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서신을 통해 장기기증자 유가족들과 이식인이 교류를 하고, 일정 기간이 지나면 만남도 이루어진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이식인에 대해 건강히 잘 살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는 실정이다.

이에 장기기증운동본부(이사장 박진탁 목사, 이하 본부)와 도너패밀리(장기기증자 유가족들을 위한 모임)는 ‘잘 지내고 있나요?’ 뇌사장기기증자 유가족 예우 촉구 기자회견을 지난 8일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에서 갖고, 하루 속히 뇌사 장기기증자들의 유가족들이 이식인과 안부를 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소망했다.

박진탁 이사장의 인사로 시작된 이날 기자회견은 도너패밀리 장부순 부회장(기증자 이종훈 모친)의 회견문 낭독 등의 순서로 진행됐다.

이들은 이날 “현재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들은 법 때문에 가족의 장기가 누구에게 기증됐는지 알 수가 없다”면서 “많은 가족들이 건강히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해 하고 있지만 정보 공개가 되지 않아 그저 마음으로만 그런 바람을 삭이고 있다”고 토로했다.

또한 “사랑하는 가족을 잃고 큰 아픔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내 가족의 장기를 이식받아 이 세상 어딘가에서 건강하게 살아가고 있는 이식인들의 소식은 내일을 살아갈 수 있는 큰 힘이 될 것”이라고 피력했다.

아울러 “유가족들에게 장기기증은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다. 가족을 잃은 슬픔 가운데서도 생명을 살리고자 어려운 결정을 한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들에게 필요한 진정한 예우는 물질적인 것이 아니라 정신적인 위로와 격려”라면서 “편지로라도 이식인과 서로의 안부를 물을 수 있다면 그것이 유가족들에게 큰 위로가 될 것이다. 또한 장기기증이 정말 잘한 일이라는 자부심을 갖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다”고 피력했다.

덧붙여 “하루속히 뇌사 장기기증자들의 유가족들이 이식인과 안부를 전하며 살아갈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면서 “4,200여명의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들에게 삶에 희망과 위로가 전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이어 도너패밀리 박상렬 씨(기증자 편준범 모친)와 신·췌장 이식인 모임 송범식 회장이 사례를 소개했다.

기증자 편준범 모친 박상렬 씨는 “아들을 떠나보내려고 저희 부부는 2년 여간의 시간을 방황했다. 꿈에서라도 아들을 한번 만나보고 싶은 생각이 간절한 밤들 이었다”면서 “제 아들의 장기를 직접 이식받은 누군가에게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다는 편지로도 받게 된다면 큰 감동이 올 것이다. 어디에선가 아들의 삶을 이어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된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큰 기쁨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신·취장 이식인 송범식 씨는 “병원에서 저에게 기증해주신 분이 20대 초반의 남자 복싱선수라는 것을 듣게 됐다. 그리고 소중한 아들을 잃었을 그 가족들을 생각하니 마음이 아팠다. 큰 슬픔 가운데에서도 저와 같은 환자들에게 새 생명을 선물하고자 장기기증이라는 고귀한 결정을 해 주신 것에 너무 감사하다”면서 “기증자 가족들에게 ‘아드님의 생명 나눔으로 시작된 두 번째 인생을 건강히 아드님 몫까지 살겠다’고 전하고 싶다. 하루 속히 장기기증자 유가족들과 저희 이식인들의 교류가 허락되어 저의 감사한 마음을 전하길 바란다”고 호소했다.

이후 도너패밀리 이선경 씨(기증자 김유나 모친)와 도너패밀리 김순원 목사(기증자 김하람 부친)의 해외사례 소개, 본부 김동엽 사무처장의 국내외 예우 프로그램 소개 등의 순서로 기자회견을 마쳤다.

기증자 김유나 모친 이선경 씨는 “저희 가족은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기관을 통해 계속해서 이식인에 대해 물을 수도, 근황을 전달받거나 편지를 받을 수도 있다. 누군가가 딸의 삶이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이 무엇보다 큰 위안이 되었다”면서 “한국은 기증자 유가족과 이식인 간의 정보교환이 허용되지 않아서 장기를 기증하고도 어떤 사람이 이식받아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건강한지조차도 알 수 없다는 것은 너무 안타까운 일이다. 한국에서도 조속히 장기기증자 유가족들이 이식인의 소식을 통해 위로와 위안을 받게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기증자 김하람 부친 김순원 목사도 미국의 장기기증에 대한 예를 들면서 “먼저 하늘나라로 떠나보낸 무모의 삶은 정말 말로 표현하기 힘들다. 그라니 이식인들의 편지와 영상통화를 통해 딸의 장기가 죽어가는 누군가에게 새 생명을 이어줬을 뿐만 아니라 건강하고 희망찬 삶을 살게 해 주었다는 사실에 큰 위로가 되었다”며 “한국에서도 하루 빨리 기증자의 가족들과 이식인들과의 교류가 허용되어 생명운동이 활발하게 일어나길 소망한다. 장기를 기증한 유가족들의 마음을 위로해주고 격려해주는 아름다운 문화가 자리 잡길 바란다”고 전했다.

박진탁 이사장은 “장기를 이식받지 못해 하루에 3명이 세상을 떠난다. 기증운동이 활발해져 그들의 생명을 연장하기를 바란다”면서 “힘들게 결심한 장기기증이 헛되지 않고, 그분들에게 큰 위로와 예우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박 이사장은 또 “기증자들은 기증한 후 내 장기가 누구에게 갔는지 궁금해 한다. 최소한 받은 사람이 누구인지, 건강하게는 살고 있는지 이 정도는 기증자들에는 알려져야 한다”면서 “이러한 일들이 활발해진다면 장기기증운동 또한 활발해져 소중한 생명을 더 지킬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편 본부는 2013년부터 1천 6백 여 명의 도너패밀리들을 대상으로 다양한 예우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뇌사 장기기증자 유가족 모임인 도너패밀리를 결성해 소모임을 진행하고, 떠나간 가족이 가장 생각나는 연말을 맞아서는 ‘도너패밀리의 밤’을 비롯해 일일추모공원, 초상회전시회, 미술 심리상당 프로그램, 이식인과의 산행 등을 진행하고 있다.

이를 통해 한 자리에 모인 유가족들은 가족의 장기기증이라는 동일한 경험을 나누고 격려하는 시간을 갖고, 아픔을 간직한 가족들을 위로한다. 또한 장기기증에 대한 유가족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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