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국 경 목사

신앙이 없었던 소년시절에 미7사단 미군병사 막사에 하우스보이로 한때 일한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미군부대 종업원의 한 사람으로 영내식당에서 미군병사들과 함께 양식으로 식사를 매일 하던 중, 11월 어느 날 추수감사절(Thanksgiving Day)이라고 하면서 칠면조 고기와 특별메뉴를 푸짐하게 차려놓고 배식을 해줘서 포식을 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미국인들에게 있어서 추수감사절은 역사적인 의미를 가진 큰 명절로, 그들의 삶속에 큰 뿌리를 내린 전통적인 절기로 지켜오고 있다. 그들은 추수감사절을 통해 하나님께 감사드리며 모든 사람들이 서로 나누며 섬기는 절기로 정착했고, 이로 인해 일상생활에서도 상대편에게 ‘댕큐’를 연발하면서 감사를 일상화 하고 있다. 1620년 8월 15일 영국의 청교도들 중에 102명이 신앙의 자유를 찾아가기 위해 63일간 대서양 바다 위에서 노를 저어 천신만고 끝에 북미 대륙에 도착했다. 그해 겨울은 혹한으로 일행 중에 절반이 동사했고 살아남은 사람들이 다음 해 인디언들의 도움으로 농사를 지어 하나님께 감사의 예배를 드렸고 이것이 추수감사절의 유래가 되었다. 그때 청교도들은 이런 기도를 했다고 한다. “하나님! 우리가 이 땅에 온 것은 호의호식을 위해서도 아니고 황금을 캐려고 온 것도 아닙니다. 우리는 참된 신앙과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 왔습니다. 앞으로 이 땅에서 신앙의 자유가 꽃을 피울 것이며 인간의 삶을 통한 하나님의 영광이 이 우주에 빛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아멘.” 이것이 청교도들의 신앙고백이며 추수감사절의 정신이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사람은 배우는 사람이요, 세상에서 제일 강한 사람은 자기를 이기는 자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은 범사에 감사하며 사는 사람.”이라고 했다. 감사를 심으면 기적의 열매가 열리고, 감사로 눈을 뜨면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축복을 받는다. 불평하면 모자라지만 감사하면 언제나 차고 넘친다. 하나님의 말씀과 하나님이 하시는 일에 감사로 순종하면 언제나 행복하고 은혜가 넘치는 열매를 얻게 된다. 하나님은 우리인생이 어떤 어려운 사건이나 상황에서라도 믿음을 가지고 감사하면 회복의 기회를 주신다.

에르네스트 카르데날의 글 「침묵 속에 떠오르는 소리」 속에 이런 말이 있다. ‘자연은 모두 다 사랑이며 하나님의 사랑이 사방으로 우리를 포위하고 있다. 그분의 사랑이 우리가 마시는 물이요. 숨 쉬는 공기요 우리가 바라보는 빛이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헤엄치듯 우리는 그의 사랑 속에서 활동한다. ’라고 했다.

인간에게 있어서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하나님은 우리의 감각이나 시각으로 알아볼 수 있는 형상으로 우주 만물을 창조하셨으며, 하나님의 사랑이 바로 자연이고 우리가 살고 있는 환경이다. 하나님의 자녀된 것을 감사하고 하나님의 일꾼 된 것을 감사하자. 감사는 신앙인의 최고 수준이며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만남의 축복을 누리게 해준다. 성경은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에든지 범사에 감사하라고 가르친다(살전5:18). 인간이 쓰는 말 가운데 감사라는 말이 성숙한 문화인의 최상의 언어이다. 왜냐하면 감사가 있는 곳에 사랑이 있고 인정이 있고 웃음이 있고 기쁨이 있고 축복이 있기 때문이다. 신앙을 통한 감사의 문화가 우리 민족의 생활 속에 정착되기를 바란다. 전능하신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올려드립니다. 이글을 읽으시는 모든 분들에게도 감사를 드립니다.

예장 합동선목 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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