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 재 성 교수

루터가 제기한 많은 토론 주제들 중에서 신선하면서도 잊혀 지지 않는 주제가 “십자가의 신학”이라는 개념이다. 루터는 중세 스콜라주의 신학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하면서 이 개념을 제시했다. 1517년 9월 4일, 중세기를 거쳐 오면서 모든 사람들이 따랐던 토마스 아퀴나스의 신학체계가 크게 기여한 게 없다고 밝혔다. 특히 중세신학은 단순히 교회 안에서만 잘못된 것이 아니라, 전체 국가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정치적으로 연계되어 있었기에 사람들의 생활에 진정으로 도움을 주지 못했다고 말할 수 있다. 성직자들과 지배계급과 제왕들과 군주들을 위해서는 너그러운 신학체계였다.

루터는 1518년 4월, 『하이델베르크 논쟁』(The Heidelberg Disputation)에서 몇 가지 핵심 주제를 발표하였다. 이 논쟁에서 루터는 다소 생소한 논제를 제시하였다.

19항.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사건들을 마치 실제로 일어났다는 식으로 분명하게 보았다는 사람은 신학자라고 불릴 수 없는 사람이다(롬 1:20).
20항. 하지만, 신학자라고 불릴 수 있는 자격이 있는 사람은 고난과 십자가를 통해서 알려진 하나님의 나타내심과 드러내심을 이해하는 자이다.
21항. 영광의 신학은 악을 선하다고 말하고, 선을 악하다고 부른다. 십자가의 신학자 실제 있는 것만을 말한다.
22항. 그 지혜가 사람에게는 완전히 가려져 있고, 감춰져 있고, 이해할 수 없는 것 들이지만,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것들을 보는 것이다.


이들 네 가지 항목들이 루터의 신학의 핵심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마도 루터는 사도 바울이 고린도전서 1장에서 설명한 바를 요약하고 있다고 본다. 세상 지식과 세상 관원들이 자랑하는 것들을 하나님에 대해서 매우 어리석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무슨 방법으로 일하시는지에 대해서는 계시하신 것만을 받아들이고, 인간의 좁은 머리를 가지고 회의적인 생각을 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스콜라주의 신학자들의 문제점을 파헤친 말이다. 따라서 루터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만을 말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하나님의 계시가 자연에도 들어있고, 인간의 이성에도 있으며, 문화에도 있고, 여기저기에 있다는 식으로 늘어놓는 것을 반박한다. 루터에게는 엄격한 계시관이 있었다. 오직 성육신하시고, 육체와 저주의 순간까지 견디시는 중에서 갈보리 십자가 위에서 최고의 계시를 드러내신 하나님이다.

십자가의 신학은 매우 혁신적이며, 성경적인 전개이다. 신학적인 모든 용어들을 십자가의 빛 아래서 재조명하라고 촉구한 것이다. 말씀의 권능을 취라하는 말이다. 영광의 신학자들은 성경 속에서 오직 신적인 권능만을 읽으려 하면서, 이런 것들을 자신들에게 적용해서 성직자로서 하나님의 위대한 권능을 대행하는 자로서 군림하려 한다. 하나님의 권능은 십자가의 연약함 속에서 계시되었다. 왜냐하면 악한 권세자들의 손들과 지상의 타락한 권세자들이 눈에 보이는 패배를 안겨줬기 때문에, 예수님은 죽음의 멸망을 당해야만 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권능을 말할 때에는 십자가의 개념으로 설명해야만 한다. 교회의 힘이나 기독교의 능력은 연약함 속에서 감춰져 있는 권능이기 때문이다.

루터는 다른 신학적인 용어들도 이와 동일한 대조법을 사용해서 풀이하려 했다.

<계속>국제신학대학원대학교 부총장/ 조직신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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