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종교개혁, “맘몬으로 대치시킨 신의 자리 되돌려 주자”종교개혁 500주년 즈음해서(마지막) … 미완의 종교개혁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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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7.10.25  10:1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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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사에서 스스로 소외된 교회

본지는 2017년을 시작하면서, 한국교회 안에서의 종교개혁이 절실하다는 것에 방점을 찍고, 지난 10개월 동안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동시에 그것에 대한 해결방안을 제시하기 위해 25여회에 거쳐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하여> 연중기획 시리즈를 집중 취재, 보도했다.

무엇보다도 신자유주의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진 한국교회는, 신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시켰으며, 한국교회의 고립을 자초했다. 따라서 본지는 예수님의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는 운동이 한국교회에서 절실하다는 점과, 추상적이고 감상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한다는 현실적인 하나님나라운동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또한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점과, 몰각한 우리의 문화와 역사를 회복하고, 한국교회가 처절하고도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서 평화통일운동의 중심에 있어야 한다는 점도 강하게 제기했다. 또한 인간의 존엄성을 상실해 가는 한국교회의 모습도 지적함과 동시에 신구약성서에 나타난 생명의 존엄성도 제기했다.

특별히 본지는 루터의 종교개혁 오류와 허점을, 종교개혁 이래 지금까지 악용되어 온 점과 사회개혁을 동반하지 못한 점도 지적하고, 사회개혁과 종교개혁이 동반적으로 일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일어난 종교개혁의 단초가 된 루터의 종교개혁을 재평가하고, 하나님과 인간의 중간 매개로 예수님 외에는 있을 수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목회자와 사제가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중재자는 예수님 한분뿐이며, 목회자의 의식개혁 없이 한국교회의 미래를 담보 할 수 없다는 결론을 얻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은 미완으로 지금까지 영국을 비롯한 유럽에서 계속 진행되어 왔으며, 남미를 비롯한 동남아시아, 한국 등에서도 종교개혁운동이 계속해서 진행되고 있다. 그것은 흑인신학과 해방신학, 아시아의 고난 받는 사람들의 신학 등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전통주의와 경건주의, 근본주의 신학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영미 선교사들이 가져다가 준 신학과 신앙은 오늘 한국교회에서 엄청난 힘을 발휘하고 있다. 곧 정통주의 신학과 근본주의 신학, 경건주의 신학에서 벗어나면, 이단으로 규정하는 등, 이것이 이외의 신학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 오늘 한국교회의 현실이다. 한국교회에서의 신학과 신앙을 둘러싼 논쟁이 계속해서 일어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그 끝은 보이지를 않고 있다.

콜럼버스 이래 기독교선교는 많은 오류와 허점을 드러냈다. 무엇보다도 중남미를 향해 떠난 선교사들은, 토속민인 인디언들을 살육하며, 그리스도 복음의 뿌리를 내렸다. 그 선교사들이 한국에 들어와, 미국과 유럽의 팽창주의를 대변했다. 그리고 루터의 두나라설(정교분리)을 철저하게 악용하며, 수명을 다한 이씨 조선의 백성들을 향해 회개와 개인구원만을 외쳤다. 한마디로 몇 명의 선교사를 제외하고 대부분의 선교사들은 민족의식과 민족운동, 그리고 항일운동을 철저하게 막았다. 한마디로 영미의 팽창주의와 일본의 식민주의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이로 인해 한국의 기독교는 스스로 민족공동체로서 민족사에서 자연스럽게 소외되었다.

그럼에도 선교사들은 남녀평등사상과 성경공부를 통한 문맹퇴치, 가난과 질병으로 고통당하는 이웃을 향한 사회사업, 교육사업, 교회설립 등 적지 않게 한국사회에 공헌했다. 이것이 당시 한국기독교선교가 짧은 기간에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이유다. 피압박 민족은 무너져 가는 국가의 위기 속에서 하나님나라를 대망했다. 그러나 한국기독교선교는, 영미의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정통주의에 입각한 제국주의적 식민지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여 많은 오류와 허점을 드러냈다. 이러한 영향을 받은 목회자들은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시키고, 권력을 자기방어 수단으로 철저하게 이용했다.

