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7월-8월 루터와 칼쉬타트를 옹호하기 위해서 필립 멜랑히톤이 토론내용을 출판.
에크는 루터가 이단이라고 공언하면서, 파리와 에르푸르트 대학교 교수진들에게 자신의 입장을 옹호해달라고 호소함. 루터가 주장하는 것들이 위험하다는 내용으로 17개 조항들을 출판함.

8월 30일 독일 콜론 대학교에서 루터를 이단으로 정죄함

10월초 루터가 『고해성사에 관하여』를 설교하고, 출판함. 이로 인해서 로마가톨릭의 성례주의가 왜곡되었음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음.

11월7일 루터가 루뱅대학교에 의해서 정죄됨

11월 9일 루터가 「세례의 성례에 관하여」를 설교함.

12월 삭소니의 절반되는 지역을 통치하던 공작은 루터의 설교 출판물을 배포 금지시킴.
루터는 점차 자신의 논쟁과 토론들이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음을 인식함. “이런 고생들은 전혀 나로 하여금 겁을 나게 하거나 위축시키지 못하였다. 오히려 이것들은 나로 하여금 믿을 수 없는 기운을 북돋아주어서 거친 항해를 해나가도록 내 가슴에 힘을 가득 불어넣었다.... 그들이 더욱 권세 있게 일어나서 나를 대적하면 할수록, 나는 더 확실하게 그들을 비웃어 줄 것이다. 네게는 결코 두려움이란 없다.”

1520년 1월9일 로마에서 루터에 대한 심의가 재론됨
루터는 독일어로 된 설교집, 「파문권에 대하여」를 출판함. 그 당시 파문권의 오용과 남용사례들을 지적함.

2월 1일 교황 레오 10세가 루터의 저술을 심의할 첫 번째 위원회를 지명함

2월 11일 교황이 루터의 문제들을 파헤치라는 두 번째 임무를 지명함

2월 루터가 교황권의 권위가 거짓됨을 밝히기 위해서, 로렌조 발라가 쓴「콘스탄틴 대왕의 헌정서」를 검토함.

3월 에크가 로마에 도착하여, 루터에 대한 교황의 파문장 내용 중에서 중요한 부분들을 만들어 내는데 참여함.

3월 26일 루터가 루뱅대학교와 콜론 대학교에서 정죄문을 발표한 것에 대해서 반박함.

4월 교황이 루터를 파문하는 문서 작성에 세 번째 위원회를 임명함. 에크가 위원 중의 한사람으로 임명됨

5-6월 루터가 독일어로 『선행에 대하여』를 출판함. 모든 성례들과 예식들은 구원에 이르는 공로가 될 수 없음을 밝힘. 참된 선행은 하나님의 명령을 지키는 행위일 뿐이다. 이 책은 선제후 프리드리히의동, 삭소니의 공작에게 헌정됨

5월 루터가 독일 평신도들을 위한 소책자를 출판함; (A Short Form of the Ten Commandment, A Short Form of the Creed and A Short Form of the Lord’s Prayers.) 이 책자는 수없이 많이 인쇄되어졌는데, 평신도 교육 서로서 개신교의 예배모범을 세우는데 크게 영향을 끼침.

5월20일 로마 교황청에서 선제후 프리드리히에게 최후 통첩서를 보냄.

6월 루터가 독일어로 『로마에 있는 교황권』을 출판. 로마 교황이 신적인 권위를 지니고 있다는 주장을 신랄하게 비판함.

6월15일 교황청에서 루터를 반동분자라고 (Exsurge Domine)을 공포하다.

삭소니에서 회개하는 문서를 60일 안에 출판하지 않으면, 파문을 당할 것이라고 위협하다. 이틀 후, 이 문서를 독일에 공표하는 일을 에크와 제롬 엘리 안더가 책임지도록 발표됨.

8월 18일 루터가 『독일귀족들에게 드리는 편지』를 출판함.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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