래해야 한다는 것은, 미래가 우리의 손안에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기독교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구원이 하나님으로부터 혹은 미래로부터 도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기독교를 희망의 종교라고 말한다.

예장 웨신 부총회장(사무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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