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 보 연 교수

전체 혼인 중 재혼의 비중이 20%를 넘었다. 동거가정까지 합치면 이보다 훨씬 많다. 이 과정에서 겪는 아이들의 정신적인 학대와 육체적인 학대는 매우 심각하다. 그것은 아이들이 새 아빠 또는 새엄마와 함께 화목한 가정 또는 행복한 가정을 위해서 참아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항상 정신적 스트레스는 물론, 심할 경우 부모로부터 육체적인 학대를 받기도 한다.

얼마 전 인천에서 일어나 엄마와 새아빠, 그리고 새엄마 친구가 가담해 딸을 구타해 죽음에 이르게 한 사건과 전주의 고준희 양의 사건은 오늘 재혼한 가정의 단면을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그렇다고 재혼 가정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재혼한 가정에서도 아이들이 사람대접을 받으며, 살아가는 경우는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많은 재혼가정의 아이들이 새 가족과의 갈등으로 정신적, 육체적 고통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폭행이나 폭언만이 학대는 아니다. 어린 자녀에게는 무관심이나 방임 또한 지울 수 없는 상처이다. 부모 중 한쪽만 함께 사는 이혼 가정이나, 한 부모 가정과 달리 온전한 가족의 형태를 갖춘 '재혼 가정'은 보통의 친부모 가정과 차이가 없기 때문에 아이들의 정신적, 육체적 고통이 잘 드러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의 혼인 건수는 26만445건, 2011년 32만9087건 이후 6년동안 감소세를 보였다.

10년 전인 2008년 32만7715건과 비교하면 19.3%나 감소했다. 인구 1000명당 혼인건수(조(粗)혼인율)는 5.2건으로 1970년 통계 작성을 시작한 이후 최저였다. 혼인 자체가 줄면서 이혼 또한 줄어들고 있다. 2008년 11만6535건에서 2017년 10만6032건으로 9.0% 줄었다. 조이혼율은 2.1건으로 이 역시 1997년(2.0건) 이후 최저였다.

재혼의 감소 폭은 더 커 10년 전 7만7587건에서 지난해 5만7791건으로 25.5%나 급감했다. 전체 혼인 중 재혼이 차지하는 비중은 21.9%였다. 2005년 전국 혼인 31만4304건 가운데 재혼이 25.3%(7만9447건)을 기록했을 당시보다는 소폭 줄었지만 여전히 우리 주변 다섯 집 중 한 집은 재혼 가정인 셈이다. 하지만 법적으로 혼인을 하지 않고 동거만 하는 경우까지 고려하면 실질적인 재혼 가정은 이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산된다.

문제는 이렇게 부모의 이혼과 재혼 과정에서 기존 가족이 해체되고 새로운 가족 관계를 맺게 되는 자녀들의 정신적인 문제는 심각하다. 부모가 자녀에게 이같은 변화에 대해 충분히 이해를 구하지 않거나, 새로운 부모가 빨리 친밀감을 쌓고 싶어 과하게 통제에 나설 경우, 반대로 아이들을 방치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더욱 커진다. 폭언이나, 폭행만이 학대가 아니다. 기존의 가족해체와 새로운 가족관계를 형성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외, 정신적 스트레스도 학대이다. 고준희 양의 사건은 이를 대변해 주고도 남는다.

실제 재혼 가정의 사례를 조사한 연구에서도 자녀들은 새 부모나 의붓 형제ㆍ자매 간의 갈등으로 정신적ㆍ육체적ㆍ경제적 고통을 호소한다. 하지만 상당 수가 가정이라는 울타리 내에 숨거나 숨겨진다. 이는 다시 가정 내 아동학대와 자살, 가출, 학교폭력, 청소년 범죄 등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가정의 문제를 넘어 사회문제화 되고 있다.

새 부모가 자녀에게 폭력이나 폭언을 행사하더라도 자녀는 친부모가 행복하기를 바라는 마음에 참고 견딘다. 반대로 좋은 새부모를 만난 경우에도 또 다른 갈등이 생겨난다. '아빠가 새엄마에게 잘 하는 것처럼 진작에 친엄마에게 잘했더라면 이혼하지 않았을텐데…'와 같은 마음이 싹트면, 새 부모에 대해 냉담하거나 냉소적이 되기 쉽고, 스스로 인식하지 못하더라도 지속적인 스트레스를 받게 된다. 모든 아동은 어떠한 이유로도 차별받지 않고 동등한 환경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사회적 안전망 내에서 보호받아야 한다. 그것은 인간의 가치와 존엄성이 창조때부터 뒤따르기 때문이다.

굿-패밀리 대표/ 개신대 상담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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