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 성 택 목사

필자가 묻는다. 왜 김정은이 이렇게 태도를 180도 바꾸었을까? 정말 지금까지의 경험적 북한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변화가 단 몇 달만에서 일어남으로 우리 모두를 혼돈스럽게 하고 있다. 국가간 외교사에서 쓸 수 없는 단어들을 동원하여 상대방을 모욕하던 이들이 최고의 찬사를 동원하며 높여주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뭔가 뭔지, 어떻게 되어가고 있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라 함이 정답일 것이다.

이 일이 기분 나쁜 것은 아닌데, 설명하기 힘든 묘한 기분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정말 왜 김정은이 이렇게 태도를 180도 바꾸었을까? 반복되는 질문에 필자는 대답을 알고 있는데, 그런데도 이 질문을 계속하여 반복한다. 왜 그랬을까? 전쟁에 관한 명언 중에 하나가 굳이 설명이 필요없는 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이다. 그런데 우리 외교사령탑과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세력이 대북한비핵화를 위한 외교전에서 이 의미를 알고 움직이고 있을까?

필자의 생각에는 모르고 있는 것 같다. 아니 삼척동자도 다 알고 있는 사실을 알면서도 그런 것 같다는 말이 더 정확하다 할 것이다. 북한이 왜 그랬을까? 북한이 줄곧 우리와 미국에게 요구했던 것이 체제보장, 곧 김정의 신변안전보장이었다. 미군 전략폭격기가 평양상공을 날아다녀도 전혀 감지해 내지 못하는 북한군 방공망, 한반도에 전개되는 감당하기 힘든 한미연합전력자산, 김정은 집무실 창문을 맞힐 수 있다는 유도 무기 등은 자신들이 핵을 손에 쥐고도 도저히 더 이상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정권 자체가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 끝없이 숨통을 조이고 있는 경제재제는 오히려 그들에게서 차 순위 문제일 것이다.

그래서 180도 방향을 바꾸어 대화의 장으로 뛰어나왔다. 안나올 수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이 더 정확하다. 그리고 그 단한번의 외출로 김정은은 원하는 모든 것을 얻었다. 아니 미국과 한국이 알아서 다 내주고 있는 모양새이다. 내부적으로 우리가 모르는 어떤 거래가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그것이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상황에서 한미연합훈련과 대북정찰첩보활동을 중지하고, 한국군의 자체 훈련도 알아서 중단하는 일련의 조치들은 앞으로 지속되어야 할 길고긴 대북 협상에서의 중요한 카드들을 한꺼번에 내버린 꼴이 되고 말았다. 조금은 여유가 생긴 김정은은 북경을 왕복하며 더욱 외교의 폭을 넓히며 우리와 미국을 견제하고 있다.

왜 한국과 미국이 이런 바보같은 협상을 하고 있을까? 필자의 결론은 조급증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미국은 당장 다가오는 중간선거에서 내세울 치적이 필요했고, 그런 의미에서 지난 싱가폴 정상회담은 그들에게 매우 성공적이었다. 어차피 그들에게는 미사일이 본토로만 날아오지 않으면 되니까 말이다. 그런데 우리 집권자들의 조급증이 더 큰 문제이다. 지난보수 정권과는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는 의지, 자신들의 집권 기간 동안 어떤 성과를 내어 탄탄한 장기 집권의 길을 열어 놓겠다는 정치적 꼼수가 보인다.

이렇게 지금 온통 장밋빛으로 물들여 놓은 대북 환상을 어떻게 할 것인가? 앞으로 조그만이라도 삐끗하여 어긋나면 역시나 하고 돌아설 그 민심의 저항을 어떻게 할 것인가? 바로 이런 걱정을 그들도 알기에 이런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북한의 비위를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더욱 더 북한에 저자세로 나갈 것이 뻔하다. 북한은 습관적으로 ‘걷어 치우자, 그러면 안한다. 못한다. 다시는 못온다....“는 식의 회담을 한다. 답답하고 초조해 지는 것은 우리다. 이미 외교전에서 지고 있다는 말이다.

지피지기백전백승(知彼知己百戰百勝)인데 그 전제는 지피지기를 정확한 전략에 활용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분명히 지피지기하고 있는데 그것을 외면하고 자신들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달리 해석하고 적용한다면 지피지기 백전백패(敗)의 참혹한 결과를 맞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대학교 전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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