오늘 한국교회는 스스로 사회와 단절되고, 폐쇄적이 됨으로써 한국 안에 있으면서, 물위에 뜬 기름처럼 민족적 현실문제에 ‘오불관언’의 자세를 취해 왔다. 여기에는 이기주의와 비겁성이 그대로 배어있으며, 또 프로테스탄트의 저항정신을 실종시키고 말았다. 한국교회가 3.1의거와 같은 민족사에서 잊을 수 없는 일익을 담당했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사와 관계가 없는 종파라는 인상을 주고 있다. 그 이유는 한국교회의 체질이 민족사와 유리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란 그 자체를 위해 있는 것이 아니다. 언제나 타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섬기며, 사랑을 나누어야 한다. 교회가 더불어 살지 않고, 십자가의 수난에 참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자기게토에 빠져 있는 것과 다르지 않다. 이것은 자기반성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이러한 과거의 잘못들과 단절하고, 한국교회의 변화를 위한 종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 한민족공동체 안에서 민족의 문제가 나, 또는 우리의 문제가 아니라면, 교회는 민족 안에서 소외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즉 그리스도교가 살려면 민족의 문제에 깊숙이 파고 들어가야 한다. 즉 한민족의 염원이며, 소원인 분단극복과 평화적인 민족통일의 현장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

그의 나라는 자본주의 보편문명

루터의 종교개혁이 일어난 지 500년이 되는 오늘의 한국교회는 타락한 중세교회보다도 더하면 더했지, 그보다 못하지 않다는 지적이다. 독일의 시사주간지 <슈미켈>은 콜럼버스 미 대륙 발견 500주년 특집에서 기독교 선교를 뛰어넘는 자본주의의 세계적 승리의 결과를 짧게 평가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의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램린의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다”

이러한 유럽의 자본주의 문명은 기독교의 선교 희망과 더불어 출발했지만, 결과적으로 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전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자본주의 시장이라는 보편적인 문명이다. 콜럼버스는 신대륙을 출발하면서, 5세기의 대신학자인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은 승리하실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민족의 우상을 비로 쓸어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란 기도문을 되새기며, 항해 길에 몰랐다.

이 기도문을 자세히 살펴보면 무섭다는 생각이 든다. 기독교선교의 세계화는 예수님께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로 출발한다. 그런데 오늘 세계화는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을 시작으로 출발하고 있다. 그 결과 세계는 하나님이 다스리는 그의 나라가 아니다. 하나님 대신 시장이 들어섰다.

본지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지난 10개월 동안 오늘 한국교회의 과거와 현재를 되돌아보고 미래를 조망했다. 중세교회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한국교회에서의 종교개혁은 절실하다. <종교개혁 500주년, 개혁과 갱신의 길로 나아가라>를 시작으로 25여회에 거쳐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 설(회개)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하지만 한국교회는 최순실의 국정농단과 불의한 정권의 오방과 악령에 대해서 예언자적인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민족과 유리된 채, 분열과 갈등의 모습을 그대로 드러냈다. 특별히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알면서도, 한국교회는 십자가를 앞세워 박근혜 대통령 지키기를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한국교회가 자기 게토화에 빠져 있다는 단적으로 보여준 대목이다. 한국교회의 이러한 모습들이 들어나면서, 본지는 종교개혁 500주년에 맞춰 2017년을 개혁과 갱신의 원년으로 삼을 것을 한국교회에 제안했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분열과 갈등은 멈추지를 않았다. 교회의 집단이기주의의 모습은 곳곳에서 드러났다. 그렇다보니 한국교회가 세상을 걱정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세태가 되었다. 하비콕스는 “교회가 세상을 버리면, 하나님은 교회를 버린다”고 경고 했다.

특히 한국교회는 부자들의 종교로 변질된 나머지, 예수님께서 가난하고 소외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함께 역사의 현장에서 벌인 하나님나라운동에서 유리되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없었다. 교회가 있어야 할 곳에 교회는 없었다는 말이다. 다른 말로 말하면, 교회는 행동하지 않았다.

신자유주적 자본주의 경제체제에 길들여진 한국교회는 신의 자리를 돈으로 빼앗아 버렸다. 그의 나라는 크렘린도 좋아한 자본주의 보편문명이 되었다. 그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성체는 달러가 되었다.

