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한국신문
해설
하나님을 교회 안에 가두고, 마술봉으로 악용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서 왜곡된 한국교회의 선교모델(?)
유달상 기자  |  yds127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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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7.17  09:37: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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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의 세계선교 명령(?)

예수님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찌어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태복음 28장 18-20절)고 하셨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으로부터 시작된 세계화이며, 세계민족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라는 선교명령이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계화는 15세기 유럽의 자본주의와 항해술의 발전 등과 결합되면서 기독교의 세계화와 복음(기쁜 소식)이 왜곡되었고, 지금도 왜곡되고 있다. 한마디로 세계적인 자원의 확대로 인해 가난한 피선교국의 국민들은 혼란을 겪고 있다는 말이다. 모든 족속에게 하나님나라에 대한 비전을 보여주어야 할 기독교 선교가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서 왜곡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세계화는 식민지 지배를 일삼으며, 가난한 사람들의 것을 빼앗고, 인간을 노예로 삼은 유럽인들의 세계화와는 전혀 다르다. 사실 유럽인들의 세계화는 1492년 콜럼버스가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하나님이 승리하실 것이다. 그는 지구상에 있는 모든 백성들의 우상을 비로 쓰러버리고 그들이 처한 곳에서 하나님을 경배하게 할 것이다”는 기도문을 뇌까리며, 미 대륙을 점령하면서, 유럽인들의 세계화에 대한 꿈은 실현되기 시작했다. 여기에는 예수님을 교리 및 제도화 시켜버린 유럽의 근본주의, 정통주의, 자유주의 신학을 기저에 깔고 있다.

기독교의 세계화의 꿈, 기독교적 선교의 명령은 콜럼버스의 역사적 항해를 통해 식민주의자들의 세계화 의지와 결합되면서 구체화되었다. 유럽의 식민지세력에 의한 세계선교는 한마디로 서구문명의 정신적 승리라는데 이의가 없다. 이것은 한국선교에서도 그대로 나타났고, 한국교회 역시 선교지에서 그대로 실천하고 있다. 사실 선교초기 기독교가 서양문화와 문명을 대변했고, 그들의 것을 최고의 가치로 알았다. 이를 손규태 박사는 “문명의 정신적 정복을 당한 것을 넘어 심리적 정복을 당한 것이다”고 자신의 저서를 통해 비판했다.

콜럼버스 미 대륙 정복 이후 식민지세력은 원주민들에게 서구의 언어와 의복, 그리고 가치관과 관습까지도 강요했다. 유럽의 선교는 기독교를 앞세워 원주민들을 학살하며, 선교지에 들어가 세력을 확장했다. 그들이 다시 한국에 입성해 루터의 ‘두왕국설’, ‘정교분리’를 주창하며, 우리민족의 문화와 역사를 몰각하고, 식민지 세력의 가장 큰 협력자로서의 역할에 충실했다. 수명을 다한 이씨조선 말, 한반도를 둘러싸고 있는 강대국들의 패권전쟁, 일본 식민지세력에 의해 고난당하던 이 땅의 백성들은 새로운 나라를 갈망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나라를 기대했던 피압박 한민족은 교회로 몰려왔다. 한국교회가 크게 성장할 수 있었던 동기가 되었다. 그러나 선교사들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해 ‘영혼구원’만을 외치며, 하나님을 자신들이 필요할 때 불러내는 마술봉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렇다 오늘 한국교회의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필요할 때 써 먹을 수 있는 마술쟁이로 변질됐다. 하나님은 마술쟁이의 요청에 응하는 수단으로 이용되고 있다.

치유 목회를 강조하는 일부 목회자들은, 하나님을 이용해서 자기의 잇속을 챙기는 자들이다. 이들은 스스로 성공한 목회자로 군림하며, 치유 기도를 돈벌이 수단으로 삼는다. 또 이적과 기사를 행하면서 그것이 마치 자기의 능력인 양 업적을 자랑하고, 종교를 이권의 수단으로 이용하는 성직자들이 판을 치는 세상이 되어버렸다. 여기에 교인들은 맹종하며,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정신을 왜곡시키고 있다.

   
 
교회, 복음보다 물질중심의 맘몬이 지배하는 공동체로 변질

세계선교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이 아니라 맘몬이 승리한 것

오늘 한국교회 대부분 목회자가 큰돈을 모아서, 아니 교인들의 주머니를 털어 큰 교회를 짓고, 그것을 성공으로, 자기 업적으로 삼고 있다는 것은, 한국교회가 자본주의적 업적주의와 성공주의에 빠져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사실 한국교회는 예수님의 세계화의 의도를 버려둔 채, 경쟁적으로 수백억, 아니 수천원을 집어 삼킨 호화로운 교회당을 건축해 놓고, 하나님을 그 곳에 가두어 버렸다. 성전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렸다. 움직일 수 없도록 결박했다. 그래서 일부에서는 성전 하나님을 해방시키라고 촉구한다.

