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 타 선 목사

오늘 한국교회의 신보수주의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말 중에는 “물질적인 풍요가 곧 신의 축복이다”고 아무렇지 않게 천박한 말을 내뱉는다. 그것은 금욕적인 삶을 존중하지 않고, 그렇게 한국교회가 자랑하던 청교도 정신을 상실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념적으로 한국교회에 영향을 끼친 신보수주의는 권력과 교회의 도덕성을 주장하던 구보수의와는 달리, 도덕성의 필요를 느끼지 않았다. 그리고 현대 과학적인 기술의 발달에 박수를 매우 고무적으로 보낸다.

한마디로 물질의 풍요를 신의 축복으로 착각하고 있다. 그것은 진보적인 사람들이 공해, 창조질서파괴, 도시빈민 급증 등 과학기술의 발달이 가져온 제반문제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는 것과 상반된다. 한국교회에서 신보수주의자의 확산은 목회자 및 성직자들의 탈도덕화 현상을 일으키고 있다. 그 결과 일반시민들은 교회에 대해서 냉소주의 또는 무감각한 상황에 이르게 했다. 물질의 축복을 신의 축복으로 착각한 보수적인 목회자들의 입에서는 ‘가난한 것도 죄’라는 도식을 열거하며, 교인들을 겁박한다.

목회자의 이 같은 천박한 말에 실망한 교인들은 스스로 기독교인이기를 포기하고, 탈교회화에 빠르게 융화되고 있다. 물질의 축복을 신의 축복이라고 외치고 있는 한국교회의 강단에서 복음의 순수성을 찾아볼 레야 찾아볼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대신 교회의 강단에서 매주일 마다 ‘돈의 소리’, ‘맘몬의 소리’만 들려오고 있다. 가난이 죄이기 때문에, 가난한 사람들은 교회를 스스로 떠나고 있다. 한마디로 휴면상태에 들어간다.

교회가 도덕적, 윤리적 성격에서 이탈되면서, 교인들은 냉소주의, 또는 무감각 해졌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인들은 교회의 탈 윤리적, 탈 도덕적인 정서의 지배를 받는다. 이것은 목회자들의 탈 도덕적인 복음 선포에 매우 유리하다. 분명한 것은 목회자들의 탈 도덕적인 복음 선포는 가난한 교인들과 국민들에게 실망만 안겨준다.

신보수적인 한국교회 목회자들의 돈에 바탕을 둔 천박한 복음은, 목회자와 신학자, 그리고 신학자들의 도전 없이 그대로 관철되고 있다. 그것은 한마디로 돈의 위력이다. 대신 깨어난 교인들과 국민들이 무너져가는 목회자의 도덕성 회복을 위해 목소리를 높였인다. 하지만 이 개혁의 목소리는 아주 미미했다. 그만큼 한국교회의 목회자와 교인, 그리고 목사후보생인 신학생들이 신보수주의에 동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신보수적인 목사의 자식들이 신학교를 나와 목사가 되고, 아버지 목사가 밟은 그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교단의 헌법과 교회법을 무시하고, 변칙적으로 담임목사직을 세습하는 일이 한국교회 안에서 빈번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또한 담임목사 세습은 대형교회를 넘어 중형교회로 급속하게 번져 나가고 있다는데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러한 신보수적인 목회자의 탈 도덕화는 참 목회자와 교인들의 교회개혁과 변화, 그리고 갱신에 찬물을 끼얹다.

결국 보수적인 목회자들의 이른바 성장 이데올로기는 영미의 식민지선교종합모델의 탐욕주의를 재생산하는 결과를 불러 일으킨다. 한마디로 신보수적인 목회자의 입에서 참 복음을 기대한다는 그 자체가 우습다. 이것은 성서의 복음과 그리스도의 정신에서 이탈된 것만은 분명하다. 한국교회 전체가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일부 목회자는 가난하지만 청빈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고, 자선봉사를 통해 그리스도인의 삶을 실천했다.

오늘 한국교회가 지탱하는 것은 과거 청빈한 삶을 살면서, 하나님의 나라가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려고 노력했던 제1세대 목회자들의 정신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들에게는 물질적인 욕망도 없었고, 오직 하나님나라에 대한 믿음과 복음만 있었다. 그리고 신앙의 척도를 돈이 아닌 그리스도의 복음이라는 것을 강단에서 외쳤다. 최근 제1세대 목회자들의 청빈한 삶과 도덕성을 회복하자는 목소리가 요즘처럼 그리운 때가 없었다.

세계목회자선교협의회 대표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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