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어린아이처럼 자기를 개방해 상처받은 이웃을 받아들이자”가정의 달 특집(1)-하나님의 나라는 어린이들의 것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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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04  08:3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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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적 자유경제체제 아래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두드러지게 나타나면서 가난이 대물림되고 있다. 자본주의적 경제체제는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지를 않고, 힘겹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외면하고 있다. 또한 나의 중심을 내 가정 안에 가두면서 해체되는 가정이 늘어나고 있다. 이로 인해 이혼율이 높아지고, 별거가정이 늘면서 ‘가정해체’라는 극단적인 모습들이 여기저기서 나타나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이다. 5일 어린이날, 8일 어버이날, 15일 스승의 날, 20일 성인식, 21일 부부의 날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선물이다. 가정은 창조적 섭리이다. 이런 가정들이 해체되고 있다. 오늘날 가정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한다. 증평 모자사건, 송파 세 모녀 사건은 나 자신을 내안에 가두어 놓은 결과가 빚은 참사이다. 여기에는 공권력마저도 사랑을 공권력에 가두어 버렸다. 세계는 지금 전쟁과 갈등으로 인해 난민들이 생기고, 하나님의 창조섭리인 가정들이 해체되고 있다. 또한 힘없는 아이들과 여성들이 죽임을 당하고 있다. 일부 종교인들의 성추행과 성폭력에 노출되면서, 교회와 가정은 벼랑 끝으로 내몰리고 있다.

   
 
이웃을 향한 '사랑과 배려'

남극의 펭귄들이 매서운 바람이 몰아치는 혹한 속에서 견딜 수 있는 것은 서로에 대한 사랑과 배려가 있는 공동체를 유지하기 때문이다. 맨 앞에 서서 바람막이 역할을 하던 펭귄이 지치면 뒤로 물러서고 그 다음 펭귄이 다시 바람막이가 되어준다. 이 모습 속에서 나의 중심을 하나님에게로 옮기고, 이웃과 더불어 사는 사랑과 배려를 엿볼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사회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동정만 있을 뿐, 진정한 사랑과 배려, 그리고 관심은 펭귄들만큼 진하지 않다. 팽귄은 자신의 마음을 자신에게 두지를 않고, 이웃에게 두고 살아간다.

나의 중심을 하나님께 두고, 내 마음을 열어 이웃과 더불어 건강한 사회와 교회, 그리고 가정을 건강하게 만들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은 자본주의적 자유경제체제에 길들여져 있다. 한마디로 기독교를 비롯한 모든 종교단체와 사회단체들은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배려와 사랑이 모자라다. 오히려 이들의 것을 빼앗아 자신의 욕심을 채운다.

예수님은 한 율법교사가 “무엇을 행하여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가”라고 물었을 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했다. 성서는 분명하게 말하고 있다. 지식이 많거나, 부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그리고 어린 아이와 같이 마음을 열어야만 생명의 말씀을 들을 수 있고, 천국은 이들의 것이라고 선언했다.

하나님 사랑의 계명에서 나의 중심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로 옮겨진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고 한 것은 나를 활짝 열어서 나의 중심을 하나님에게로 옮겨 놓으라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 한국교회는 가진 것이 너무 많아 나의 중심이 하나님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나를 향해 있다.

그것은 이웃사랑의 계명도 마찬가지이다.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는 말도 나 자신을 개방하고, 나의 중심을 이웃에게 두라는 것이다. 내가 내 몸을 사랑하듯이 내 이웃을 내 몸이듯이 사랑하라는 것이다. 중심이 나에게 향해 있을 때 하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이웃을 알아보지를 못한다. 사랑이 무엇인지도 모른다. 예수님께서 어린 아이와 같아야 한다고 말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다.