그러면서 한국교회는 루터의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명분 없는 이벤트성 기념사업을 곳곳에서 벌이며, 행동 없는 종교개혁을 외쳤다. 본지는 한국교회의 변화와 개혁을 위해 제1성으로 <그리스도인이라면 섬기는 자유와 사랑하는 자유를 가지라>(1월 8일자 8면)고 촉구했다. 여기에서 본지는 교회의 잃어버린 정체성 회복과 만인으로부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행동하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중요성과 예언자적인 종교개혁의 정신, 그리고 목회자의 의식개혁을 한국교회 미래의 대안으로 제시했다.

이웃교단의 역사와 신학을 존중하라

분열과 갈등, 그리고 이웃교단의 역사성과 특수성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이웃교단과 단체의 역사와 특수성을 인정하는 풍토 중요>((1월 22일 8면)의 글을 게제, ‘잘못된 권력과 단절하고,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서 하나님나라운동’을 실현할 것을 촉구했다. 여기에서 본지는 한교총의 출범이 또 하나의 한국교회 분열임을 지적하고, 하나의 한국교회를 위해서는 다양성 속의 일치를 비롯한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설 것과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나설 것, 불의한 정권들과 단절 등을 한국교회 미래의 대안임을 분명히 했다.

사실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루터의 두나라설(정교분리)을 철저하게 따르고, 권력의 주변을 맴돌며, 온갖 혜택을 누려왔다. 또한 일본 식민지 세력을 정당화 해주고, 피압박민족을 향해 예수 믿고 구원받으라고 외쳤다. 오늘 한국교회가 민족공체에서 유리된 채 국민들을 향해 ‘예수천당’, ‘불신지옥’을 외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는 결국 교회가 국민들로부터 반감을 사는 결과를 가져다가 주었다.

무엇보다도 한국교회는 선교초기부터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하고, 정교분리를 내세워 교인들의 정치참여와 민족의식 고취, 의식화를 철저하게 막아 왔다는 사실에 대해서 모두가 공감하는 바이다. 일본 식민지세력을 비롯한 불의한 정권과 결탁해 온 결과 한국교회는 일본국가주의에 굴복, 신사참배를 결의하는 등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를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잘못은 해방이후에도 계속되었으며, 불의한 정권을 등에 업고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종교로서의 역할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또한 본지는 촛불정국 아래서 민심을 읽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현실을 보면서, <민족을 배반한 권력 - 민심을 떠난 교회, 희망없다>(2월 5일 8면)는 제하의 글에서 하나님이 통치하는 세상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그것은 한국교회가 불의한 권력과 밀착돼 교회의 기능을 역으로 악용했다. 여기에서 본지는 다윗의 공룡문화와 민심을 배반한 권력의 최후를 말함으로써, 한국교회의 현주소가 어디인가를 밝혔다. 분명하게 말 할 수 있는 것은 한국교회의 130년의 역사를 되돌아보면, ‘정교분리’를 내세워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이탈되었다는 것을 밝혔다. 한국교회는 권력에 달려드는 불나비와도 같았다. 또한 계층 간의 갈등, 세대 간의 갈등, 노사 간의 갈등, 보혁 간의 갈등의 중심에 늘 교회가 있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는 불의한 정권의 조력자였다. 한국교회는 불의한 정권에 맞서 싸우는 힘없는 사람들을 외면했다.

   
 
“몰각한 역사와 문화 회복, 평화통일에 봉사하자”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역사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자


프로테스탄트의 기조는 저항정신

본지는 성서의 정신에서 이탈한 한국교회를 향해 <비생산적인 이단논쟁에서 벗어날 때 하나 될 수 있다>(2월 10일 8면)는 글을 통해 종교개혁 정신이 부끄럽지 않도록 할 것을 강조했다.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은 한마디로 저항정신이다. 루터 역시 타락한 중세교회를 상대로 종교개혁을 단행했다. 여기에는 프로테스탄트의 정신이 그대로 배어 있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하나님의 뜻’이란 이름을 내걸고 교회 안에서 전투 아닌 전투를 벌이고 있다. 한 하나님을 고백하면서, 보수교단과 진보교단 간의 적대적 관계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 근본주의 신학과 정통주의 신학, 경건주의 신학에 매몰된 나머지 개 교단이 갖고 있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다.

