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 헌 철 목사

필자는 2017년 10월에 ‘한국기독교신문’에 “군(軍) 복무자들을 악마(惡魔)로 만들지 말라!”는 제하(題下)의 글로 모병제(募兵制)가 시행되기 전 까지는 절대로 대체복무를 시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을 피력한바 있다. 그런데 헌제에서의‘대체복무’운운하는데서 편협(偏狹)한 편심(偏心)을 양심(良心)으로 포장하는데 가증스러움을 말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들은 양심(良心)으로 구원(救援) 받는가? 자기만이 영혼구원을 받겠다고 가족 친지 등에까지도 수혈을 거부하는, 편협(偏狹)한 그대들이 내세우는 양심이야 말로 자기 기망(欺罔)에 빠진 자살행위(살인)이며 비양심인 행위가 아닐 수 없다.

종교적 신념이란 여러 형태를 보인다. 그런데 각종의 종교들이 자기들만의 주장을 절대화, 극단화 하는데서 종교전쟁도 발생한다. 예를 들면 이슬람의 수니파와 시아파가 그 예라 할 수 있다. 또한 극단주의자들의 자살테러 역시 자신들의 신앙양심을 외친다. 곧 그들에게는 테러과정에서 생명을 잃는다 해도 그들은 순교(殉敎)로 생각한다. 그렇다고 다중의 사람들은 그들을 종교자유에 의한 선한신앙양심이라 결코 말하지 않는다.

왜? 그들은 테러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에게는 테러역시 곧 신앙양심이요 순교의 길이라 주장한다. 수혈을 거부하는 것 등 역시 아주 극단적 신앙양태이며, 비인간적인 행위로써, 자살, 살인과 다를 바가 없는 테러와 다르지 않다.

종교를 갖고 있는 사람들이라면 포교를 위해 물질, 나아가 생명까지도 희생(순교)하는 경우 등은 얼마든지 확인된다. 마찬가지로 ‘병역거부 자’들이 자신들의 비 성경적인 내용들은 감추고 남을 비판(판다)하는 행위로 포교를 위해 양심을 내세우다니 참으로 가증스럽다.

양심(良心)이란 “옳고 그름, 선과 악을 구별하는 도덕적의식이나 마음씨”를 말한다. 곧 특정종교인들은 옳고 선하며, 기타 모든 사람 등은 옳지 않고 악(惡)하다는 것이다. 이런 판단이 그들의 주장대로란 말인가? 따라서 양심적(良心的)이라 하지 말라. ‘편심적(偏心的) 병역거부 자’들이라 해야 한다. 만일 그들도 대한민국 국민의 한사람으로써 각종 세금을 납부한다면 그 세금으로도 군사무기, 군비증강에 쓰이는 부분이 있음을 모르는가? 따라서 그들은 미시적(微視的) 판단(判斷)에 치우치고 있음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

한편 일제 때에 징용을 거부한 이들이 있었다며 시간적 경과를 주장 한다. 그렇다고 그들이 독립운동을 한 것이 아니다. 그런데 무슨 독립운동 한 것처럼 묘한 뉘앙스를 흘리다니, 이야말로 가증스러운 꼼수를 부리는 것이요, 비양심적임을 들어내는 것이다.

육이오 때 형제자매 이웃 동포 등의 생명을 지키기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운 분들이 엄존한다. 그분들의 덕택으로 ‘편심적(偏心的) 병역거부 자’들도 이 땅에서 편안히 살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들은 자신만의 영혼구원을 받겠다며 편심(偏心)을 양심(良心)이란 말로 포장하고 그 모든 애국자, 순국자들을 모독하고 있지 않은가? 또한 그들의 종교관으로 영혼구원을 받겠다고 법을 악용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죽어가는 이웃이나 국민을 외면하는 자들에게는 시민의식이나 국민성이 결여된 배타적 국가관, 배타적 시민과, 배타적 생활관, 배타적 종교관, 배타적 신앙관을 갖은 자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육이오 참전 용사, 해외참전 용사 등은 악하고 특정종교인들은 선하다? 이제 자유를 수호를 위해 목숨까지 바쳐 순국하신 분들, 국토방위에 애쓰시는 분들의 수고 등을 더 이상 모독하지 말고 그 가족들에게 까지 모욕감과 비애감(悲哀感)을 주지 말라. 예수님께서 명령을 하셨다 ‘여호와 증인’이 아니라 ‘예수님의 증인’ 되라고!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사도행전 1장 8절).

한국장로교신학 학장•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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