통째로 주고받은 어린아이

어린아이는 마음을 통째로 주고받는다. 자기중심을 주고받는다. 어린아이는 어른들과 다르게 위선이 없다. 위선자는 자기위주로 사는 사람이기 때문에 하나님과 더불어 이웃을 사랑할 수도 없고, 사랑 받을 수도 없다. 인간은 하나님에게 중심을 두고, 이웃과 더불어 살도록 창조되었다. 인간은 자기에게 중심을 두고 살도록 창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인간들이 자기 안에 중심을 두고 살면,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없다. 하나님 안에서 이웃과 더불어 살 때, 인간은 참된 생명을 누릴 수 있다. 살맛나는 세상이 이 땅에서 실현되는 것이다.

예수님의 선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 나오는 제사장과 레위인은 종교인으로서 이웃을 사랑하고, 행동했어야 했다. 그런데 레위인과 제사장은 나를 중심으로 생각하고 행동했다. 나 혼자 살려고 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창조세계는 삭막해지고. 차가와지는 것이다. 한마디로 레위인과 제사장의 행동은 자기 본위의 삶을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다. 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은 레위인들이 그렇게도 싫어하며, 배척했던 사마리아인이었다.

모든 범죄와 인간 소외는 나 혼자 살려고 하는데서 발생한다. 이 땅에서 일어나는 모든 자살도 가난해서가 아니다. 소외되어서가 아니다. 이웃과의 소통이 단절된 데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인간 모두가 나 혼자만 살려는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결과이다. 전쟁도 나를 보위로 사는데서 일어난다. 이 세상은 나와 너만이 사는 곳이 아니다. 나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아웃과 함께 하나님의 나라를 실현하는 곳이다. 나와 너만을 위해서 사는 세상 속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제3자는 얼마나 소외되고, 희생을 당하겠는가(?)

그렇다 나를 중심으로 사는 길은 너와 나, 그리고 제3자를 죽음으로 이끄는 세상이 된다. 나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나의 중심을 이웃과 나눌 때 이 세상은 생명이 지배하게 된다. 예수님은 행동으로, 삶으로, 그리고 십자가의 죽음으로 우리에게 가르쳐 주셨다. 그리스도는 남을 위한 존재가 됨으로서 친히 생명의 길을 열어주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을 열고 가정을 개방해서 이 땅에서 공권력과 부모, 그리고 이웃에 의해 상처받은 사람, 어린아이들을 받아들여야 한다.

예수님은 영원한 생명이 율법지식이나, 단순한 믿음에 있지 않다고 했다. 사랑의 행위에 있다고 했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에서 강도는 누구이며, 상처 입은 자는 누구인가. 우리를 실어 날으니라고 하루 서너 시간 밖에 잠을 못자면서 박봉에 시달리는 운전사, 알바, 40도가 오르내리는 한증막에서 일하는 노동자, 우리가 먹는 쌀을 생산하는 농민, 돈 때문에 도시인들의 배설구가 되어버린 창녀와 술집 잡부, 이들이 이웃에 의해 상처 입은 사람이 아닌가.

또 부모에 의해서 버림받은 아이, 소수자나, 권력자를 보호하는데 만들어진 법에 의해서 갇힌자, 세월호 사건으로 인해 죽임당한 아이들의 부모와 가족, 처절하고 고통스러운 분단의 현장에서 희생당한 사람, 부모의 이탈로 인해 희생당한 아이, 증평 모자사건, 송파 3모자사건, 전쟁과 기아로 인해 유리방황하는 난민, 성폭행 및 성추행을 당한 힘없는 여성, 이들이 강도만나 사람들이 아닌가. 이들의 이웃은 누구이며, 강도는 누구인가. 가정의 달은 나만의 것이 아니다. 너와 제3자의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건강한 사회와 가정, 그리고 교회는 나를 개방해 강도만난 이웃을 받아드릴 때 가능하다.

강도는 누구이며 이웃은 누구인가?

강도는 누구인가. 바로 모순과 부조리로 가득한 이 사회를 형성하고, 지배하는 자들이 아닌가. 그들에게 상처를 주는 정책을 고집하는 정치인들, 그들을 혹사시키고, 갑질하는 재벌 또는 기업주, 이런 사회 구조가 오랫동안 유지되도록 기름칠 해 주는 지식인 및 언론, 그리고 이들의 주변에서 맴돌며, 부자들을 위해서 눈물 흘리는 종교인, 사랑해서 낳은 아이를 ‘교육’ 또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죽음으로 몰아넣는 비정한 부모, 가정을 파괴하면서 부모에게 몹쓸 짓을 하는 자녀, 강도에게 강탈당하는 것을 보고서도 외면하는 사람들이 강도가 아닌가.

