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새해벅두에 전해진 일관성 있고 고도로 치밀하며 멀리 내다본 평양의 신년사였다. 이는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며 그동안 엄청나게 축적된 대남 정보와 자산들 그리고 정확한 현실파악이 가져온 평양의 정치적 결정이었고, 이것이 불러올 파장은 가히 짐작하기 어렵다. 반면 여기에 대응해야 하는 우리의 현실은 암울하다 못해 절망적이다. 그나마 가지고 있던 대북 정보와 자산은 거의 공개되어 버렸고, 북한의 휴민트는 제거되었으며, 바로 눈앞의 일들에게 미칠 영향만을 계산하여 북에 매달리고 있는 현실에서 과연 이 노련한 평양의 몸놀림을 따라 잡을 수 있을까하는 두려움은 상당히 많은 이들의 공감을 얻을 것이다.

즉각적으로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의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참가를 위해 모든 비용을 부담하겠다는 적극적인 의사를 밝혔다고 미국 자유아시아방송(RFA)이 보도했다. IOC는 그 비용을 Olympic Solidarity, 즉 IOC의 사업으로 축적된 자금으로 북한 선수단을 지원하겠다는 보도가 나왔다. 동시에 평창올림픽에 북한을 참여시키면 미국은 불참할 수 있다고 사우스 캐롤라이나주의 린제이 그레이엄(Graham) 공화당 상원의원이 위협했다. 그는 한국을 겨냥하여 "김정은의 북한이 동계올림픽에 참가하도록 허용하면 지구상에서 가장 불법적인 정권에 합법성을 부여 할 것"이라며, "나는 한국의 이 부조리한 서막을 거부하고, 북한이 동계 올림픽에 간다면 우리는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고 확신한다."고 말했다.

어쩌면 평양이 가장 기다리는 말들이 이렇게도 빨리 나왔다는 것은 그들의 계산이 어디까지 미치고 있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일 것이다. 평양의 신년사는 미국과 한국, 일본과 한국의 갈등, 그리고 남남갈등을 유발시킬 수 있는 그야말로 꽃놀이패를 흔들면서, 한반도 정세의 운전자 자리에 앉겠다는 그들의 구상을 그대로 실행해 갈 것임을 보여 주었다. 이런 와중에 우리가 그들보다 더 치밀하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이 고스란히 한반도의 운전자석을 그들에게 내어 주어야 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주변 국가들이 무시할 수 없는 핵무력을 가지고 있고, 우리는 주변을 두렵게 할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이 시점에서 정부의 치밀함은 우리의 생존과 자존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당당해야 하나 세밀해야 하고, 유연해야 하나 강직해야 한다. 나가고 물러섬이 절도가 있어야 하며, 귓속말과 고함을 구분해야 하며, 득과 실의 경중을 면밀히 가려야 한다. 지금 평양은 이런 면에서 우리보다는 몇 수 위에 있음을 당국자들은 명심해야 한다. 전쟁은 물량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정신력이며, 그 정신력은 지도자들에 대한 신뢰도에서 생기고 자라나는 것이다. 지금 문재인 정부의 지지도가 그나마 우리에게 위로가 되고 있으나, 이것이 지속되기 위해서는 여야와 진보와 보수를 아우르는 국론 통일을 위한 정부의 가일층 노력이 필요한 때이다.

지금까지 정부는 한미동맹을 위태롭게 하고, 대중 굴종외교, 대일 반감외교로 자충수를 둔 일이 많다. 이로 인해 북한의 보폭과 선택의 폭을 넓혀주어 스스로 위태롭게 했다. 비록 이것들이 국민의 높은 지지율로 그냥 묻혀 버렸지만 일정한 지지율 이하로 떨어지면 반드시 부메랑으로 되돌아오게 되어있다. 이 일들이 그냥 묻힐 것이라고 보면 서투름이요 아마추어적인 정치발상일 뿐이다.

더불어 정부의 강력한 외교력은 결집된 국력에서 나온다. 평양이 핵무력에 의존하여 한반도 운전자석을 노린다면, 우리 정부가 의지할 것은 전쟁불사의 국민적 의사결집이다. 누구도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전쟁할 수 있다는 결기가 전쟁을 막을 수 있다. 이 결기가 없이 마냥 평화를 읊어댄다면 평화를 얻는 대신 모욕과 조공과 수탈의 대상이 될 뿐이다. 그것은 노예의 평화이다. 그러나 우리는 노예가 되기를 윈치 않는다.

그리스도대학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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