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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의 달 특집(2)-건강한 가정과 민족 위한 광야 40년의 교육과 훈련과정주체성을 가진 새 나라의 평등한 교육 연대성 요구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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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4  13:36: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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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등한 새 나라위한 연대성 교육

오늘 그 어느 때보다도 가정과 교회교육의 중요성이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성경은 건강한 가정과 공동체, 민족을 위한 교육과 훈련과정을 광야 40년의 생활을 통해 잘 설명하고 있다. 제5계명부터 10계명까지는 이집트의 파라오 밑에서 고난을 당한 떠돌이 히브리민족에게 더 이상 이집트에서의 종살이에서 고난을 당한 부모와 여성들의 아픔이 같은 히브리민족끼리 일어나서는 안 된다는 경고이다.

고아가 집이 없어서 불쌍한 것은 절대 아니다. 가정에서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해 이웃을 사랑할 줄을 몰라서 불쌍한 것이다. 그래서 부모가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나, 부모가 없는 아이들 모두가 평등한 새 나라를 위한 교육의 연대성이 절대로 필요한 것이다. 이 땅의 모든 아이들은 교육을 받을 의무와 권리가 있다. 그럼에도 물질의 풍요 속에서 많은 아이들이 평등한 새 나라를 위한 교육의 연대성에서 벗어나 있다. 개인 중심의 교육에 치우친 나머지 교육도 ‘부익부’, ‘빈익빈’현상이 일어나고 있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의 많은 국가들이 아이들에게 새로운 나라에 대한 용기를 북돋아 주는 주체적 교육과 평등한 새 나라를 위한 교육의 연대성을 강조하고 있는 이스라엘 민족의 교육방법을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대부분의 현대가정 책장에는 이스라엘 민족의 가정교육 방법인 <탈무드> 하나쯤은 꽂혀 있다.

이스라엘 민족은 이집트 파라오의 억압과 노예에서 해방되고서도, 며칠이면 들어갈 수 있는 하나님이 약속한 땅,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지를 못했다. 40년 동안 광야에서 떠돌이 생활을 해야만 했다. 이스라엘 민족이 40년 동안 광야를 헤맬 수밖에 없었던 것은 억눌려 살았던 사람들의 훈련과 교육과정이었다. 한마디로 주체성과 연대성을 갖게 하는 훈련이었다고 할 수 있다. 파라오 압제에서 해방된 히브리인들은 주체적인 용기가 없었다. 가로 막힌 산을 무너트릴 기백도 없었다. 적들의 힘을 과대평가하고, 자신들을 과소평가하는 노예근성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서로 단합해서 위험을 무릎 쓰고 공동의 목표, 자유롭고 평등한 새 나라를 이루자는 생각보다는 제 한 목숨, 제 아내와 자식을 아끼려는 마음이 앞섰다. 용기 있는 연대의식보다 개인의 생존과 가족에 더 집착하는 노예근성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하나님을 중심으로 이웃과 더불어 살아가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이들에게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그리고 평화공동체를 이루려는 의지가 전혀 없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을 향해 준엄한 선언을 했다.

“너희들은 죽어 시체가 되어 이 광야에 쓰러지고 말리라 그리고 너희의 자식들은 너희의 ‘배신 죄’를 짊어지고 너희의 시체가 썩어 없어질 때까지 40년 동안 광야에서 헤매야 한다”

히브리인들의 노예근성은 한마디로 패배자로서, 좌절자로서 자기중심적인 사고에서 벗어나지를 못했다. 하나님께서 약속한 가나안 땅에 곧바로 들어갈 수 없었다. 하나님은 히브리인들과 함께 광야에서 다툼과 갈등을 계속해서 벌였다. 이스라엘 백성은 어려운 일이 닥칠 때마다 불평불만을 드러내며, 이집트 파라오 밑으로 다시 들어가겠다고 아우성을 쳤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을 들으시고, 어떤 때는 그들을 다독거리고, 어떤 때는 토라지면서도 그들을 버리지 않으셨다. 이들의 지도자였던 모세가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를 못한 것은, 자신을 믿고 따랐던 히브리민족을 믿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스라엘 백성의 40년 동안 광야에서의 훈련과 교육과정 회복해야

용기를 주는 주체적 교육 절실

이스라엘 민족의 고난은 어찌 보면 대한민국 백성들의 역사와 비슷한 점이 많다. 대한민국의 백성들은 일제 36년의 식민지 생활을 거치면서, 이스라엘 민족과 똑같은 고통과 좌절을 겪었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일본제국주의에 쉽게 동화되고, 일본의 국가주의에 굴복했다. 청년들은 일본군에 입대해 독립군과 전투를 벌였으며, 여성들은 정신대로 끌려가 모진 고난을 당했다. 그리고 조선의 지식인과 종교지도자들은 조선의 청년들을 사지로 몰아넣는데 앞장섰다. 오늘 한국기독교를 비롯한 종교계가 국민적 지지를 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한국기독교는 끝내 하나님을 배신하는 배교행위도 서슴지 않았다.

