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엄 성 택 목사

참 예측불가능하다는 평양의 행보가 어쩌면 필자의 생각과 이토록 똑 같이 가는 것일까? 평양의 신년사가 나온 직후 지인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떻게 필자가 이야기한 그대로 가고 있느냐고 말이다. 전화를 받고 웃을 수밖에 없었던 것은 무슨 예지 능력이나 초능력 탓이 아니고 삼척동자요 경험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든 말할 수 있는 일인데 그것을 두고 마치 예지 능력이 있는 것처럼 호들갑을 떠는 지인의 말투가 우스웠기 때문이다.

누가 뭐라고 해도 강력한 한미동맹에 기초한 군사적 우위에 북한은 결국 대화의 장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이 사실을 누구보다 더 잘알고 있는 이들이 평양에 모여 있고, 그들은 일찌감치 평창올림픽이 임박한 시기를 적기로 보고 있었다. 남한은 평창 올림픽 성공에 목메고 있고, 그 평창 리스크의 주역인 북한이 그 키를 쥐고 있다는 것을 그들은 그 값이 얼마나 비싸다는 것도 너무도 잘 알고 있었다. 워싱턴은 이런 남북의 거래를 묵인할 것이며, 다만 남한이 필요이상의 대가를 치르지 못하도록 압박하고 있다. 지금 삼국 거래의 핵심은 북한이 쥐고 있는 평창 리스크의 값에 대항 흥정이다.

평창행 열차가 아직 평양에 있다는 말이 무슨 말인가? 곧 평창 올림픽은 평양 올림픽이 되도고 하라는 말이다. 여기에 대응할 서울의 카드가 없다는 것을 그들은 너무도 잘 알고 있기에 적절한 협박을 배경으로 남한 민심을 끌만한 선정적 인물인 현송월 등을 내세워 고도의 협상을 진행하고 있다. 이에 남한 장관은 지레 겁을 먹고 한반도기 사용을 선창하고 나왔다. 북의 치밀한 계산과 여기에 대책없이 말려들고 있는 남측의 무대책이 안타까울 뿐이다. 이제부터는 평양이 하자는 대로 하게 되어 있다. 남측은 이를 절대로 거절하지 못한다. 결국 이 평창 올림픽이라는 옷을 입고 화려한 평양 올림픽을 우리는 보게 될 것이다.

여기에 하나 더 북한의 계산이 있다. 이것은 선정적 선동에 약한 남한 민심을 향한 관심과 애정 공세이다. 모르긴 몰라도 서울·강릉 공연에 합의한 북한 '삼지연 관현악단'(140명 규모)은 최고의 미녀들로 구성해 올 것이다. 그녀들은 무개념한 남한 남성들의 마음을 뒤흔들 것이고 가는 곳 마다 카메라 세례를 받으며 남한의 남심을 마음껏 조롱할 것이다. 기억하는가? 지난 날 KAL기 폭파 사건의 주범 김현희가 압송되던 날, 그의 외모에 보여준 우리 언론과 남한 남성들이 태도를 말이다.

북한이 남한에 선수단을 파견하는 것은 평창올림픽이 5번째다. 그때마다 북한은 '미녀 응원단'으로 불리는 대규모 응원단을 보내며 화제를 몰고 다녔다. 2002년 부산하계아시안게임에 보낸 288명의 응원단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중반의 빼어난 미모를 바탕으로 일사불란한 응원전으로 이목을 집중시켰다. 2003년 대구하계유니버시아드에도 여대생과 취주악단으로 이뤄진 303명의 미녀 응원단으로 큰 인기를 모았다. 2005년 인천아시아육상선수권대회에는 김정은의 부인이 된 이설주가 포함된 여고생과 여대생 124명으로 구성된 북한 응원단이 왔다. 13년 만에 모습을 드러낼 북한 응원단이 기다려온 이런 절호의 기회에 벌써부터 남한은 기대에 차서 술렁거리고 있다.

고작 10여명 남짓할 평창올림픽 북한 선수단에 140여명이라는 대규모 예술단을 필두로 태권도 시범단 등 남한의 민심을 잡고 뒤흔들만한 단체들이 온다. 지금 우리의 한류로 인해 북한이 고민하고 고전하는 것이 보여 주듯이, 문화적 침투는 정말 막아내기 힘든 것이다. 그런데 아예 공개적으로 한반도기를 앞세워 이 땅에서 펼칠 미녀 예술단의 화려한 공연이 가지고 올 무서운 결과에 대해 고민하지 않을 수 없다. 무엇보다 정부의 대응도 대응이거니와 핵무력의 완성을 외치며 우리의 생존을 근본적으로 위협하는 이 위기의 시점에 지난번 미인 공세에서처럼 넋을 놓고 당함으로 평창 올림픽을 평양 올림픽 축제로 바뀌는 일이 없기를 당부하는 바이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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