각 교단이 갖는 다양성을 인정하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계속해서 추락할 수밖에 없을 뿐만 아니라, 분쟁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는 점을 강하게 제기했다. 그리고 고난당하는 사람들을 외면하는 것은 ‘죄’임을 분명하게 밝혔다. 구약성서는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출애굽에서 출발하고, 신약성서는 예수님께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인 것에서 출발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은 고난당하는 사람들의 삶의 현장이었으며, 이들이 있는 곳에 항상 예수님도 계셨다.

무엇보다도 10개월 동안 종교개혁 500주년에 즈음해서 본지가 집중보도한 내용의 큰 성과는 3.1만세운동 100주년, 2년을 앞둔 제98주년을 맞아 3.1만세운동을 기독교적인 민족민중사관에서 새롭게 조명했다는 것이다. 본지는 3회에 거쳐 <초기 선교사들, 일본침략세력 정당화에 앞장>(2월 19일 1면과 5면), <3.1만세운동 중심에 기층민중이 있었다>(2월 26일 1면과 5면), <31운동은 지역과 계층을 아울러 한민족 하나로 녹여낸 용광로>라는 제하의 글에서, 3.1만세운동의 주체가 33인이 아닌, 아리랑고개를 힘겹게 넘는 남편과 아들, 딸들을 보면서 에스더처럼 민족을 위해 기도했던 민족의 어머니, 나라를 잃어버리고 민족의 해방을 간절 염원했던 민족의 에스더, 밭을 갈아 가족들의 생계를 책임졌던 기독농민, 불의를 보고 참지 못했던 기독청년 이라는 것을 재조명했다.

여기에서 본지는 1천만 촛불 행진이 3.1정신의 재현이었으며, 한국교회를 향해 실종된 역사의식 회복과 기독교 문화유산의 보전을 강력히 제기했다. 또한 영미선교사들의 한국선교는 분명 봉건사회 극복에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는 사실에 대해서 분명한 입장을 밝혔다. 하지만 일부 선교사들은 일본식민지세력을 등에 업고, 조선을 장사꾼들의 소굴로 만들어 버렸으며, 피압박 민족을 향해 사구려 복음을 전파하고, 정교분리를 내세워 민족의식을 말살시키는 잘못을 범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그리고 한국교회가 3.1만세운동 100주년을 앞두고, 이 운동의 성격과 의미를 새롭게 정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함을 강하게 역설했다.

십자가의 삶을 실천해야

한편 본지는 교회가 있어야 할 자리에서, 아니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서 섬김과 십자가의 삶을 실천할 것을 촉구했다. <경건과 절제 속에 고난당하는 이들과 함께 울라>(4월 9일 1면과 5면)와 <나를 개방해 너를 받아드릴 때 참 평화를 기대할 수 있다>(8면)에서, 기독교는 평화의 종교인만큼, 평화를 노래하는 교회로 변화되어야 한다는 점과 이 평화는 십자가의 삶을 실천할 때 비로써 실현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무력에 의한 평화(팍스)가 아닌 예수님께서 삶의 현장에서 실천한 평화<샬롬>를 강조, 팍스를 노래하며 군비경쟁을 부축이는 보수적인 한국교회의 목회자들의 의식변화를 촉구했다.

또한 부활절을 맞아 죽임당한자의 부활을 증언하는 그리스도인의 역할을 역설했다. <죽임 당한 자의 ‘한의 소리’를 듣고, 평화운동 앞장서자>(4월 16일 1면과 7면)에서, 교회는 민족의 염원이며, 소원인 분단의 현장으로 들어가 하나님나라운동을 실현하는 교회가 될 것을 제기했다. 그리고 비도덕적인 서구의 팽창주의의 기류를 타고 전파된 선교의 모순을 지적했다. 예수님을 교리와 제도로 만들어 그것을 절대화 하는 악마성을 비판했다. 분단의 현장에서 평화와 정의, 그리고 자유를 위해 행동하는 교회가 절실하다는 점도 강조했다.

또 기독교를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원리를 분석하고, <기독교의 가치는 맘몬(돈)을 하나님으로 숭배하지 않는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또한 <기독교 세계선교는 하나님의 승리 아닌 맘몬의 승리>(4월 30일 8면)라는 점도 지적했다. 한마디로 한국교회와 세계교회의 세계화는, 신자유주의 자본주의적 경제체제가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다.