이 같은 범죄는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그리고 평화공동체를 교육하고, 훈련해야 할 한국교회는, 헌금을 많이 내고,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하고, 하나님의 영(성령)을 오도하며, 가식적인 기도를 하는 교인들이 마치 참 그리스도인양, 교육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은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가정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고 있다. 오늘 “기독교인들처럼 개인 이기주의와 집단이기주의에 매몰되어 있다”는 말이 그냥 나온 것은 아니다. 하나님 중심의 이웃과 더불어 평등한 공동체 창조와 거리가 멀어졌기 때문이다.

선교 초기 조선의 백성에게 마지막 희망으로 떠올랐던 기독교가 오늘날 자신의 등에는 짐을 짓지 않고, 교회건물 위에 십자가탑을 높이는 데에만 급급하고 있다. 이것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그리고 평화를 위해서 교육하는 대신, 하나님의 영, 성령의 이름을 내세워 맘몬과 바벨의 상징인 헌금만을 강요하며, 이것이 신앙생활의 척도, 믿음의 척도로 교육하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그리고 영적이란 이름으로 교인들을 성폭행 및 성추행하는 목회자들의 모습은 추악하다. 이는 교인들의 가정을 파괴하는 결과로 이어지고 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교회의 성장을 기대하는 것 자체가 큰 잘못이다. 한국교회 교육의 핵심이 헌금에 맞추어지면서, 교인들은 교회를 떠나기 시작했고, 교인들의 가정은 신앙의 가정이라고 보기보다도, 범죄자들의 소굴로 변질되어 가고 있다. 오늘 사회 곳곳에서 일어나는 범죄현장의 중심에 교인들이 있다는 사실만 보아도, 한국교회 교육의 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를 쉽게 알 수 있다. 이러한 모습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40년 동안 훈련과 교육과정과는 사뭇 다르다.

교회는 사기꾼들의 비자금을 세탁하는 장소, 아니 목사의 비자금을 형성하는 잘못된 신앙공동체로 타락하고 있다.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그리고 평화의 교육은 한마디로 실종되었다. 목회자의 윤리적, 도덕적 타락은 제쳐 두고라도, 절도를 비롯한 목회자의 보이스피싱 연루, 국가를 상대로 사기, 전철 안에서의 여성을 상대로 한 ‘몰카’ 범죄 및 성추행, 목회자가 가난한 목회자와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사기 등등의 범죄가 끊이지를 않고 있다. 심지어 존속살인도 교인들의 가정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문제가 있다.

정의와 사랑, 평화공동체 실현

더 큰 문제는 이러한 타락한 목회자의 범죄가 각종 언론을 통해 세상에 알려지면서, 한국기독교가 더 이상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지 못하고 있다는데 있다. 특히 한국교회는 국민들의 눈높이를 따라잡지를 못하고 있는 것도, 교회의 교육과 훈련과정이 맘몬에 치우쳐 있기 때문이다. 교인들에게 맘몬을 교육하는 한 교회는 희망 없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교회를 살려보겠다는 심정으로 모세와 같은 교회지도자를 그리워하지 않을 수 없다.

모세는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서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감당한 지도자였다. 구약성서는 모세를 가장 성숙한 존재로 기록하고 있다. 에집트의 노예생활로 돌아가겠다고 아우성을 치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는 꾸짖기도 하고, 어르기도 하고, 다독거리기도 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과 싸우다가 지친 하나님이 그들과 관계를 끊어버리겠다고 토라지면, 애걸복걸하여 하나님의 마음을 돌려놓았다.

이스라엘 민족은 하루 15시간씩 중노동에 시달리고,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부족했다. 잠자리도 편치 않았다. 지배자들의 학대를 받으며 살자니 노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변덕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진정 하나님이 그들의 하나님이라면, 그들을 해방시키는 하나님이라면, 그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들과 함께 씨름하는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은 에집트의 종살이를 기억하고, 더 이상 이러한 일이 없어야 한다며, 이스라엘 백성에게 10계명을 주셨다. 여기에는 하나님 중심의 이웃과 더불어 정의와 사랑, 평등의 공동체를 이루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된 나라의 참된 주인으로 교육시켰다. 이것은 분명 피압박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교육과 훈련과정이다. 역사의 현실이 냉엄하듯이 하나님의 교육과 훈련도 냉엄했다. 광야에서의 교육과 훈련은 모든 것을 정화하고, 새롭게 형성하는 창조의 현장이었다. 광야, 아니 빈들은 텅 비어 있는 곳이기 때문에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래서 음란과 물질주의에 빠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해 호세아는 광야로 나가자고 호소했다. 한마디로 광야로 나가 하나님과 다시 시작하자는 것이다.