마술봉으로 악용되는 하나님

그렇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아니 교회가 이러한 유혹으로부터 해방돼, 새로운 모습으로 변화돼 하나님의 뜻대로 세계화 시대에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없는 것인가. 분명한 것은 콜럼버스에 의해 시작된 제국주의에 바탕을 둔 세계화는 교회도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에 젖어들게 했다. 그리스도의 복음보다 맘몬이 지배하는 물질중심의 사고가 교회 안에 팽배해 졌다. 한국교회의 복음은 한마디로 고난당하는 민족의 복음이 아니라, 유럽의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복음이며, 오늘 세계선교의 기조 역시도 여기에 두고 있다.

오늘 한국의 근본주의적이며, 자유주의적이고, 정통주의적인 신학이 최고인 것처럼 교육하고, 여기에 바탕을 둔 교회들이 한국교회를 이끌어 가는 것처럼 비쳐지는 것은 이를 잘 변호해 주고도 남는다. 여기에서 헤어나지를 못하는 한국교회 역시, 제3세계 국가에 이러한 선교모델을 그대로 이식시키고 있다. 이러한 영향 아래 있는 세계는, 유럽의 것은 문화이고, 다른 대륙의 것은 민속이 되어 버렸다. 종교 역시 유럽의 것은 종교이고, 다른 대륙의 것은 미신이고, 유럽의 언어는 언어이고, 다른 대륙의 것은 방언이 되었다. 유럽의 것은 예술품이고, 다른 대륙의 것은 민속품이다.

오늘 기독교의 세계선교는 하나님이 승리하신 것이 아니다. 맘몬이 승리한 것이다. 교회는 신의 자리를 돈으로 대치했다. 독일의 <슈피겔> 기자는 콜럼버스의 미대륙 발견 500주년을 기념해 기고한 글에서 오늘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가 가져다가 준 결과를 묘사했다. 이 글은 그리스도인이라면, 아니 약소 국가의 국민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참담한 글이다.

“전능하신 하나님 대신 시장(맘몬)이 등장했다. 이 신의 현현은 다우존스 주가지수이고, 그의 성체는 미국의 달러이며, 그의 미사는 환율조정이고, 그의 나라는 지금 크램린의 지도자들까지도 찬양하는 자본주의 보편문명이다”(1991년)

그렇다 슈피겔 기사의 지적처럼, 오늘 세계화의 실체, 아니 세계선교는 다수를 차지하는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의 삶을 고통으로 몰아넣고 있다. 자본이라는 맘몬에게 통제 없는 자유를 허락한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피조물들은 자유를 상실하고,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자본의 노예가 된 것이다. 오늘 한국교회는 내적으로는 영적인 자유를 추구하면서, 자본의 자유를 신봉한다. 그리스도인 모두는 내적으로나, 외적으로나, 모든 삶의 영역에서 자유로워 한다.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자유이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에 저항하면서, 그리스도의 말씀에 복종하고, 그리스도가 섬기려 했던 천박하고,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을 섬기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교의 기조가 되어야 하며, 구원받은 자만이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의 나라는 혼자 갈 수 없다. 그렇다고 남한민족만, 아니 코큰 사람들만 가는 곳이 아니다. 하늘을 모두가 공유해야 하듯이, 하나님의 나라는 너와 나, 남한민족과 북한민족, 자본주의적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아래서 신음하는 세계민족 모두가 함께 가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들은 삶의 현장서 기도하며, 그의 의와 그의 나라를 이 땅에서 실현해야 한다.

이를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또 이를 위해 교회가 있지 않으면, 교회가 아니다. 이제라도 그리스도인들은 가던 길을 멈추고, 돌아서야 한다. 본회퍼는 감옥에 갇혀 있으면서, 내면적 자유를 즐겼다. 그리고 기득권 세력으로 등장한 부르주아적 독일교회의 개혁을 촉구했다. 그렇다 자본주의 세계선교의 미래는 본회퍼가 전망했듯이 세계 곳곳에서 독재자들에 의해서 착취에 시달리며, 고난당하며 신음하고, 보다 낳은 삶을 위해 고향과 나라를 버리고 유리방황하는 떠돌이들을 위해서 저항해야 한다. 그리고 이들을 위해서 복종해야 한다. 예수님은 이들의 삶의 현장서, 이들과 함께 하나님나라운동을 벌였다.

