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집과 차, 내 딸까지도 버려두고 갑니다. 사랑하는 아이를 잔해에서 미처 꺼내지 못했어요."

시리아 동구타에서 민간인 수 만명이 정부군의 폭격을 피해 줄을 이어 탈출을 시작했다. 이 말은 피난길에 오른 시리아의 한 민간인이 정부군의 폭격으로 무너진 건물더미에 딸을 그대로 놔두고, 떠나는 자신의 심경을 밝힌 것이다. 한마디로 전쟁의 잔혹사를 그대로 말하는 것이기도 하다. 전쟁은 약한 자들을 희생시키며, 독재자의 목적을 달성시킨다. 때문에 전쟁은 일어나서도 안 되고, 일으켜서도 안 된다.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 봉쇄는 집요했다. 무려 5년간 인구와 물자 이동을 통제했다. 하지만 마침내 생지옥을 벗어난 주민들인데도 발걸음은 가볍지 않았다. 집과 차, 그리고 가족까지 버려두고, 탈출해야만 하는 주민들의 삶은 한마디로 참담하다. 이들을 향한 세계의 시선은 안타까워하면서도, 전쟁이 길어지면서 남의 일이 되어버렸다. 이들은 보다 낳은 삶을 위해 지중해를 건너다가 수장이 되기도 한다.
2015년 터키 보드룸 해변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시리아 난민 에이란 쿠르디(3살)는 전쟁을 피해 보다 나은 삶을 찾아가는 난민들의 참혹한 상황을 고스란히 세계에 알리는 사건이었다. 세계 언론은 싸늘한 시신으로 발견된 쿠르디에게 집중했다.

이로부터 3년이 지난 오늘도 시리아의 내전은 계속되고 있다. 그동안 많은 아이들이 전쟁의 희생물이 되어 죽임을 당했다. 그리고 부상을 입었다. 죽임당한 아이들의 주검은 폐허의 잿더미에서 발견되고 있다. 빨간 티셔츠와 반바지 차림의 쿠르디 시신은 엎드린 채 얼굴을 모래에 묻는 상태였다. 밀려오는 파도는 쉬지 않고, 그의 시신을 적셨다. 세계 언론을 통해 보도되는 그의 모습은 인도주의적 해시태그와 세계 모든 사람들로부터 공분을 일으켰다. 이들 또한 우리의 이웃이며, 하나님의 피조물이다. 함께 살아가야 할 이웃이다.

국민들을 지켜주어야 할 정부군의 무차별적인 공격, 국민들을 인질로 잡고 정부군에 맞서는 반란군의 모습은, 인간이라고 하기보다는 괴물이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맞는 말인 것 같다. 15일(현지시간) AFP통신과 워싱턴포스트(WP) 등에 따르면, 이날 하루에만 주민 1만2000여명이 동구타에서 정부군 관할지로 이동했다. 동구타는 시리아 반군의 최후 거점이자 수도 다마스쿠스 교외다. 40만 인구가 거주하는 것으로 유엔은 보고 있다. 그러나 정부군이 반군 제거를 위해 도시를 포위하면서 식량과 의약품, 연료 등 턱없이 부족하다.

이날 봇짐과 가방을 들쳐 맨 주민들이 모래 날리는 길을 터벅터벅 걸어갔다. 비닐봉지에는 옷가지가 담겼고 서류가방과 양탄자로 가득찬 카트도 등장했다. 아이를 품에 안은 여성들도 많았다. 짐을 트럭에 실은 하니야 홈스(30)는 "우리는 지하실에 너무나도 오래 갇혀 지냈다. 신께 감사한다. 우리는 떠나게 돼 너무나도 기쁘다"고 말했다. 하니야는 한참을 굶은 탓에 딸에게 줄 젖이 나오지 않는다고 말했다. 떠나는 이들은 마음이 무겁다. 동구타는 주요 거점을 지키려는 반군과 이를 빼앗으려는 정부군의 교전이 아직까지도 심각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새벽과 전날 밤까지만 해도 함무리예 마을에서는 정부군의 엄청난 공습이 가해졌다. 이를 피하기 위해 갓난 아들을 가슴에 품은 채 뛰쳐 나온 마리암(20)은 "오전 7시에 출발했는데 지금까지도 걷고 있다"고 말했다. 이스마일(46)은 자녀 5명의 손을 잡고 마을을 떠났다. 하지만 나머지 딸 1명은 그의 곁에 없다. 그는 "집과 차를 버렸다. 심지어 내 딸을 잔해 속에 버려두고 왔다"며 "그 아이를 미처 꺼낼 수 없었다"고 슬퍼했다. 6.25 한국전쟁을 경험한 우리는, 아니 분단된 상태에서 전쟁의 위협을 느끼며 살아가는 대한민국의 국민들은 시리아의 내전이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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