이들이 바로 제사장이고, 레위인이다. 강도들이 상처를 입히고, 이웃의 마지막 남은 것을 목격하고서도, 외면하는 우리들이 바로 강도가 아닌가. 그리스도의 고난의 십자가를 말하면서도 사랑의 행동을 하지 않는 내가 바로 위선적인 종교인이 아닌가. 위선적인 종교인은 ‘영적’이란 이름으로 여성교인들을 성추행 및 성폭행을 자행하고 있다. 이로 인해 가정이 파괴되고, 가족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아픔을 겪고 있다. 이들에게는 사랑도, 용서도 없다. 오직 자신만 있으며, 자신의 잘못을 피해자에게 덮어씌우기 일쑤다.

그렇다면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이웃과 더불어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이는 그리스도는 어디에 있는가. 맘몬과 바벨의 우상을 섬기며, 부자들의 눈물을 닫아주는 교회당에 있는가. 감상적이며, 추상적인 하늘에 있는가. 분열과 갈등을 일삼으며 자기중심에서 벗어나지를 못하는 전쟁광들에게 있는가. 이들은 하나님 중심을 잃어버리고, 고난과 고통을 당하는 이웃의 아픔을 외면한다. 십자가상에서 “엘리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나님 하나님 왜 나를 버리시나이까” 하며 외쳤던 그리스도는 지극히 적은 형제들 속에 있다고 하지 않았는가.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는 상처입고 쓰러진 강도 만난 자의 모습으로 오늘도 살아서 역사하고 계시지 않는가. 이 세상에서 죽임을 당한 세월호 희생자, 부모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아이들, 전쟁과 기아를 피해 지중해를 건너다가 죽임을 당한 시리아의 아이들, 이 세상에서 피와 땀과 눈물을 흘리면서도, 천대받는 자들이 바로 바로 피와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시나이까”하며 절규하면서, 십자가에서 모독을 당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지 않는가.

5월 가정의 달, 5일 어린이날을 맞아 죽임을 당한 아이들의 ‘한의 소리’, ‘피의 절규’는 하늘에 사무친다. 오늘도 정와 사랑, 그리고 평화를 약속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계속해서 자신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지 않고, 이웃과 더불어 살지를 못하는 사람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고 있다. 또 이들은 부활하신 예수님을 이런 형태로 십자가 형틀에 매달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을 자신만의 예수로 만들어 버렸다.

상처입고 쓰러진 자에게서 영원한 생명의 그리스도를 발견해야 한다. 내 자신의 문제와 가정의 일에만 집착하면 참 생명인 그리스도를 만날 수 없다. 밀폐된 자아 속에서, 밀폐된 가정의 울타리에만 집착하면, 참 생명인 그리스도는 없다. 나 자신을 열고, 나의 삶을 개방할 때, 상처받을 너를 발견하게 된다. 상처받은 너에게서 충만한 생명인 그리스도의 사랑을 발견할 수 있다. 나의 일상적인 일에만 관심을 두면, 하나님의 큰 사랑, 충만한 생명을 모르게 된다.

자신의 문제로, 직장일로 바쁜 그리스도인들은 나만을 위해 그리고 내 가정만을 위해 켜 놓은 등불을 끄고 창문 밖을 바라보자. 불을 밝히고는 하늘의 별을 볼 수 없다. 내 안에 갇혀 있을 수밖에 없다. 불을 끄고, 내 마음의 중심을 하나님에게 두고, 이웃과 더불어 하늘의 별처럼 그리스도의 생명의 사랑을 경험하자. 그럼에도 인간들은 무게중심을 자기에게 둔 나머지 자신이 사랑해서 낳은 아이,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사항한 아이를 방치하거나, 버린다. 또 부모에 의해 죽임을 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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