여기에서 본지는 자본주의 원리의 교회지배, 구역장을 통한 교인 관리 및 통제, 부자교회 담임목사 대물림하는 시대,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한 맘몬에 길들여진 교회, 개신교 선교 제국주의 팽창과 동반 성장,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몰각한 교회, 희망 없는 한국교회, 하나님의 나라 자본주의 보편문명으로 변질 등의 문제점 제기했다. 세계화시대 기독교의 두 얼굴을 적나라하게 지적함으로써, 한국교회의 개혁과 변화의 절실함을 부각시켰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어른들의 욕망을 위해 인권이 유린되는 아이들에 대한 문제점도 집중 보도했다. <생명의 가치 잃은 세상. 어린생명을 죽음으로 내몰아>(4월 30일 1면과 5면)란 제목의 글을 통해, 현장 목회자들이 ‘생명의 존엄성’과 ‘가치’를 잃어버린 결과, 쓰레기 같은 말을 내뱉는 그리스도인들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아 가시밭길을 헤매는 예수님의 사역을 부각시키는데 노력했다. 특히 한국교회를 향해 ‘죽임 당한 자’의 ‘피의 절규에 귀를 기울여 줄 것을 강력히 촉구했다. 이밖에도 가정의 달 특집, <가난과 질병 속에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은퇴 목회자>(5월 14일 1면과 5면), <탐욕으로 깨어지는 부부 … 사랑으로 보듬어야> 등의 글을 통해 건강한 가정과 교회, 사회에 기여하는 교회의 역할을 제시했다.

특별히 유럽의 경건주의와 근본주의, 정통주의 신앙과 신학을 그대로 받아들인 한국교회의 두 얼굴, <근검과 절약을 기반으로 하는 개혁교회서 이탈>, <맘몬에 갇혀버린 교회, 기독교의 보편적 가치 상실>이란 제목의 글을 통해 서구문화가 교회를 점령, 기독교의 보편적 가치 상실, 하나님의 자리를 맘몬으로 대치, 선교라는 이름아래 수탈과 침략 등의 기독교 세계화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모든 족속을 제자로 삼으라’는 예수님의 선교명령에서 이탈한 기독교의 선교와 세계화의 잘못을 바로 잡도록 촉구했다.

교회 분쟁, 신구약성서의 법정신으로 해결

본지는 또한 7월 법의 달을 맞아 <교회 분쟁, 신구약에 나타난 법정신으로 해결하라>(7월 2일 1면과 5면), <예수님의 법정신, “법은 사람을 위해 있다”>(7월 16일 1면과 5면), <구약 3대법전, 사회적 약자들과 하나님나라 실현>(7월23일 1면과 5면) 등의 글을 통해 본지는 분열과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교회가 성서의 법정신으로 해결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특히 교회 내 분규를 사회법정으로 끌고 가는 한국교회의 문제점을 비판했다. 그리고 목회자 중심의 교회규칙을 공동체 중심으로 바꾸어야 한다는 점도 역설했다.

또한 구약의 3대법전인 계약법전과 신명기법전, 성법전(레위기)에 나타난 법의 정신이 바로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관용의 법이라는 사실. 또한 신약성서 역시 안식일 법과 정결법 등을 지킬 수 없는 사람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정신. 예수님은 안식일법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선언을 새롭게 조명했다. 그렇다. 모든 법은 사람을 위해서 있다.

예수님은 안식일법과 정결법을 지킬 수 없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하는데 앞장섰다. 그런데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사회적 약자들의 편에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지 못했다. 오히려 교회지도자들은 피 묻은 권력을 위해서 기도해 주며, 성서의 법을 철저하게 악용했다. 성서의 법은 정의로운 사회 건설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으며, 예수님은 입으로 들어오는 것이 더러운 것이 아니라, 사람의 몸에서 나오는 것이 더럽다고 했다. 특히 예수님의 법정신과 구약의 3대 법정신은 간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인권을 유린하는 것과 싸웠다. 그리고 이들과 함께 삶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그렇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법을 악용하는 바리새파 법주의자들과 충돌했다. 예수님의 삶의 현장은 가난한 자와 사회적 약자들의 삶의 현장이었으며, 하나님과 인간의 중재자로서의 법 앞에서, 아니 하나님 앞에서 모두가 평등하다는 것을 선언 하셨다.