세계선교의 미래를 전망하자

15세기 이전까지만 해도, 인류는 각자의 문화와 역사, 가치 속에서 살았다. 과학기술이나, 항해술이 발달되지 않아 문명의 교류가 없었다. 콜럼버스가 이탈리아, 스페인, 포르투갈의 지원을 받아 미 대륙을 발견하면서, 최초로 세계질서에 의한 세계선교를 알렸다. 이 때부터 유럽인들은 하나님을 앞세워 자신들의 문화와 문명을 확장해 나갔다. 이것은 또 오늘 한국교회에 의해서 확장되고 있다. 특히 가톨릭교회는 남미를 점령해, 식민지로 삼았다. 이것이 첫 단계 이베리아식의 세계선교이다.

다음은 17세기 영국인들에 의한 세계질서의 재편성과 함께 스페인 중심의 식민지 세계화이다. 영국의 세계선교와 세계화는 다른 대륙의 많은 나라들, 아프리카를 비롯한 아시아, 중동지역의 나라들을 점령해 식민지화 했다. 이는 유럽문명과 다른 대륙의 문명이 충돌하는 결과를 낳았다. 영국의 식민지는 개신교가 주도적인 역할을 했다. 이 때 성공회를 비롯한 구세군 등 웨슬리 계통의 개신교가 다른 대륙에 전파돼 뿌리를 내렸다.
마지막으로 1990년 소련 연방과 사회주의 국가들이 붕괴하면서, 세계는 미국 중심의 일극체제로 변화되었다. 미국의 패권은 새로운 세계질서를 형성했다. 이것은 자본주의 세계질서를 더욱 공고히 하는 기초를 놓았다. 이는 곧 자본주의적 새로운 의미로의 세계화, 경제 질서의 세계화를 불러 왔다. 여기에 기독교들이 편승되기 시작했고, 한국교회도 여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것은 부자들의 눈물을 닦아주는 부르주아적인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면, 그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한국교회는 더 이상 가난한 교회가 아니다. 예수님의 하나님나라운동에서 크게 이탈했다.

교회도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나타나기 시작한지 오래되었다. 분명한 것은 이베리아식 세계화, 영국식 세계화, 미국 일극체제 중심의 세계화 등, 모두 부요한 나라는 계속 부요해지고, 가난한 나라는 계속해서 가난해지는 부익부, 빈익빈 현상이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는 곧 우리의 의식주와 사고방식, 가치는 서구화되어 버렸다. 음악을 음악이라고 부르지 않고, 민속이라고 말하며, 춤은 민속춤이라고 한다. 교회 안에서 우리의 건축양식은 물론, 우리의 곡으로 된 노래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은 세계화가 가져다가 준, 지배 이데올로기적인 사고에 사로잡혀 있게 했다.

그래서 깨어난 선교신학자들은 피선교지의 문화와 역사, 국민들의 가치를 존중하는 선교전략을 세우라고 주문한다. 그리고 강대국의 권력이나. 정치세력에 굴종하는 자세를 버리라고 한다. 만약 성직자들이 강대국의 권력이나, 정치세력에 굴종한다면, 그것은 십계명 중 1계명인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내게 두지 말라”는 것에 반하는 것이다. 또한 종의 모습으로 와서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한 그리스도의 모습과도 상치되는 것이다.

그렇다 한국교회의 모습을 보라. 하나님을 유일신으로 믿기보다 한국을 찾은 강대국의 대통령인 트럼프를 더 연호하지 않았는가. 또 오방과 악령에 씌워진 박근혜 전대통령을 변호하며, 촛불을 든 국민들을 빨갱이로 몰아붙이지 않았는가. 군사독재정권의 피 묻은 손에 기도를 해주며, 비호세력으로 성장해 오지 않았는가. 그 결과 기독교는 하나의 종교권력으로 등장했다. 특정인을 대통령으로 만들기 위해 정치세력과 유착해 왔고, 지금도 그 고리와 연결되어 있다.

특별히 강대국이나, 권력집단에 절하면서 세력을 확대한 보수적인 한국의 기독교, 성직자 집단은 십자가 못 박힌 그리스도의 모습을 상실하고, 영광의 자리에서 권력을 누리는 특권 귀족으로 자리매김을 했다. 예수님은 마귀가 산봉우리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면서, 그것들을 다 줄 것이니 자기에게 잘 하라고 했을 때, 그 권력의 유혹을 뿌리치지 않았는가.

우리의 선교, 하나님의 선교는 맘몬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승리고, 하나님이 뜻대로 통치하는 세상을 만드는 것이 아닌가. 그것은 종교적 유혹, 자기 교만과 종교적 업적주의에서 벗어날 때 비로소 실현되는 것이다. 더 이상 한국교회와 교인들은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몸을 낮추어 고통당하는 이웃을 섬기는 교회, 교인으로 거듭나야 한다. 이것이 바로 진정한 교회이며,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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