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 태 영 목사

‘갑질’ 횡포를 겪은 사람이 얼마나 심각한 정신적 물적 피해를 입는지를 보여주는 사례가 있다. ‘땅콩회항’의 피해자로 수년 동안 외롭게 법정 투쟁을 하고 있는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의 인터뷰(2018. 4. 21., 경향신문). 땅콩회항 사건 직후 외상후 스트레스, 신경쇠약, 공황장애 진단을 받고 차라리 죽으려고 했을 때 당시 그의 큰누님이 갑상선암 말기였다. “2015년 1월에 수술날짜가 잡혀 있었는데, 제 사건이 터지자 저를 돌보기 위해 집에 와 계셨어요. 그런 누님이 죽음을 결심한 제가 새벽에 베란다 문을 연 채 서 있는 것을 보고 놀라 붙잡고 우셨어요. ‘말기 암 상황에서도 내가 너를 온전한 자리로 되돌려주고 싶어 애쓰는데 어떻게 네가 네 목숨을 쉽게 생각하느냐’면서요. 그때 같이 울면서 결심했어요. 죽을 결심까지 했으니 죽을 각오로 가보자고요. 사람들은 몰라요. 남의 이야기를 너무 쉽게 해요. 지금도 많이 아프지만 저는 더 정상인처럼 보이려 노력하고 있어요.”

‘갑질’ 문제가 끊임없이 돌출되는데도 사라지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갑질’을 개인적 일탈행위로만 치부하면 그 답이 보이지 않는다. ‘갑질’을 용인하는 우리 사회의 ‘갑질서식환경’이 가장 큰 문제이다. 역시 대한항공 박창민 사무장의 탄식이다. “약자에게 불공정하고 불합리한 사회구조에 울분을 느꼈어요. 심지어 2심 재판부와 대법원에서 조현아씨의 항로변경에 대해 무죄라며 면죄부를 줬잖아요. 권력층끼리 촘촘히 엮여 있고 서로 봐주는 것이라고 생각해요. 저는 23년간 대한항공에서 성실히 일했고 국민으로서도 충실했어요. 그럼에도 제가 공들여 살아왔던 시간들은 함부로 취급되고 빼앗겼어요. 반면에 저들은 돈과 권력이 있다는 이유로 손쉽게 모든 것을 회복했어요. 저는 국가에 대해서도 배신감을 느껴요.”

제 한 목숨 살자고 ‘갑질’을 엄호하는 충견들, 퇴임 후 대형 로펌에 가서 돈벼락 맞고 싶어 면죄부 주는 법관들, 정치자금 유혹에 입법을 미루다가 용두사미로 끝내는 정치인들, 광고비 잃을까봐 비판이 무디어진 언론들, 돈에 중독된 어용학자들, 한 푼이라도 후원금이 아쉬운 사회단체들, 유별나게 큰 부자를 좋아하는 종교인들 등이 바로 ‘갑질’하기 좋은 서식환경이다. 이들이 달라지지 않고는 ‘갑질’은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삼일교회 담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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