세례요한도 오랜 침묵을 깨고 새 시대를 열었다. 예수님도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고 악마들과 씨름한 이후 보잘 것 없는 사람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 운동을 시작했다.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기 때문에 욕심을 부릴 것도, 빼앗을 것도, 빼앗길 것도 없다. 이스라엘 백성은 인간의 끝없는 탐욕과 허영심이 허망하다는 것을 광야에서 깨달은 것이다. 또 광야는 지배자들이 지배욕과 탐욕을 버리고, 인간의 본래적인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곳이다.

박재순 교수는 자신의 저서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1988년, 도서출판 천지)에서 “광야는 뒤틀린 역사를 바로잡고, 부패한 사회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곳이다.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고 변혁의 힘이 생기는 곳이다”면서, “오늘날 광야는 돈과 권력으로부터 소외된 곳이다. 누구나 자기 마음속에 광야를 열어 놓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약속된 나라의 참된 교육

그렇다. 성서적 교육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을 배신하여 멸망할 수밖에 없었을 때마다 모세는 하나님께 간구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했다. 박재순 교수가 물량주의와 맘몬주의에 빠져 범죄를 저지르는 한국기독교인들을 향해 광야로 돌아가 교육과 훈련을 받아야 한다고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따라서 한국교회와 교인들의 가정은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 그리고 평화, 평등공동체를 교육해야 한다. 그래야만 한국교회가 잃어버린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이 민족과 가정에 세울 수 있다.

한국기독교의 지도자들이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자연 간에 화해하는 방법, 역사 속에서 끊임없는 시행착
오를 겪더라도 노예적인 사고에서 벗어나 주체적인 교육과 패배의식에서 벗어나는 교육과 훈련에 모든 힘을 쏟아야 한다. 하나님이 살아 있는 한 이 땅의 그리스도인, 가난한 자, 소외된 자, 고난당하는 사람들은 어떤 강도 건널 수 있고, 어떤 산도 넘을 수 있다. 그리고 쓰러지더라도 죽지 않았으면 일어나야 한다. 또 여러 번 넘어지더라도 시체가 아니라면 일어나야 한다.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간에 맺은 십계명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교육하고 있다. 하나님에게 중심을 두고, 이웃과 더불어 정의와 사랑, 그리고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하라는 계약이다. 제1계명부터 사계명은 하나님 중심으로 살라는 계명이며, 5계명부터 10계명은 이웃과 더불어 정의와 사랑, 그리고 평등의 공동체를 실현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시고, 에집트 파라오의 압제 밑에서 이스라엘 민족을 해방시키셨다.

그리고 “나 외에는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했다. 하나님 중심의 교육과 훈련을 강조하신 것이다. 그리고 “네 부모를 공경하라”고 했다. 그리하면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네게 준 땅에서 생명이 길 것이라고 했다. 또 ‘살인하지 말라’, ‘간음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증거 하지 말라’, ‘네 이웃의 집을 타내지 말라’고 했다. 그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에집트에서 종살이하면서, 고통을 기억하라는 교육이다. 이스라엘 민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다. 십계명은 하나님의 명령이기에 그리스도인 모두는 이를 지키며,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평등의 공동체를 이 땅에서 이루어야 한다.

얼마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사랑했으면, 인간과 하나님 간에 계약을 맺어 이를 지키게 했겠는가. 하나님은 자신의 모습대로 창조한 피조물을 사랑하셨다. 자신과 맺은 계약을 지키지 않으면, 토라지면서도, 징계를 하시면서도, 가다가 멈추고 돌아서면 용서하지 않았던가. 그리고 다독거리며 다시는 자신과의 약속을 어기지 말라고 하지 않았던가. 그리스도인이라면, 하나과의 약속을 지키고, 정의로운 가정, 평화와 평등의 공동체를 이 땅에서 만들어야 하지 않겠는가.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다. 살아 있는 자의 하나님이다. 때문에 살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의 ‘삶의 현장’에 교회를 세우고, 광야 40년의 교육과 훈련과정을 재현해야 한다. 한마디로 정의와 사랑이 넘치는 새 나라를 향한 광야의 행진을 시작해야 한다. 이것만이 예수님께서 역사의 현장에서 당하신 고난의 길에 참여하는 것이며, 분단의 아픔을 겪고 있는 한민족 아니 세계민족이 사는 방법이다. 그래야만 범죄자의 소굴과 속박의 굴레에서 해방돼,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이 흘러넘치는 평등의 신앙공동체를 회복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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