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일락 꽃

꽃은 진종일 비에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빗방울 무게도 가누기 힘들어
출렁 허리가 휘는 꽃의 오후

꽃은 하루 종일 비에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빗물에 연보라 여린 빛이
창백하게 흘러내릴 듯 순한 얼굴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
꽃은 젖어도 빛깔은 지워지지 않는다

<지하철 2호선 선릉역 플래트홈 6-3  스크린 유리창에서>

▲ 정 재 영 장로
시를 읽는다는 것은 의도적으로 문자 속에 감추어둔 뜻을 찾는 일이다. 감추어둔 뜻이라는 말은 은폐된 뜻 즉 은유나 상징의 의미를 발견하는 일로, 언어의 보물찾기쯤 된다. 각각의 눈으로 다양한 종류의 보물을 찾아내는 일이다.

이 작품은 꽃, 비(빗방울), 오후, 향기, 빛깔, 얼굴이라는 명사들이 나온다. 이 단어가 가지는 의미망 속에서 젖은 꽃을 상상하는 것이다. 꽃이 젖지도 않고 지워지지도 않는 향기와 빛깔이 자연현상만을 지시하고자 시를 썼다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과학진술어에 불과하다. 그러나 시는 언어의 일차적인 의미를 넘어선다는 상호 약속이 있음을 가질 필요가 있다.

꽃이란 지고의 아름다움이다. 미적 최고 수준과 본질의 의미다. 인간의 품성을 대입한다면 아름다운 인격이며, 예술작품으로 생각한다면 가장 완벽한 미학성의 작품일 것임에 틀림없다.

비(빗방울)는 꽃 주위의 환경적 요소다. 밝은 태양 아래 꽃과 달리, 비 오는 날의 정경을 통해 특이한 날로 환경을 설정해 두었다. 그 목적과 이유는 사회의 암울한 환경을 말하려 함이다. 어떤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향기와 빛깔로 꽃의 진정한 존재 의미를 보여줌이다. 꽃의 아름다움이란 어떤 경우에도 변치 않음에 있다.
오후라는 말은 시대상을 말하는 것으로, 종말론적 시대담론을 의미한다. 어떤 어려운 시대적 상황에서도 변치 않는 존재론적 목적을 감당하고 있는 소명의식을 라일락꽃에 비유한 것이다. 즉 인간의 꽃 같은 자세를 말하려는 것이다. 작품 안에 ‘순한 얼굴’로 의인화 시킨 것을 보면 라일락으로 말하고자하는 그 은유의 의도를 금방 깨닫게 해준다.

좋은 작품이란 이처럼 설명이 아닌 은폐된 의미로 전달한다. 그 일은 보물찾기처럼 독자가 언어 의미를 발견하여 깨달음의 감동을 받고 자신을 돌아보는 것인데, 그런 문학목적론을 순수한 통징(엄징)이라 말한다.

전 한국기독교시인협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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