이렇듯 기독교는 사랑의 종교이며, 평등의 종교이다. 그리고 생명의 종교이며, 평화의 종교이다. 8월 민족해방 72주년, 분단 72주년을 맞아 본지는 평화적인 민족통일과 민족동질성회복의 중요성을 제기했다. <십자가는 가장 적대적•고통스러운 분단의 자리에>, (8월 6일 8면)과 <교회 뿌리내린 군사문화, 사회연대 장애요인 제기>(1면과 5면), 남북한 방위경쟁 민족파멸을 재촉>(8월 13일 1면과 5면), <한반도에서 무력전쟁 반드시 막아야 한다>(27일 11면)을 통해 한국교회의 한민족 선교와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노래할 것을 촉구했다. 특히 한민족의 선교는북한만의 선교도 아니며, 남한만의 선교도 아니고, 세계 200여 나라에 흩어져 사는 한민족 모두의 선교여야 한다는 선교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제시했다.

한국교회는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서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여야 한민족의 소원이며, 염원인 민족통일과 분단극복에 봉사할 수 있음을 역설했다. 이와 함께 민족공동체로서 민족사에 참여하는 교회의 역할과 그 대안을 제시했다.

그렇다 평화통일은 하나님의 의와 구원의 실현이며, 한반도의 평화가 곧 세계평화에 봉사하는 길임을 제기했다. 특별히 본지는 분단의 문제를 당사자인 남북한 당국자들이 한 번도 이 문제를 놓고 한반도에서 논의해 본적 없는 것에 대해서 안타까움을 표시하고, 한반도의 평화통일 문제를 당사자인 남북한 당국자들이 민족의 미래를 위해 함께 고민하고, 해결할 것을 촉구했다. 그리고 평화통일운동의 중심에 교회가 있어야 한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평화통일의 문제는 남북한 7.4공동성명에 입각해서 풀어야 한다는 점도 강조했다. 그리고 기독교 선교가 민족구원과 남북한 평화통일의 증언자로서의 그 사명을 다해 줄 것도 요구했다.

한편 본지는 한국장로교 총회를 앞두고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는 한국교회의 현재 상황에서, 이단사이비 연구의 문제점을 지적했다. 돈으로 신의 자리를 대치시킨 한국교회가 이단 및 사이비를 말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무차별적인 이단 정죄 멈추어야 한다>(9월 2일 1면과 5면)의 글을 통해 이웃교단과 이웃교회의 신앙과 신학사상에 대해서 문제를 삼는 한국교회가 맘몬과 바벨을 노래하면서, 이웃교회와 교단을 이단으로 정죄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의 시간과 장소로 돌아가 교회를 회복하라고 촉구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에 대한 책임과 의무를 회피하는 것이 이단의 죄>(9월 24일 8면)임을 분명히 하고, 한국교회의 기복적이고 열광주의이며, 신비주의적인 폐해를 2차에 거쳐 분석했다.

종교개혁, 사회개혁과 동반돼야

그리고 마지막으로 <종교개혁, 사회개혁과 동반될 때 비로서 성공>(10월 1일 1면과 7면)과 <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 확보하자>(10월 15일 1면과 7면)는 제목의 글에서, 루터의 종교개혁의 허점과 오류를 분석하고, 한국교회가 과거 잘못된 악습들을 정리, 신이 움직일 수 있는 공간마련과 예수님의 ‘삶의 현장’서 예언자적인 종교개혁을 단행해야 한다는 점을 부각시켰다. 무엇보다도 루터의 종교개혁이 사회개혁을 실종시키고 있다는 점을 지적했다. 또한 루터의 ‘두나라설’은 오늘에 와서 ‘정교분리’로 악용되고 있음도 지적했다. 루터의 두나라설(정교분리)와 존 로크의 ‘정교분리’를 비교 분석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와 세계교회는 자기 게토화에서 벗어나 한반도의 평화와 세계평화에 봉사해야 한다. 교회란 그 자체를 위해서 있는 것이 아니다. 어디까지나 타를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 이것은 자기반성과 교회개혁을 위해서 매우 중요하다. 그리스도교는 스스로 살려면 문을 활짝 열고, 민족사에 참여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돈으로 빼앗아 버린 하나님의 자리를 원래 그 자리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는 ‘나’ 혼자 가는 곳이 아니다. 너와 나, 우리 모두가 가야 하는 곳이며, 그의 나라를 위해서 모두가 봉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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